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소식
민들레(10호) 음식天國 노회찬 - 거제도에서의 하루
▶ [음식天國 노회찬] 통영의 추억편 에서 이어집니다
회사 후배에 거제도 출신이 있다. 성실하고 순박한 친구인데 고향 얘기만 나오면 딴 사람이다. 우리 어렸을 때요, 웬만한 곳은 다 헤엄쳐 다녔어요. 집 대청마루에 앉아 낚싯대를 던지면 돔과 우럭이 막 올라와요. 누군들 그 뻥을 믿었겠는가만은 섬과 섬 사이를 아이들이 헤엄쳐 다니고, 집 마당에서 낚시를 할 수 있는 그 곳은 참 좋은 고향일 거라고 생각했다.
여행 이틀째. 통영 국제음악당 라운지에서 아침햇살을 맞으며 생맥주 한 잔으로 해장한 일행은 ‘로컬가이드’의 안내로 거제도로 향한다. 통영에서 거제대교를 건너면 바로 거제도이다. 2010년 거가대교가 개통되고부터는 부산에서도 차로 1시간 대면 거제 시내에 들어온다. 거제도는 크기로는 제주도 다음이지만, 해안선 길이로는 제주도의 3배가 된다니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섬’이다. 꼬불꼬불한 리아스식 해안이기에 가능한 이야기. 해안선을 따라 드라이브하면서 바다를 보다가 문득 눈에 잡히는 풍경이 있었다. 어느 해안인가에는 집들이 바다와 바로 붙은 듯이 있고, 그 바다 저쪽에 작은 섬들이 헤엄쳐 가면 금세 닿을 듯 가깝게 보인다. 거제도 물개의 뻥이 나름 팩트에 근거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대청마루 낚시터까지는 몰라도 거제에 가면 노회찬이 즐겨 찾는 두 곳의 식당이 있다. 한 곳은 거제도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집 ’천화원’이고, 다른 한 곳은 이번 여행의 호스트이자 가이드인 장석 선생이 경영한 굴 농장의 직원식당이다. 굴 농장 ’중앙씨푸드’는 거제대교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나오는 둔덕면 해안에 있고, 천화원은 섬 반대편 해안의 장승포항에 있다.
장승포 천화원의 ‘거제도 조르바’
거제도 장승포항의 화교 중국집 천화원은 노회찬이 “동북아시아 바닷가에서 가장 맛있는 중국집”으로 사랑한 중국집이자, 그런 노회찬을 또한 무척이나 좋아했던 중국집이기도 하다. 일흔셋의 주인장 배영장 선생은 술이 몇순배 돌고 이야기가 노회찬에 이르면 금세 가슴이 먹먹해진 눈빛으로 그의 부재를 아쉬워한다. 배 선생과 장석 선생은 같은 거제도에 살면서 알게 된 오랜 지인. 노회찬은 친구 굴농장에 놀러 다니다가 천화원의 주인장을 알게 되었고, 두 사람은 나이차를 떠나 금세 손님과 주인 관계 이상의 친구가 되었다. 소위 배짱이 맞았다고 할까. 배 선생은 2008년 노회찬이 삼성떡값검사 명단을 공개한 시말을 담은 책 <나를 기소하라> 출판기념회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 때, 천 리 길을 마다않고 달려와 노회찬을 놀라게 할 정도였다. 그런 인연으로 노회찬은 친구들과, 보좌진들, 지인들과 휴식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천화원을 더욱 자주 찾게 되었다고 한다.
배 선생은 부모가 중국 산동 출신으로 함흥에서 태어났으나 1.4후퇴 이후 줄곧 거제에서 살았으니 거제 사람이나 다름없다. 월남한 함경도 부모 사이에서 부산에서 태어난 노회찬과는 이런 출신 배경에서도 공통점이 있었다. 아무튼 그의 빠른 거제 사투리 말씨를 듣노라면 누구도 그가 중국 말을 하는 화교란 걸 믿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나이가 무색하게 정력이 넘친다. 말도 거침없고 화제도 거침없다. 회찬 친구들이 그를 “리비도가 너무 넘쳐서 탈”이러거나 “거제도 조르바”라거나 하는 말이 그저 하는 말이 아닌 것 같다. 초면인 필자의 눈에도 흰 수염 무성한 얼굴, 갈색 카우보이 모자, 라이더 점퍼에 청바지차림은 영락없는 거제의 안소니 퀸이나 숀 코네리다.
