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직업으로서 정치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진보정당이 없는 정치를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진보정당을 만드는 일이 제 삶의 목표였습니다. 그것이 과연 제가 살아 있을 동안 만들어질까? 이렇게 의심해본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이 만들어졌을 때 제 인생 목표의 절반이 해결됐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구영식 인터뷰, 2014)
진보정치의 설계자이자 개척자인 노회찬에게 진보정당은 삶의 원천이었다. 그는 진보정당을 통해 다른 세상을 꿈꾸었다. “이 사회의 약자와 빈자의 권익을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위 위해 선택한 길이 바로 진보정당 ‘운동’이었다. 새천년이 시작되는 2000년 1월 30일 서울 잠실의 역도경기장. 3000 여명 당원들의 뜨거운 함성과 열기 속에 민주노동당 창당대회가 열렸다. 마침내 해방 이후 최초로 명실상부한 대중적 진보정당이 탄생했다. 노회찬은 낡은 보수 양당체제를 타파할 ‘쇄빙선의 선장’이 되어 2004년 총선을 향해 돌진했다.
민주노동당은 2002년 지방선거에서 제3당이 되었고, ‘부유세 도입과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내세운 권영길 후보가 출마한 그해 대선에서도 인상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국민들은 보수 양당의 오랜 ‘적대적 공생’ 관계에 파열구를 낼 진보정당의 필요성을 인정했고, 2004년 4월 15일 민주노동당은 10명의 당선자와 함께 원내 진출에 성공했다. 선대본부장으로서 TV 토론 등에서 맹활약한 노회찬도 비례후보 8번으로 당선되었다. 이후 진보정당의 부침 속에서도 노회찬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진보정당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노회찬평전』의 저자 이광호 작가에 따르면 “노회찬은 대한민국에 명실상부한 대중적 진보정당을 ‘만들고’ 진보정치 시대를 대중적으로 ‘열어간’ 대표 정치인이었고, 진보정당의 집권으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자신의 온 삶을, 영혼까지 바친 ‘우직한’ 정치인이었다.”
사진1) 17대 국회 개원 첫날인 2004년 5월 31일. 국회 본관 계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민주노동당 의원들. ⓒ노회찬재단
사진2) 2007년 민주노동당의 제 17대 대선후보 선출 경선에 연설하는 노회찬 ⓒ노회찬아카이브
"한나라당과 민주당,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퇴장하십시오. 50년 동안 썩은 판을 이제 갈아야 합니다. 50년 동안 똑같은 판에다 삼겹살 구워 먹으면 고기가 시커메집니다. 판을 갈 때가 이제 왔습니다." (KBS <심야토론>, 2004.3.20.)
2004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한 노회찬은 두 번의 KBS <심야토론>에서 보수 양당을 비판하면서, 언론이 “정치사에 남을 촌철살인”이라고 평가한 비유를 날렸다. 바로 이때 이 판갈이론을 시작으로 '노회찬 어록'이란 말이 처음 등장했다. “청소할 땐 청소해야지, 청소하는 게 ‘먼지에 대한 보복’은 아니지 않습니까?”와 같은 그의 말은 권력의 폐부를 찌르며 국민의 답답한 가슴을 뚫어주는 사이다였다. 하지만 "붉은색이 주황색을 차별하지 않듯 자장면이 짬뽕 차별하는 경우도 없다. 무지개처럼 여러 색깔이 공존하는 것이 중요하다"(성소수자와 함께 하는 정책간담회, 2007.6.16.)는, 노회찬의 말은 국민을 살리는 말이자 사회적 약자들의 무기이기도 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의 작가 故 조세희 선생은 노회찬의 언어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우리에게 변화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쓰는 말이 달라져야 합니다. 말은 생각이에요. 노회찬 전 의원을 두고 '스타가 나왔다'고 하는데 그건 바보의 언어예요. 노회찬 전 의원이 다른 언어를 사용했어요. 노회찬 전 의원은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언어를 쓰고 있었어요.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하는 특별한 말들을 쓰고 있었어요. 뛰어난 언어였어요."
