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후기]누군가의 삶을 듣는다는 건 - 서혜림(구술생애사 2기)

2026-10-01


누군가의 삶을 듣는다는 건

<우리의 노래가> 북토크 후기



 서혜림

구술생애사 2기. <우리의 노래가>에서 성소수자이자 무속인인 ‘박인’의 삶을 듣고 기록했다.





<우리의 노래가>를 쓴 노회찬재단 구술생애사팀은 7월 14일 출판 기념행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세 번의 북토크를 진행했다. 9월 10일 사회과학서점 ‘그날이 오면’에서, 9월 12일은 구술자 중 한명인 박인의 라이브 방송에서, 9월 20일에는 이주민연대 ‘샬롬의 집’에서 진행되었다. 각각의 북토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필자의 입장에서 무엇을 새롭게 발견했는지 지극히 개인적인 소감을 나눠보고자 한다. 



#1. 가을이 오는 길목에 울려 퍼진 ‘불나비’

‘그날이 오면’ 북토크 - 참여자 : 구술자 최도은, 민정연 / 기록자 윤명주, 김미주


무더위가 한풀 꺾인 가을의 길목이자 노을이 유독 아름다운 9월 10일, 서울대 앞 유서 깊은 사회과학 서점 ‘그날이 오면’에서 <우리의 노래가> 북토크가 열렸다. 이번 북토크는 민중가수 분야의 두 구술자와 기록자가 참여했다. 7시가 막 넘어 가볍게 인사를 나누는 자리, 먼저 마이크를 잡은 ‘불나비’의 주인공 최도은 가수는 젊은 노동자의 죽음을 언급하며 우리 사회 노동현실을 소리 높여 비판했다. 이렇다 할 인사도 없이 시작된 ‘규탄’이었다. 세계 경제 강국으로 자리 잡은 우리 사회, 하지만 노동자의 자리는 왜 그대로인지, 아니 어째서 오히려 더 퇴보하는지 그녀는 통탄했다. 어떻게 보면 난데없는 연설이었지만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울컥했다. 가수 최도은이 세상을 사랑하는 모습이 여전해서, 책과 노래에서 느낀 그대로여서 감동이었다. 그녀의 우리 사회를 향한 불꽃같은 사랑은 어째서 여전하며 변함이 없는가! 그 사실이 나에겐 유독 마음에 남았다. 


격렬하고 진지한 최도은 가수와 다르게 민중가요 팀 ‘꽃다지’의 기획자 민정연 실장은 시종일관 밝고 명랑했다. 민정연 실장은 자신이 경험한 어떤 힘든 사건도 흥미진진한 모험담으로 바꿔 얘기하는 능력이 있었다. 민중가요라는 볼모지에서 늘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 놓여있었던 ‘꽃다지’, 이를 이끌어가야 했던 민정연은 늘 어려운 문제에 시달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 때문에 괴롭지는 않았다고 했다. 민정연에게 진짜 괴로운 것은 가수들에게 좋은 무대를 만들어주지 못하는 것. 그녀는 가수들에게 좀 더 좋은 환경, 무대를 만들기 위해 늘 고민했다. 예술가가 마음껏 예술을 펼칠 수 있도록 돕는 것, 어쩌면 그것이 ‘꽃다지’ 기획자 민정연이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이었을까? ‘예술가로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 진지하게 고민하고 더 나아가 ‘예술가들의 연대’를 모색하는 민정연. 이번 북토크를 통해 알게 된 민정연은 예술과 예술가를 진정으로 응원하고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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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26.9.10. 서점 '그날이오면'에서 진행된 <우리의 노래가> 북토크 Ⓒ그날이오면 제공



#2. 책은 그만 팔아도 돼요. 

