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의 꿈

“나는 다시 꿈을 꾼다. 대학 서열과 학력차별이 없고 누구나 원하는 만큼 교육받을 수 있는 나라, 지방에서 태어나도 그곳에서 교육받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 아무 불편함이 없는 나라,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 나라, 인터넷 접속이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되는 나라,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국민이 악기 하나쯤은 연주할 수 있는 나라, 토머스 모어는 고작 하루 노동시간을 여섯 시간으로 줄여놓고 그 섬을 존재하지 않는 섬, 유토피아라 불렀지만 나는 그보다 더 거창한 꿈을 꾸지만 단지 꿈이라 여기지 않고 있다.”

- 노회찬(2010), <진보의 재탄생>, 서문


자유인

노회찬에게 자유란 "'어머니가 주신 첫 선물'로 생명과 같은 것"이었다. 2011년 30일간의 단식농성을 마친 뒤 얼마 지나지 않은 8월 하순 어느날 한림국제대학원대 정치경영연구소의 '自由人'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나에게 자유라는 것이 생명과 같은 것이다. 생명이 없으면 자유가 무의미하다. 생명이 있기 때문에 자유가 의미가 있는 것이다. 또 이러한 자유는 생명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나에게 주신 선물은 나에게 생명을 주신 것이고 또 그 생명이 있기 때문에 자유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명만큼 자유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자유는 어머니가 주신 첫 선물이라 생각한다.”

노회찬이 부모님께 부친 편지에도 가끔씩 자유가 등장한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일이 평생의 운명처럼 되어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할 때, 비록 신체적 자유가 구속되어 있다고는 하나 이곳에서 편안히 독서하고 운동하며 또 일주일에 한두 번쯤 상추쌈까지 먹을 수 있는 저의 처지는 여전히 혜택받는 계층에 속한다 할 것입니다." - 1990년 5월 26일 서울구치소

서울구치소와 청주교도소 수감생활을 함께 한 사회학자 이진경(서울과학기술대 교수)은 노회찬에 대해 이렇게 회고한다.

"노회찬 의원과는 개인적인 연이 있습니다. 구치소에서도 같이 있었고 징역 생활도 청주에서 같이 했지요. <삶을 위한 철학 수업> 강연할 때 항상 드는 예인데 아주 보기 드문 사람이었습니다. 감옥이란 자유를 제한하는 구속의 공간이죠. 그래서 누구나 닫힌 방의 숨 막히는 공간에서 나오려 애쓰는데 그래도 그 당시 구치소는 정치범이 너무 많아(300명 이상) 징역 생활이 좀 ‘트여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노회찬 씨는 인사라도 하려 찾아가 보면 문을 잠가놓고 있는 겁니다. 하여 문을 따달라고 할까요? 물어보면 그러지 말라고, 자기가 일부러 부탁해서 잠근 거라는 겁니다. 이유를 물으니 구속되기 전엔 보고 싶은 책이 많아도 시간이 없어 못 보았길래 구속되면서는, 이젠 책 좀 실컷 봐야지 했답니다. 그러나 징역이 트여 있는 덕에 찾아오는 이들이 너무 많아 책을 제대로 볼 수가 없더랍니다. 그래서 일부러 잠가놓고, 닫힌 문 앞에서 얼른 돌아가게 하려는 것이라는 겁니다. 흔히 자유와 구속을 대립시키지만 이를 보고선, 아, 자유란 때로 더 강한 구속을 자처하면서도 가능한 것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책을 보는 자유를 위해 방문을 잠그는 구속을 자처한 것이니까요. 마치 자유인이 되기 위해 문을 잠그는 무문관 수행자들처럼. 자유란 그런 점에서 능력이라고, 능력만큼 자유로운 것이라고 하는 얘기를 무엇보다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 노회찬재단(2019), <그리운 사람 노회찬>, 42-44쪽 


이어서 읽기


문화인

'첼로를 연주한 정치인', '영화를 사랑한 정치인' 노회찬의 문화적 감수성은 문학과 예술, 음악을 사랑하고 즐겼던 부모님의 영향 속에서 어린 시절부터 쌓아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와 문학을 사랑한 도서관 사서 출신의 아버지와 교사이던 어머니는 함경도 출신으로 전쟁 통에 월남한 피난민이었다. 초량동 산동네에 다섯 가족이 세 들어 사는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오페라 공연이 있으면 빼먹지 않고 갈 정도로 예술을 사랑했다고 한다. 노회찬은 “그때(중학교 시절) 음악에 눈을 뜨게 해준 분이 아버지였다”며, 베토벤의 ‘운명’을 100번 이상 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악기 하나는 연주할 줄 알아야 한다’는 부모의 권유 속에 중학교 때 첼로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노회찬은 솔직하게 말한다.

