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의 꿈
“나는 다시 꿈을 꾼다. 대학 서열과 학력차별이 없고 누구나 원하는 만큼 교육받을 수 있는 나라, 지방에서 태어나도 그곳에서 교육받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 아무 불편함이 없는 나라,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 나라, 인터넷 접속이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되는 나라,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국민이 악기 하나쯤은 연주할 수 있는 나라, 토머스 모어는 고작 하루 노동시간을 여섯 시간으로 줄여놓고 그 섬을 존재하지 않는 섬, 유토피아라 불렀지만 나는 그보다 더 거창한 꿈을 꾸지만 단지 꿈이라 여기지 않고 있다.”
- 노회찬(2010), <진보의 재탄생>, 서문
휴머니즘(Humanism)은 노회찬의 정신이자 이념이었다. 그는 운동가로서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한결같이 자신을 받쳐주었던 변치 않는 초심이자 삶의 원칙과 가치관이 ‘휴머니즘’이라 했다. “가장 진보적인 이념은 휴머니즘”이라 했으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칭호는 휴머니스트다”라고도 했다.
사회적 존재로 처음 출발할 때 제 바탕에 있는 가치는 휴머니즘이었죠. 지금도 여전히 다른 것은 다 왔다가도 가고, 마치 계절에 따라서 옷이 바뀌는 것처럼 달라지기도 하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는 거는 휴머니즘이고요. 인간을 실망시키는 것은 인간이고, 인간의 가장 무서운 적 또한 인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한 신뢰 없이는 못 산다는 생각, 오히려 그것까지 놓아버리게 되면 겁이 나는 거죠. 내가 그걸 놓아 버리게 될까 겁나서, 죽어도 그건 쥐고 있는 거에요. 두려운 거죠. 존재의 이유를 찾지 못할까봐 그것만은 안 놓으려고. - 노회찬(2010), <진보의 재탄생>, 꾸리에, 141쪽
휴머니즘은 보편적 가치이면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역사적 개념이다. 현명한 무신론자였고 가슴이 따뜻한 유물론자였던 노회찬은 휴머니즘을 신본주의의 반대편에 있는 인본주의로 이해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근대 이후 형성된 인권 개념 또는 인간 존엄성 사상을 바탕으로 한 사회과학적 맥락의 휴머니즘으로 이해한다. 다만 그의 휴머니즘은 부르주아 계급이 혁명적 성격을 띠고 있던 시대의 인간관, 즉 사회적‧계급적 맥락에서 분리된 진공 상태의 개인이 중심이 된 휴머니즘과는 거리가 있다. 실존적 개인의 모든 것이 사회와 계급으로 환원될 수는 없겠지만, 사회적‧계급적 조건을 떠난 개인은 허상이거나 부분적이다.
그의 휴머니즘은 자본주의 체제의 비인간적 측면을 극복하기 위한 이념이었고, 사회주의는 휴머니즘과 사상적 동반자가 되었다. 그가 “가장 진보적인 이념은 휴머니즘”이라고 말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이 인간을 부당하게 억압하고 착취하는 일을 근절시켜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 – 그런 사회운동, 정치운동을 펼치는 것이 바로 저의 직업입니다. (1992년 출소 직전 부모님께 보는 편지 중에서)
민주주의와 평등, 평화를 위해 20년이 넘게 싸워왔다. 자연과 인간이 다 함께 존중되고 자유로운 인간 의지가 넘치는 인간다운 세상을 만드는 것은 앞으로도 어느 한순간에도 포기할 수 없는 나의 직업이다. (1996년 국회의원 출마 인터뷰 중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목표이고, 변한 것은 방법입니다. 인간 해방, 노동 해방의 신념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2004년 국회의원 첫 당선 후 인터뷰 중에서)
노회찬은 정치의 출발점이 ‘생활정치의 현장’, ‘고통의 현장’을 찾아서 연대하는 운동에 있으며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계산된 행위가 아니라 영혼을 가지고 진심으로 행하는 실천’이라 했다. 그에게 정치나 진보정당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노회찬은 자신마저도 이 같은 가치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삼고자 했다. 그래야 역사 발전에 참여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천재성에 두지 않고 민중성에 두었다. 민중성은 ‘6411정신’의 다른 표현이고, 노회찬 정신의 ‘심장’이었다.
