
기록연구실 이야기 2호
동생 회건에게 보내는 편지(2)
내일 지구의 마지막 날이 온다해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을 수 있다
안녕하세요, 노회찬재단 기록연구실입니다.
지난 7월, 옥중에서 막내동생 회건 씨에게 '독서'를 생일선물로 건넸던 첫 번째 편지 이야기를 기억하시나요? 청주교도소의 차가운 창틀 안에서도 동생이 일상의 관성에 굳어지지 않기를 바랐던 형의 당부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어느덧 매미소리가 우렁차게 들리는 여름이 왔습니다. 노회찬도 91년도 여름 매미를 생각하며 편지를 썼는데요, 이번 달에 꺼내어 놓을 두 번째 기록은 1991년 여름과 겨울, 청주교도소에서 동생에게 보낸 두 통의 서한입니다. 이번 호에서 우리가 함께 들여다보고자 하는 것은 삭막한 감옥의 벽을 넘어, 작은 풀벌레 하나와 계절의 변화를 깊은 애정으로 응시했던 노회찬의 자연과 생태를 향한 다정한 마음입니다.
1991년 8월 16일 ㅣ 사동 화단의 작은 생명들, 그리고 매미의 하룻밤
유난히 무덥던 그해 8월, 노회찬은 교도소 사동 주변의 화단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동생에게 엽서를 씁니다.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회찬의 시선은 농약 없이 자연 그대로 살아 숨 쉬는 작은 생태계로 향합니다.
"이곳에서도 농약을 제법 사용하는 원예반 들에선 메뚜기 종류를 보기 힘든 반면, 농약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舎棟(사동) 주변의 화단에선 몽치미(!), 베짱이, 방아깨비, 사마귀 등의 곤충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이들 곤충 중에서 요즘 우리의 신경을 종종 곤두서게 만드는 것은 매미이다. 이곳에선 유지매미는 보기 어렵고 참매미와 이 지방에서 씨룩매미라고 부르는 것(가능하면 ‘원색자연학습도감’을 찾아 이름을 알려다오...) 등이 주종이다."
풀벌레가 뛰어노는 사동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 동생과 누비던 구봉산의 자연을 떠올리는 형의 시선은 참으로 다정합니다. 특히 한여름 밤 복도로 난입해 소동을 피우던 매미들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서 생태를 향한 깊은 연민이 도드라집니다.
"방 참문의 모기망에도 하룻밤에 몇마리씩 돌진하곤 하는데 지난번에 한마리를 재워 보낸 후론 창문을 열어주지 않고 있다. 땅 속에서 5년 이상의 애벌레 생활을 보내고 성충이 된지 4주일만에 생명을 마쳐야 하는 매미에게 하룻밤 징역도 너무 길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수년간 갇혀 지내는 자신의 처지보다, 고작 4주를 살기 위해 5년을 땅속에서 버텨온 매미에게 '하룻밤의 갇힘'조차 너무 가혹하다며 차라리 창문을 닫아걸겠다는 마음. 생명의 무게를 온전히 존중하고 자연의 섭리를 사랑하는 이가 아니라면 쉽게 품을 수 없는 지극한 다정함입니다.
1991년 12월 8일 ㅣ 전자제품보다 나무와 풀, 자연을 가까이하는 삶
그해 겨울, 눈이 내릴 듯 잔뜩 찌푸린 청주의 일요일 오후에도 자연과 생명을 향한 그의 철학은 이어집니다.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조카 선덕이의 소식을 들은 삼촌 노회찬은 아이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마음을 품고 자라야 하는지 동생 부부에게 세심한 제안을 건넵니다.
"선덕이가 요즘 아이들답지 않게 이름 그대로 순박하고 신중하고 속 넓고 거침없는 성격을 갖게 되길 바란다. 전자제품(T.V. 등)보다는 나무, 풀 등 자연을 더 가까이서 접촉할 수 있게 하고 모든 일을 급하지 않게 처리하고 소리 높이는 일을 삼가는 것 등도 아이의 정서 함양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듯하다."
인공적인 전자제품의 자극보다는 나무와 풀, 돌 같은 자연의 결을 먼저 만지며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 자연을 가까이할 때 비로소 서두르지 않고, 소리 높이지 않으며, 넓고 거침없는 성품을 기를 수 있다는 그의 확신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어서 스피노자의 유명한 격언을 인용한 문장 역시 자연의 섭리를 닮아 있습니다.
"땅 밑이 갈라지고 하늘이 무너져도 마음의 중심을 갖고 자신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사람은 내일 지구의 마지막 날이 온다해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을 수 있다. 사회와 역사 전반에 관해 깊고 폭넓은 관심을 갖고 또 정의롭고 따뜻한 심성을 잃지 않고 보다 적극적으로 실천적으로 삶을 영위해갈 수 있도록 노력하자."
아무리 세상이 어지럽고 혼란스러울지라도 자연이 매년 묵묵히 푸른 잎을 틔우듯 우리 또한 정의롭고 따뜻한 심성이라는 '마음의 사과나무'를 심어가자는 당부입니다.