천화원은 인터넷을 검색하면 거제도의 명물 중국집으로 나온다. 2016년 방송을 타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주메뉴는 짬뽕과 유산슬. 맛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차이가 두드러진다. 그러나 담백한 것을 좋아하는 필자의 입맛에는 딱 좋은 맛이었다. 중국요리 특유의 기름기는 덜하면서 한국적인 자극미는 줄인 옛날 중국집 같은 맛이 이 집만의 깊이와 연륜을 느끼게 해주었다. 서울에서 노회찬의 친구가 왔다고 주인장 부자가 꽤 신경을 쓴 ’특식’이 잇따라 나오는데 우리만 특별 대우를 받는 것 같아 다른 손님들에게 미안할 정도였다.
맨 먼저 나온 것은 가지찜. 고 김우중 대우그룹회장이 부인 준다며 싸가지고 갔다는 그 가지 찜이다. 돼지고기를 다져 넣고 쪄서 파와 굴 소스를 얹어서 먹는다. 장 선생이 가져온 58도짜리 금문 고량주를 곁들여 노회찬에게도 한잔 올리니 비로소 천화원의 평화가 가슴에 깃든 기분이다. 천화원이라는 이름은 6.25 당시 배 선생 부친과 아버지의 일본 유학파 친구가 하루빨리 전쟁이 끝나고 세상에 평화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지은 것이라고 한다. 하늘 천, 평화 화, 동산 원. 天和園. 피난민촌과 전쟁 포로수용소가 있던 당시의 거제에 꼭 필요한 이름이었을 것이다.
이어서 나온 메인디시 격의 요리가 광어찜. 사실 이곳에선 봄철 도다리찜이 제격이지만 여기는 중국집. 도다리 대신 살이 많은 큰 광어와 쑥 대신 고수를 넣어 찜을 만들었다. 생선에 칼집을 내고 생강, 파를 넣어 찐 다음, 홍고추, 파 등 야채를 올리고 비법의 간장소스를 얹었다. 이런 식으로 찐 광어를 먹어보기는 처음인데, 사실 이 요리의 원래 레시피는 칭쩡위(淸蒸魚)라고 하는 중국 남방의 생선요리이다. 보통 농어나 우럭을 쓴다고 하는데 주인장께서 우리를 위해 큰 광어를 쓴 것이다. 한국 바닷가 중화요리집이 아니면 쉽게 먹을 수 없는 멋진 요리다. 칭쩡위 이야기가 나오니 노회찬의 칭쩡위를 빼놓을 수 없다. 동아일보 김창희 선배의 회고. “1997년경 장석, 회찬과 셋이서 백두산 여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중국 광동 생선요리인 칭쩡위를 처음 먹었다. 그 요리에 엄청 감탄한 회찬이가 몇 년 뒤 무창포 앞바다에서 직접 낚시로 잡은 우럭으로 칭쩡위를 만들어 어머니와 지선씨(노회찬의 부인)를 즐겁게 한 일이 있었다. 회찬인 요리에 대한 호기심도 참 많았다.”
이 대목서 고량주 한잔 추가 흡입. 굴튀김과 굴찜, 청경채를 곁들인 동파육 등도 나무랄데 없어 어느새 술병이 비고 새 병을 딴다. 배 선생 부자가 정성들여 준비한 오늘 메뉴는 모두 회찬이가 좋아하는 것으로 골랐다고 한다. 노회찬의 음덕에 다시 한잔을 바친다. 장 선생은 이날 특별히 청색에 금박무늬가 있는 청나라옷을 입고 배선생과 재회의 술잔을 나누었다. 장 선생은 그옷을 입고 배 선생 아들이 중국인 며느리와 결혼할 때 신부 아버지를 대신했다고 한다. 그것을 기억하며 두 사람이 한번 더 잔을 나눈다.
