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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소식

민들레(9호) 문화인 노회찬 - 전시장에 들어서다, 한애규

재단활동 2020. 01. 30



 

전시장에 들어서다 (테라코타 작가 한애규)


그가 멋쩍은 듯 어색하고도 환하게 웃으며 전시장에 들어선다. 
해를 거듭해 만나면서 알게 된 바, 그는 사실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가 ‘토요일’전의 개막식에 온 것은 그때가 처음이 아니다. 서촌에 있는 아트사이드 갤러리에서 2012년부터 매년 한 번씩 열리는 정기전에 그는 빠짐없이 자리를 함께 해 왔다. 

‘토요일’전은 흙을 주재료로 작업을 하는 미술작가들이 벌이는 전시로서 다양한 구성원들이 참여한다. 나이와 성별, 그리고 작업에 임하는 태도는 제각각이었지만 흙에 대한 열정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수줍음 많은 노회찬은 서촌, 인사동, 남산골로 이어지는 전시에 모두 참석해 밤늦게까지 자리를 같이 하며 작가들의 고단한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작년, 아니 벌써 재작년이 되어버린 2018년 전시 뒤풀이에서 한 작가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 “늘 이 자리에 계셨던 분이 오늘은 안 오셨네요. 그를 위해 건배합시다!” 그건 차라리 절규였다. 우리는 중요한 시선 하나를 잃었다. 

전시와는 별개로 그의 고교동창들을 비롯한 다양한 직업을 가진 몇몇이 가끔 혹은 자주 자리를 함께했다. 모이면 주로 살아가는 얘기를 했고 음악, 미술. 문학에 대해서도 대화를 했다. 물론 그를 통해 듣는 시국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었다. 

한번은 클래식음악 이야기를 하다가 요즘엔 왜 모차르트 같은 작곡가가 나오지 않느냔 의문을 누군가가 제기했을 때, 그의 의견은 이랬다. 왕과 귀족과 사제들의 권위가 교회 첨탑만큼이나 높았던 시절의 음악과 시또양(Citoyen. 시민, 평민)의 시대의 음악이 같을 수는 없다. 모차르트의 계보는 시대의 전환을 거쳐 비틀즈와 퀸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음악 뿐 아니라 예술 전반에 관한 그의 생각은 일관적이었다. 유명한 그의 말대로 예술은 만 명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만인을 위한 것. 특수한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누려야 한다는 생각을 그는 <모든 국민이 악기 하나쯤은 다룰 수 있는 세상>이라는 말로 표현해왔다. 

그 모임은 우리 각자가 하던 일로 지친 몸과 마음을 누이는 쉼터 같은 곳이었다. 
그와 이별하기 열흘 전 쯤 우리가 마지막으로 술잔을 기울였을 때 (공교롭게도 그 장소의 이름이 ‘쉼’이다) 쇼스타코비치가 잠시 화두가 되었다. 누구는 평생에 한 소절도 악상이 떠오른 적이 없다며 작곡가들의 능력을 경이로워 하자 그는 딱 한 곡, 그것도 고교시절에 작곡한 곡이 있다며 처음으로 ‘소연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자리를 파하고 작가 흩어질 때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내게 커다란 검정 우산을 건네 주었다. 
그러고 보니 그는 인생의 찬비에 내몰린 이들에게 우산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가 간 뒤 남겨진 검정 우산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작가들은 작업을 계속 할 것이고 나의, 우리의 전시는 이어져나갈 것이다. 우리의 새로운 전시 때마다 수줍고도 환하게 웃으며 성큼 들어서던 그의 모습은 전시장 입구에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기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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