감옥이라는 차단된 공간 속에서도 노회찬은 사동 화단의 풀벌레와 매미를 통해 여전히 자연과 연결되어 있었고 새로 태어난 다음 세대 역시 그 자연의 다정함을 닮아가길 원했습니다.
콘크리트와 모니터에 둘러싸인 채 계절의 변화조차 잊고 사는 요즘입니다. 35년 전 청주의 좁은 방에서 날아온 이 푸른 편지를 읽으며, 오늘 우리 주변의 나무와 풀, 작은 생명들의 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요.
사동 화단의 곤충들처럼 활기차고, 푸른 나무처럼 단단한 나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음 달에 세 번째 기록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 전체 편지 원문은 노회찬재단 아카이브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1991년 8월 16일 편지 / 1991년 12월 8일 편지
기록연구실 이야기 2호
동생 회건에게 보내는 편지(2)
내일 지구의 마지막 날이 온다해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을 수 있다
안녕하세요, 노회찬재단 기록연구실입니다.
지난 7월, 옥중에서 막내동생 회건 씨에게 '독서'를 생일선물로 건넸던 첫 번째 편지 이야기를 기억하시나요? 청주교도소의 차가운 창틀 안에서도 동생이 일상의 관성에 굳어지지 않기를 바랐던 형의 당부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어느덧 매미소리가 우렁차게 들리는 여름이 왔습니다. 노회찬도 91년도 여름 매미를 생각하며 편지를 썼는데요, 이번 달에 꺼내어 놓을 두 번째 기록은 1991년 여름과 겨울, 청주교도소에서 동생에게 보낸 두 통의 서한입니다. 이번 호에서 우리가 함께 들여다보고자 하는 것은 삭막한 감옥의 벽을 넘어, 작은 풀벌레 하나와 계절의 변화를 깊은 애정으로 응시했던 노회찬의 자연과 생태를 향한 다정한 마음입니다.
1991년 8월 16일 ㅣ 사동 화단의 작은 생명들, 그리고 매미의 하룻밤
유난히 무덥던 그해 8월, 노회찬은 교도소 사동 주변의 화단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동생에게 엽서를 씁니다.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회찬의 시선은 농약 없이 자연 그대로 살아 숨 쉬는 작은 생태계로 향합니다.
풀벌레가 뛰어노는 사동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 동생과 누비던 구봉산의 자연을 떠올리는 형의 시선은 참으로 다정합니다. 특히 한여름 밤 복도로 난입해 소동을 피우던 매미들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서 생태를 향한 깊은 연민이 도드라집니다.
수년간 갇혀 지내는 자신의 처지보다, 고작 4주를 살기 위해 5년을 땅속에서 버텨온 매미에게 '하룻밤의 갇힘'조차 너무 가혹하다며 차라리 창문을 닫아걸겠다는 마음. 생명의 무게를 온전히 존중하고 자연의 섭리를 사랑하는 이가 아니라면 쉽게 품을 수 없는 지극한 다정함입니다.
1991년 12월 8일 ㅣ 전자제품보다 나무와 풀, 자연을 가까이하는 삶
그해 겨울, 눈이 내릴 듯 잔뜩 찌푸린 청주의 일요일 오후에도 자연과 생명을 향한 그의 철학은 이어집니다.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조카 선덕이의 소식을 들은 삼촌 노회찬은 아이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마음을 품고 자라야 하는지 동생 부부에게 세심한 제안을 건넵니다.
인공적인 전자제품의 자극보다는 나무와 풀, 돌 같은 자연의 결을 먼저 만지며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 자연을 가까이할 때 비로소 서두르지 않고, 소리 높이지 않으며, 넓고 거침없는 성품을 기를 수 있다는 그의 확신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어서 스피노자의 유명한 격언을 인용한 문장 역시 자연의 섭리를 닮아 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어지럽고 혼란스러울지라도 자연이 매년 묵묵히 푸른 잎을 틔우듯 우리 또한 정의롭고 따뜻한 심성이라는 '마음의 사과나무'를 심어가자는 당부입니다.
감옥이라는 차단된 공간 속에서도 노회찬은 사동 화단의 풀벌레와 매미를 통해 여전히 자연과 연결되어 있었고 새로 태어난 다음 세대 역시 그 자연의 다정함을 닮아가길 원했습니다.
콘크리트와 모니터에 둘러싸인 채 계절의 변화조차 잊고 사는 요즘입니다. 35년 전 청주의 좁은 방에서 날아온 이 푸른 편지를 읽으며, 오늘 우리 주변의 나무와 풀, 작은 생명들의 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요.
사동 화단의 곤충들처럼 활기차고, 푸른 나무처럼 단단한 나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음 달에 세 번째 기록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 전체 편지 원문은 노회찬재단 아카이브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1991년 8월 16일 편지 / 1991년 12월 8일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