부친이 타계한 스물두 살 무렵부터 주방을 지켜온 배 선생은 몇 해 전 아들 내외에게 자리를 내주고 뒤로 물러났다. 복어알을 잘못 먹고 죽을 뻔한 그 때로부터 나이를 새로 세고 있다. 덤으로 사는 인생, 남한테 폐 끼치지 말고 살자 그런 마음이란다.
거제도 조르바의 안내로 해 질 녘의 장승포항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거제도 장승포항은 통영 쪽에서 보면 섬 반대편에 있는 항구이다. 만이 남쪽을 향해 열려있어서 겨울에도 따뜻하다는 천혜의 포구다. 지금은 작은 항구이지만 한때는 거제도 유일의 시였다. 1995년 행정구역 개편 때 거제군과 통합되면서 거제시의 일부가 됐다. 대우조선이 있는 옥포만은 장승포항 옆에 있다. 2010년 거가대교의 개통으로 부산에서도 1시간 대면 올 수 있어 새로운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장승포는 대한제국 무렵부터 근대적인 어업기술을 가진 일본 어민들이 이주해와 개척한 탓인지 아직도 일본식 건물이 잔영처럼 곳곳에 남아 있다. 6.25 전쟁의 아픈 상흔이 훌륭한 복지사업을 일으킨 곳도 자리하고 있다. 1952년 7명의 갓난 아이를 돌보며 시작해 지금은 지적장애인 재활시설로 운영되는 사회복지법인 애광원이다. 수십동의 빨간 지붕 건물이 아름다운 고급 휴양시설처럼 보이는 애광원은 전쟁고아와 가족들의 어머니라고 불린 김임순(1925~)이 세우고 지금껏 운영하고 있다. 거제도 섬 한편에 이런 훌륭한 사업이 70년 가까이 이뤄지고 있는데도 모르고 있었다니 조금 부끄러워진다.
천화원 옆의 장승포 우체국도 사연이 있다. 장승포 우체국은 우리나라에 근대적인 우편행정기관(우정국)이 세워지기 전인 1877년 생긴 경남지역 최초의 우편취급소. 편지가 아니면 섬에 소식을 전하기 어려웠던 시절에 소중한 역할을 해냈다. 장승포 우체국 앞에는 큰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그 아래 안내문을 읽어보니 정호승 시인의 시이다. 문학소년이던 노회찬도 읽고 갔으리라. 장승포에 와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한 번쯤 다녀가보라는 뜻에서 옮겨 적어본다.
바다가 보이는 장승포 우체국 앞에는 키 큰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그 소나무는 예부터 장승포 사람들이 보내는 연애편지만 먹고 산다는데/ 요즘은 연애편지를 보내는 이가 거의 없어 배고파 우는 소나무의 울음소리가 가끔 새벽 뱃고동 소리처럼 들린다고 한다/어떤 때는 장승포항을 오가는 고깃배들끼리 서로 연애편지를 써서 부친다고 하기도 하고/장승포 여객선 터미널에 내리는 사람들마다 승선권 대신 연애편지 한 장 내민다고 하기도 하고/ 나도 장승포를 떠나기 전에 그대에게 몇통의 연애편지를 부치고 돌아왔는데/그대/장승포 우체국 푸른 소나무를 바라보며 보낸 내 연애의 편지는 잘 받아보셨는지/왜 평생 답장을 주시지 않는지.
중앙씨푸드 직원식당의 굴 삼겹살
통영에서 거제대교를 건너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둔덕면이다. 이곳에 장석 선생이 경영하는 굴농장이 있다. 중앙씨푸드라는 굴양식과 식품 제조회사이다. 이 중앙씨푸드 직원식당은 말 그대로 회사의 임직원, 노동자들의 식사를 책임진 구내식당이다. 굴농장 식당답게 각종 굴 요리를 비롯한 음식들이 한결같이 맛이 좋아 직원들은 물론 손님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다. 일반 식당이 아닌만큼 누구나 이용할 수는 없겠지만 경영자인 장 선생이 관계된 단체나 학교, 관계사 가족들이 거제도에 놀러올 때 종종 회식하는 장소로 애용한다고 한다. 노회찬과 그 친구들, 그리고 그 가족들과 모임 등의 멤버들에게도 추억의 단체여행지이다.