“제가 초등학교 입시 마지막 세대여서 6학년 12월 달에 부산중학교에 입학을 했어요. 3월 달까지는 할 게 없잖아요. 놀아야 되는데. 어머니가 원칙이 있었어요. 가정형편이 어렵지만 악기는 하게 한다. 이래가지고 악기 하나씩은 하게 된 건데. 누나가 피아노. 넌 뭐할래? 그래서 누나가 피아노 하니까, 바이올린이나 첼로 중에 하나 골라라. 해서 보니까 바이올린은 작고 첼로는 크잖아. 그때 나는 그걸 기구로 봤으니까. 작은 것은 다루기 힘들 거다 생각하고, 큰 거는 다루기 쉬울 거다. 그래서 첼로 하겠다고 그랬지.” - 노회찬 외(2010), <진보의 재탄생>, 꾸리에, 24쪽

혁명가를 꿈꿨던 시절에 대해 훗날 노회찬과 김어준은 이런 대화도 나눈다.

김어준) 아니 대표님 경력을 봐서 누가 부드럽게 살았다고 하겠어요? 저 사람은 틀림없이 음악도 모르고 오페라도 모르고 문화적 소양도 없고, 그렇게 생각하기 십상이죠.


노회찬) 과거에 <러시아 혁명사> 같은 거 읽으면서 굉장히 감동했던 건 뭐냐 하면…. <이스끄라>라고 혁명가들이 만든 신문 있잖아요? 편집진이 당시 핵심 혁명가들이었는데, 서술한 내용을 보면 문학과 예술에 대한 조예가 상당히 깊었어요. 사실 봉건시대 이전의 교양인은 귀족이었죠. 그런데 봉건시대 이후의 교양인은 혁명가였어요. 문학, 과학, 예술, 철학, 이런 것에 대한 이해가 굉장히 풍부했고, 그런 것들이 혁명에 영향을 많이 미쳤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우리도 그런 걸 굉장히 중시해야겠다. 혁명가가 되려고 음악 좋아한 건 아니지만. - 노회찬 외(2010), <진보의 재탄생>, 꾸리에, 32쪽

문화인 노회찬의 꿈은 “모든 국민이 악기 하나쯤은 연주할 수 있는 나라”로 나아간다. 그것은 ‘샹제 라 비(Changer la vie, 삶을 변화시키자)’를 선거 구호로 내건 프랑스 대통령 미테랑의 공약이기도 했다. 미테랑 대통령은 재임 시절 수많은 치적을 남겼지만, 정작 자신은 문화대통령으로 기억되기를 원했다고 한다. 2010년 진보신당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한 노회찬, 공약집 <노회찬의 약속>에는 ‘모여라, 천만인 오케스트라’라는 제목 아래 문화예술정책의 내용이 담겨 있다. ‘누구나 악기 하나쯤은 다룰 수 있는 서울, 그래서 천만인이 제각각의 삶으로 위풍당당해지는 서울, 그 청사진’의 하나로 노회찬은 이런 내용을 약속한다.

“우선 지금처럼 시설 중심의 예술가 지원정책에서 '생활지원형 사업'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것과 지역의 소규모 예술교육이 병행되어야 하는 거죠. 한 예로 '우리 동네 예술가' 사업을 제안합니다. 미술가에겐 '동네 아뜨리에'를 만들어주고, 사진작가에겐 '동네 사진관'을 만들어 드립니다. 연극가와 음악가에겐 지역 문화센터의 공연장을 활용할 수 있게 해드리는 거죠. 그리고 공공문화시설의 '요금상한제'를 실시할 것입니다. 작년에 독일을 다녀온 친구는 유명한 베를린 필 오케스트라를 단 8유로에 보고 왔습니다. 시민이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함께 할 수 없는 공공문화시설은 시장과 구청장의 액세사리에 불과합니다.” - 노회찬(2010), <노회찬의 약속>, 레디앙, 91쪽


평화인

2018년 2월 창비에서 주최한 ‘지혜의 시대’ 연속 특강 시간에 노회찬은 묻고 답한다.

