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재단 -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재단 소식

소식지(6호) 문화인 노회찬 - 노회찬, 그와 나의 교집합

재단활동 2019. 10. 31



 

노회찬, 그와 나의 교집합

김조광수 (영화감독, 노회찬재단 이사)


내가 노회찬재단의 이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들 중에는 의외라는 반응을 보인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 난 정의당원이 아니었고 정치에 몸담은 사람도 아니었다. 노의원과는 교집합이 별로 없어 보이는 나였다. 그런 나에게 노회찬재단을 준비하시던 분들이 재단의 이사가 되어 달라 요청을 해왔을 때 나는 망설임 없이 수락했다. 변변하지 않은 내가 재단에 누가 될까 봐 염려는 되었지만 주저 없이 재단의 이사가 된 것은 노의원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또 좋아하는 마음을 특별히 표현한 적이 없어서 정말 미안하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노의원과 교집합을 이루던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 내 인생의 중요한 변곡점이 된 때였다.

첫 번째 교집합,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영화인 선언.
나는 진보정치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학생운동을 나름 열심히 했지만 대학 졸업 후에 영화 일에 매진해왔고 그 일에 푹 빠져 살았다. 세상을 바꾸는 일도 영화를 통해서 해보겠다는 생각에 머물던 내가 변한 건 민주노동당 때문이었다. 아니, 노회찬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당시 민주노동당의 선거를 이끌던 새내기 정치인 노회찬과 영화인 몇 명이 만나는 자리가 있었고 거기서 그와 처음 인사를 나눴다. 악수를 하고 인사를 하며 얼굴을 보았는데, 소년 같은 얼굴로 웃고 있었다.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날 나눴던 이야기들은 지금은 희미해졌지만 그의 수줍음은 잊히지 않는다. 뭐든 주고 싶은 마음을 갖게 만드는 그의 수줍음에 끌려 열심히 사람들을 모았다. 진보정치에 동의하고 움직였다기보다는 노회찬의 매력에 움직였다고 해야 정확할 것 같아. 그렇게 나는 진보정단의 당원이 되었고 그 이후엔 정당정치에 이렇게 저렇게 작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두 번째 교집합, 차별금지법.
호주제 폐지, 성전환자 성별 변경 특별법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법률을 발의하고 제정하는데 앞장서 온 노의원은 국회의원 최초로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조직화되고 노골화 되던 때, 누구보다 먼저 손을 잡아 준 그였다. TV에서 보여 준 촌철살인의 유머와 해박한 지식, 국감장 등에서 보여 준 날카로움, 수많은 집회에서 보여 준 단호함 등 그는 처음 만났을 때와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그렇게 보였다. 이제 더 이상 새내기 정치인이 아닌 이른바 스타 정치인 노의원을 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행사에서 만났다. 우리는 그에게 무지개인권상을 수여했고 그는 여전히 수줍게 웃었다. 그는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여전한 수줍음이 좋았다. 언젠가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것이고 그 평등의 역사에 노의원은 맨 앞에 기록될 것이다. 

세 번째 교집합, 당연한 결혼식.
2013년 9월 7일, 결혼을 했다. 내 인생에 결혼이란 없을 줄 알았는데, 결혼하고 싶은 상대를 만났고 결혼을 약속했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떠들썩한 결혼식을 해야 했다. 그 결혼식에 우리는 ‘당연한 결혼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직은 당연하지 않은 결혼식을 당연하게 치르자는 나름의 다짐이자 천명이었다. 그 결혼식에 노의원이 하객으로 참석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왔지만 노의원을 특별히 잊지 못하는 건, 조용히 오셔서 조용히 얘기 하시고 조용히 가셨기 때문이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하객이 아니라 신랑들이라 생각하셨고 결혼을 먼저 한 선배 기혼자로서 얘기해 주셨고 가신다는 말없이 가셨다. “동성부부에게 이성애자 남편이 따로 해 줄 말은 없고 결혼을 먼저 한 사람으로 두 분이 대화를 많이 하시라.”는 말씀을 지금도 잘 따르고 있다. 우리 부부가 대한민국에서 법률적인 부부가 되는 날에 꼭 모시고 싶은 분이었는데, 그걸 할 수가 없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힘들 때마다, 멈추고 싶을 때마다 수줍은 웃음과 그의 마지막 말을 기억하며 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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