사진3) KBS <염경철의 심야토론> 2018년 7월 28일 방송 화면 갈무리 (출처 프레시안)
사진4) 2004년 총선 당시 여의도에서 당직자들과 선거운동을 하고있는 노회찬 후보
“8년 전 그날 그 순간이 다시 온다 하더라도 저는 똑같이 행동할 것입니다. 국민들이 저를 국회의원으로 선출한 것은 바로 그런 거대 권력의 비리에 맞서 이 땅의 정의를 바로 세우라는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삼성X파일 사건’ 대법원 판결에 대한 기자회견, 2013. 02.14)
17대 국회, 초선의원 노회찬은 ‘삼성과 미국’은 건드리면 안 된다는 여의도의 불문율을 깨뜨렸다. 특히, ‘삼성 X파일 사건’은 정치인 노회찬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다. 2005년 8월 18일 노회찬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옛 안기부 불법 도청테이프에서 삼성그룹의 뇌물('떡값')을 받은 것으로 언급된 전·현직 '떡값검사' 7명의 실명을 공개했다. 노회찬은 "X파일의 핵심은 이건희 게이트"라며 "정치권과 재계, 언론계, 검찰 등의 검은 유착 관계를 밝히는 것이 수사목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건희 등 삼성관계자와 정치인들, 검사들을 제대로 수사하지도, 기소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판도라의 상자’를 연 노회찬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등으로 기소했다. 대법원의 시대착오적인 판결로 인해 2013년 제19대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다. 노회찬은 의정활동 내내 “법 앞에 만명만 평등”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불의한 거대 권력의 카르텔에 맞섰다. 그는 법원과 검찰의 전관예우, 재벌총수 솜방망이 처벌 등에 맞서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에 앞장섰다. 또한, 재벌 대기업의 지배구조 개혁, 일감 몰아주기 근절, 이익공유제 도입 등 경제민주화를 위해 노력했다. 마지막 20대 국회에서는 ‘대통령(박근혜)탄핵소추안’을 공동 대표발의하고 국정농단세력의 처벌에 앞장섰다. 국회의 기득권 내려놓기에도 힘써 ‘국회특수활동비 폐지법’(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며, 결국 국회특수활동비는 폐지되었다.
사진5) 2005년 8월 18일 국회 법사위에 출석한 김상희 법무차관에게 삼성에게 '떡값'을 받은 사실이 있는지를 따져 묻는 노회찬. ⓒ연합뉴스
사진6) 2005년 9월 9일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그룹 본관 앞. 'X파일 진상규명과 이건희 회장 구속'을 촉구하는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노회찬 ⓒ노회찬재단
“이분들이 그 어려움 속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을 찾을 때 우리는 어디 있었습니까. 그들 눈 앞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손이 닿는 곳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에 과연 있었습니까... 저는 이제 이분들이 냄새 맡을 수 있고 손에 잡을 수 있는 곳으로 이 당을 여러분과 함께 가져가고자 합니다. 여러분 준비되셨습니까.”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수락연설, 2012.10.21.)
6411 버스 연설은 노회찬이 세상을 떠난 후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가 이 연설에서 불러낸 새벽 첫차를 타는 빌딩 청소노동자, 현대차 비정규직, 쌍용차 해고 노동자, 용산 참사 피해자들은 노회찬 정치의 존재 이유였다. “개인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게 아니라 이 사회 다수를 위한 정치를 하고 있기 때문에항상 더 어려운, 많은 사람들 편에 서는 것”이 노회찬이 밝힌 노회찬 정치의 ‘제1원칙’이었다. 그래서 노회찬은 이 연설에서 진보정당의 현실을 투명인간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 ‘투명정당’으로 자책하고 자성했다.
노회찬은 여성, 장애인, 노동자, 자영업자, 철거민 등 사회적 약자들의 ‘동반자’이자 ‘호민관’이었다. 세상의 중심인 아픈 곳으로 달려가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비를 맞고, 또 함께 눈물을 흘리면서, 함께 현안을 풀어가는 정치인이었다. 국회의원 노회찬의 1호 법안은 ‘호주제 폐지 법안’(민법 개정안)이었고, 2005년부터 해마다 ‘3‧8 세계여성의날’에 <장미꽃과 축하편지>를 국회 청소노동자 등에게 전했다. 그는 장애인이동권투쟁에 함께 하며,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2008년 ‘차별금지법 제정안’을 대표발의한 노회찬은 서울퀴어퍼레이드에 최초로 참가한 남성 국회의원이기도 하다. 또한, 중소자영업자들과 함께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와 골목상권 보호에 나섰으며, ‘정리해고제한법’(근로기준법 개정안)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 등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위한 입법과 연대에도 힘썼다.
사진7) 용산참사 유가족,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와 문정현 신부가 2009년 7월 18일 서울 청계광장 앞에서 용산참사 문제에 대해 정부의 책임 있는 해결을 촉구하며 청와대를 향해 삼보일배를 진행하다가 경찰들에게 막혀 무산되자 부등켜 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 ⓒ오마이뉴스 유성호
사진8) 2012년 10월 27일,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희망도보행진에 참석한 노회찬 ⓒ이종수 <노회찬, 함께 꾸는 꿈> 25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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