출처 : 이광호(2023), <노회찬 평전>, 사회평론, 477-480쪽
노회찬에게 현실에서의 사회주의는 두 가지 경로로 자기를 실현한 이념이었다. 하나는 20세기 말에 붕괴된 소련과 동구권의 사회주의였고, 다른 하나는 유럽, 특히 북유럽의 사민주의였다. 그가 보기에 사민주의는 정치적 다원주의 시대에 맞게 변화하고 적응한 사회주의였다.
사회주의와 사민주의는 공존할 수 있고, 공존해야 한다. SO(사회주의: 인용자)는 指向(지향)으로서, SD(사민주의: 인용자)는 現實(현실)로서, 堂(당)으로서도 共存(공존) 가능. 제2 Int’l(인터내셔널: 인용자), 제3 Int’l 시대에 SO와 SD의 적대적 대립-역사적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 오히려 우리는 WWⅡ(제2차 세계대전: 인용자) 이후 Europe SD의 점진적 쇠퇴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 (노회찬의 손바닥 수첩, 2008년)
노회찬의 메모는 그가 복지국가 수립 과제와 탈자본주의 과제를 연관시키며 이를 아우르는 관점에서 ‘사회주의’를 이해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노회찬이 생각한 역사적 사민주의의 문제점은 점진적이라는 방법론이 아니라 자본주의 극복이라는 최종 목표의 실종이었다. 노회찬 정치에서 ‘급진성(radicality) 혹은 급진주의(radicalism)’는 사회주의와 짝을 이루는 개념이다. 여기서 급진성은 제한적 의미로 사용된다. 흔히 급진과 함께 연상되는 과격함이나 극단주의, 원리주의와는 다르다. 노회찬 정치의 급진성은 오히려 그 반대편에 있다. 사물이나 사태의 근본 뿌리와 전모를 파악하고 문제도 뿌리로부터 해결하려는 태도와 입장을 말한다. 이런 해석이 ‘래디컬(radical)’의 어원에도 더 잘 들어맞는다.
그가 말한 인간다운 세상은, 그의 표현에 따르면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변혁한, 원칙적으로 극복한 사회’다. 이를 위해서는 자본주의를 뿌리로부터 개혁해야 했다. “언제가는 우리가 만들어야겠지만 아직은 모델 없이 출발하는 사회주의로의 지향과 열정을 가진 진보정당”의 집권이 그의 변하지 않는 목표였다. 다만 기존 체제를 단번에 뿌리 채 뽑는 혁명 노선에서 뿌리에 영향을 주는 토양을 변화시키는 길로 옮겨온 것이었다. 토양의 변화는 단기간에 이루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장기전은 점진적, 개혁적, 민주적 방식, 달리 말하면 비혁명적 방식에 의한 사회주의로의 전환 전략이었다.
노회찬은 “민주주의는 곧 사회주의”라고 했는데, 이 말은 “사회주의는 최고 형태의 민주주의”라고 밝힌 선언을 염두에 둔 것으로, ‘노동자, 서민의 벗’이 되는 민주주의,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의미했다. 민주주의를 뿌리까지 추구하면 기업 내부 권력의 민주화가 구현되고, 사회 보장과 공공성 논리가 시장 논리보다 우위에 있는 복지국가에 이를 수 있다. 절차적‧형식적 민주주의가 내용적으로 보수와 진보가 대체로 공유하는 자유권적 기본권이 중심이라면,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는 진보와 보수의 경쟁 결과에 따라 그 내용과 수준이 결정된다는 점이 달랐다. 노회찬은 로자 루셈불크와 안토니오 그람시를 사회주의자로서 높게 평가했는데, 그 이유가 눈길을 끈다.
로자 룩셈부르크와 안토니오 그람시는 생각하는 사회주의자였고, 고민하는 사회주의자였습니다. 사회주의란 이름으로 저질러질 수 있는 야만과 오류의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빼어납니다.