“과연 전쟁이 해결책일 수 있을까요? 전쟁에서 이기면 평화가 찾아올까요? … 저는 이렇게 말하고는 합니다. 안보, 안보 부르짖는 사람 중에는 전쟁이 나면 보이지 않을 사람이 태반이라고 말입니다. 어쨌든 전쟁에는 너무나 큰 대가가 따르기 때문에 어렵더라도 반드시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켜야 합니다. … 우리 모두 기억했으면 합니다. 평화란 의견이 갈릴 수 없는 문제입니다.” - 노회찬(2018), <우리가 꿈꾸는 나라>, 창비, 80~85쪽

생전에 분단 문제를 극복하고 한반도 평화 실현을 위해 노력해온 노회찬은 아이러니하게도 분단 ‘덕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노회찬에게 평화와 통일이란 정치 문제 이전에 가족 문제였다. 노회찬의 부모님 두 분 다 함경남도가 고향이다. 1.4후퇴 때 흥남을 떠나 거제를 거쳐 부산에 정착한다. 실향민 2세대인 노회찬은 그래서 이산가족 상봉 소식이 나올 때마다 가슴이 설레고 아프다. 2017년 7월 17일 대한적십자사가 추석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회담을 제의했을 때도 그랬다.

“제 어머니가 우리 나이로 89세입니다. 기억이 희미하고, 치매 초기예요. 주변에 계시던 친구 분들도 대부분 돌아가셨고요.”

노회찬의 말은 이어진다.

“북에 유감이 많습니다. ‘몇 사람 만나는 게 중요하냐, 통일이 중요하지’라는 북의 인식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핵·미사일과 제재라는 상황이 있지만 정치와 인도적 문제는 분리돼야 합니다. 이산가족 상봉이 남북 화해의 상징인 양 이벤트처럼 돼서도 안 되고요. 상봉은 인권이자 휴머니즘의 문제입니다. 어머니 같은 분들에게는 시한부 사안이에요. 개인들이 무슨 잘못입니까. 혈육끼리 만나겠다는데 그걸 정치가 가로막는 꼴입니다.” - 서울신문(2017), “이산가족 노회찬의 유감”

2007년 5월 2일 민주노동당 대선 예비후보 노회찬은 ‘P+1 코리아(Peace Korea & One Korea) 현장 대장정’의 첫 행보로 강원도 철원 민통선 지역을 방문한다. 노회찬은 “평화가 밥이다”라고 역설하며 “평화가 밥 먹여주느냐고 질문하는데, 평화만이 양질의 밥을 제공한다는 것을 증명해 내겠다”고 말했다. 이어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해 금강산선을 복원, 2012년 서울에서 내금강으로 수학여행을 갈 수 있게 하겠다”며 “남쪽에서는 관광 수익을 올리고 북쪽에서는 (철원 평야로) 밥 만드는 기회를 제공해 개성공단처럼 서로 경제적 이득을 누리는 동시에 평화를 앞당길 수 있다”고 전했다. 노회찬의 유고집 <우리가 꿈꾸는 나라>에는, ‘전쟁은 선택지가 아니다’는 제목의 글이 수록돼 있다.

“평화란 어디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저 멀리서 오지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겠지만 빠르고 편한 지름길은 없습니다.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만한 노력과 각오가 필요합니다. 저는 그 누구도, 보수라 할지라도 전쟁을 부추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건 보수가 아닙니다. 가짜지요. 극우라면 모를까 건강한 보수라면 절대 전쟁을 고려해서는 안 됩니다. 보수든 진보든 평화와 안전을 추구해야 합니다. 예컨대 유럽에서도 보수와 진보의 의견이 갈리는 문제는 경제나 복지입니다. 전쟁도 불사하자는 주장은 나라를 망가뜨리자는 것일 뿐 보수라는 이름으로 용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기억했으면 합니다. 평화란 의견이 갈릴 수 없는 문제입니다.” - 노회찬(2010), <우리가 꿈꾸는 나라>, 창비, 84-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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