박인의 유튜브 ‘청담동X보이즈’ 라이브방송 북토크 - 구술자 박인/ 기록자 서혜림, 김무진  

 

‘청담동 X보이즈’ 북토크는 성소수자이자 무속인인 박인의 독특한 캐릭터처럼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박인의 라이브방송은 ‘반상회’라고 불리는 구독자들과 소통하는 채널로 주로 고민을 상담하고 점사를 봐주는 내용으로 진행된다. 박인에게 북토크를 제안한 것은 그녀의 삶을 담은 <우리의 노래가> 출간을 기념해 구독자분들께 책을 소개하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주고자 하는 것이었으나 막상 채널의 주인이자 주인공인 박인은 이번 방송에서 책을 팔겠다는 강렬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임했다. 그래서 북토크는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구독자들에게 책을 ‘강매(?)’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우리 기록자들(필자를 포함한)은 당황함을 넘어 망연자실했지만, 채널 주인이 그러겠다는데 말릴 수 있나. 기록자들은 라방 내내 어색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지만 이런 당황스러운 북토크도 나름 재미는 있었다. 평생을 틀에 갇히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온 ‘박인’다운 방송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가 그토록 책을 팔려는 이유 -어릴 때 가난 때문에, 돈 때문에 서러웠던, 그래서 아직도 주변사람들이 돈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까 걱정하는- 를 알 것 같기 때문이다. 책 판매가 부진하다는 소식에 노회찬 재단과 우리 기록자들을 걱정하는 박인. 이번 북토크는 박인의 진심, 그가 사랑하는 방식을 알게 해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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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26.9.20. 이주민연대 샬롬의집에서 진행된 <우리의 노래가> 북토크 Ⓒ샬롬의집 제공



#3. 눈물이 만들어준 새로운 세계.

‘샬롬의 집’ 북토크 - 구술자 자한길 알럼, 웨노웨 흐닌 쏘 / 기록자 송유림, 김정희 


세 번째 북토크는 9월 20일 추석을 앞둔 일요일, 남양주에 위치한 이주민연대 ‘샬롬의 집’에서 열렸다. 다양한 나라에서 건너온 이주민들과 관계자들, 북토크 신청자들로 가득 한 작은 회의실은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공감과 눈물이 더해져 그 어느 때 보다 다양한 감정이 넘실거리는 꽉 찬 공간이 되었다.


스물 셋 부모와 친구를 떠나 대학생이었던 삶도 뒤로하고 한국의 이주노동자로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고 살아야했던 자한길 알럼, 그를 위해 한국인 친구가 만들어준 노래 ‘알럼의 고향’이 흐를 때. 유학생으로 한국에 건너와 고국의 군부 쿠테타 소식을 듣고 처참한 고국과 상반되는 이곳의 일상이 부러워 눈물을 흘렸던 웨노웨 흐닌 쏘의 이야기가 흐를 때.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구술생애사를 통해 그의 삶도 있는 그대로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으면 하는 이선주 작가의 진심 어린 바람이 흐를 때. 함께 듣고 있는 이들의 눈에는 눈물이 흘렀다. 그건 공감의 눈물이었다. 떠나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 낯선 곳에서의 불안, 거대한 비극 앞에서 느낀 무기력과 슬픔, 스스로를 자책하는 사람들에게 느끼는 안타까움.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였고 그들의 눈물은 바로 우리의 눈물이었다. <우리의 노래가> 북토크가 열린 샬롬의 집, 그 작은 회의실에서는 뜻밖의 기적이 일어났다. 바로 국경과 성별, 나이를 넘어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 그곳은 공감과 연대, 사랑이 흐르는 세계시민의 공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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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의 북토크를 통해 ‘누군가의 삶을 듣는 다는 것’은 그가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을 나누는 것임을,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 안에도 그와 같은 사랑이 있었음을 깨닫는 것임을 알았다. 어쩌면 우리가 아직도(?)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가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문득 세상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세상이 나에게 너무 냉혹하다고 느낄지라도. 그렇다 해도 뭐 어떤가? 내가, 우리가 여전히 사랑하는데. 그것이 비록 짝사랑일지라도, 마음속에 사랑이 존재하는 한 우린 또 하루를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번 글 내내 너무 ‘사랑’, ‘사랑’만 외쳐 대서 거부감을 느끼는 분들이 있을 것 같다. 뜬구름 잡는 얘기라며 이의제기를 하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그런 분들을 위해 희소식을 알려드린다. 다가오는 10월 3일, 지리산 포럼에서 <우리의 노래가>의 북토크가 열린다. 이번에도 구술자들과 기록자(필자 포함)의 이야기가 펼쳐질 예정이니 이번 북토크를 통해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보시길. 지리산 자락에서는 또 어떤 삶의 이야기가, 어떤 감정들이 흐르게 될지, 기대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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