- 정운영(2004), <우리 시대 진보의 파수꾼, 노회찬>, 랜던하우스 중앙, 123쪽
노회찬은 세상의 변혁이라는 목표와 일상의 개혁, 개량이라는 경로와 수단이 분절되지 않고 이어질 수 있는 방안을 현실 정치에서 부단히 고민했다. 노회찬이 2007년 당내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내걸었던 주요 공약들, 즉 복지국가 건설을 위해 정부와 재계, 노동자, 농민, 서민 대표가 참여해 국가 경제 전체의 기본 계획을 짜고 시장을 조절하는 ‘평등경제위원회’의 설치, 토지 소유 상한제와 1가구 2주택 이상 보유 금지 등 ‘사회주의적 방식’ 도입, 교육‧의료‧주택‧일자리의 국가 완전 보장 등은 뿌리까지 내려간 민주주의가 만나는 혁명적‧급진적 정책이었고, 현행 헌법 기분으로 보면 ‘위헌적’ 정책이었다. 2018년 1월, 노회찬이 위원장이었던 정의당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만든 개헌안에도 노동자 사업 운영 참가권과 제헌 헌법의 이익 균점권이 포함되었다. 이 같은 급진성은 노회찬 정치의 ‘머리’였다.
출처 : 이광호(2023), <노회찬 평전>, 사회평론, 480-485쪽
사진1) <폴리뉴스> 창간 9주년 특별기획 <한국정당실록 60년>의 네 번째 인터뷰 (2009)
사진2) 주간경향 직격인터뷰 (2008)
“사회주의의 이상과 원칙을 실현하는 것은 무엇인가? 저는 그것이 사민주의라고 본다. 사민주의 말고 사회주의 이상과 원칙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 어디 있나?” (노회찬, 2014)
“사회주의와 사민주의를 구분하는 것도 21세기에는 안 맞다 생각합니다.” (노회찬, 2009)
2010년대 이후, 특히 2012년 진보정의당 출범 전후로 노회찬은 사회주의가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형태가 사민주의일 수밖에 없다는 말을 자주 했다. 이 시기는 진보정의당이 통합진보당에서 갈라져 나온 시절로, 그가 진보의 재구성을 거듭 강조하면서 그 내용을 고민하던 때였다. 그는 자주파(민족주의)와 평등파(사회주의, 사민주의) 그리고 자유주의 세력이 함께하는 정당에서 이들이 공유할 수 있는 이념으로 사민주의를 내세우려 했다. 또 이미 언급한 것처럼 복지 담론이 경쟁하는 시대에 다른 정당과의 차별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편의 차원에서도 사민주의를 앞세울 필요가 있었다. 노회찬은 자신이 사회주의자로 비치든 사민주의자로 불리든 별로 괘념치 않았을 사람이다. 그보다는 당이 국민에게 어떻게 인식하는가를 중시했다.
노회찬이 사회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 자유주의와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19세기 자유주의 세력이 아동 착취를 자유라는 이름으로 강요하고 노동자 민중이 참여하는 민주주의를 반대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는 당시 자유주의가 가지고 있던 혁명성이 사회주의 사상에도 긍정적 영향력을 미쳤음을 인정하고 있다. 노회찬의 말이다.
파시즘을 제외하고는 어떤 사상도 자유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은 없다고 본다. 심지어 마르크시즘도 그 근간에는 자유주의가 있다고 본다. (경향신문, ”유인경이 만난 사람: 의원직 잃은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2013년 3월 5일)
민중성, 급진성과 함께 노회찬 정치의 중심 가치는 현실성, 현장성이었는데, 이는 대중과 함께 실현해갈 수 있는 사회주의의 한 형태로서 사민주의를 내세운 그의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노회찬은 “흔히들 좌파 하면 이상 이러는데, 실제 성공한 좌파들을 보면 그지없이 대중적이고 현실적이었다”라고 강조한다. (노회찬, 2010)
그가 평생 민중 지향의 가치를 놓지 않은 정치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불변의 원칙과 강한 의지의 소유자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눈물과 한숨이 있는 현장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아픈 곳이 세상의 중심이었고, 그는 그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가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긴 공적 발언도 삼성전자 백혈병 환자와 KTX 승무원의 성과를 축하하는 내용이었다.
노회찬이 꼽은 ‘내 인생의 한마디’는 신영복이 말한 “함께 맞는 비”였고, 그는 비가 내리는 현장을 떠난 적이 없었다. 표현에는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입에 달고 다는 민중성(서민을 위한 정치)과 ‘골방 사회주의자’들의 급진성은 실천과 동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민중성과 급진성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현실성과 현장성’은 노회찬이 가장 그다울 수 있었던 특성이었고, 노회찬 정치의 ‘발’에 해당되는 가치였다.
출처 : 이광호(2023), <노회찬 평전>, 사회평론, 485-4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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