일행이 수고하신 주방장 아주머니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자리에 앉으니 입에 군침이 도는 음식이 한 상 가득하다. 굴 농장 답게 싱싱한 생굴은 물론 굴전과 굴튀김 등 굴요리가 즐비하다. 볼락을 젓갈로 넣은 무김치(해풍김치라고 불렀다)를 비롯한 밑반찬들도 여기가 직원식당인가 싶을 정도로 정갈하고 풍성했다. 무엇보다 돼지고기 삼겹살과 생굴을 같이 구워 먹는 ‘굴 삼겹살’은 왜 이 메뉴로 전문식당이 생기지 않고 있는지 이상할 정도이다. 회찬은 이곳에 오면 늘 본인이 직접 집게와 가위를 챙겨들고 굴 삼겹을 구워냈다고 한다.
장 선생이 언젠가 찍은 사진을 가져온다. 국회에서 바로 왔는지 흰 셔츠 넥타이 차림으로 고기를 굽던 중에 다가온 장 선생과 한 장면을 만들었다. 사진 속 회찬의 얼굴에 편안한 익살이 넘친다.
노회찬의 오랜 보좌관이었던 박규님 실장의 회고에 따르면 이 행복한 장면은 2017년 2월 4일 노회찬 의원실이 통영으로 워크숍을 갔을 때 남긴 것이었다. 일정을 마치고 “당연히” 천화원에서 점심을 하고 중앙씨푸드 직원식당에 들렀는데 마침 졸업여행을 온 이우학교 고3 학부모들과 조우했다. 이우학교는 당시 장 선생이 이사장으로 학교 운영에 힘을 보태던 대안학교인데, 이 학교는 졸업식이 끝나면 “수고했다”라는 의미에서 학부모들만의 졸업여행을 가지고 있었다.
노회찬은 이날 장기자랑 시간에 학부모들의 성화로 노래를 한 곡 하게 되었는데, 노래에 앞서 꽤나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요컨대 중학생 때부터 첼로를 배워서 연주를 잘하고 수많은 명곡을 줄줄 외우고 있는 “나같이 잘난 국회의원”에게도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준 친구가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단순히 이사장님으로만 기억될 수도 있는 친구 장석을 “문학뿐 아니라 문화예술의 스승이 되어준 친구”로 소개하며 한껏 비행기를 태워주었다. 사진 속 장 선생의 표정을 보면 이날 그의 기분을 짐작하고도 남을 것 같다. 이어서 노회찬이 부른 노래는 ‘가고파’. 노래 실력이 말솜씨만큼 좋았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그날의 가고파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졸업생 자녀들만큼이나, 그들을 세상으로 내보내는 가슴 벅찬 부모들에게도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요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어릴 제 같이 놀던 그 동무들 그리워라
어디간들 잊으리요 그 뛰놀던 고향 동무
오늘은 다 무얼 하는고 보고파라 보고파
중앙씨푸드는 우리나라 굴생산의 70%를 담당한다는 통영 일대 청정해역에서도 맨 먼저 기업형 굴양식을 시작한 곳이다. 장 선생의 부친은 이북출신으로 수산전문학교를 나와 선진적인 굴양식 지식과 이해를 바탕으로 일찍이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중앙수산이란 이름으로 1969년 문을 열었고, 장 선생은 대학을 졸업하던 1985년 무렵부터 부친의 사업을 돕기 시작했다고 한다. 앞에서 잠깐 소개한 대로 198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면서 화려하게 등단한 시인이기도 하다. 한동안 사업에 치여 시를 쓰지 못하다가 최근 시심을 가다듬어 첫 시집을 상재할 준비를 하고 있다. 청정한 바다의 숨기운을 담았다고 하여 자신이 키운 굴에 ’숨굴’이라는 멋진 이름을 붙여준 것만봐도 시인 사장의 "문학적 역량"도 짐작할만하다. 장 선생은 이우학교 운영 등 사회봉사와 기부활동도 열심이다. 노회찬이 여러 어려움 속에서 꽤 긴 기간동안 발행했던 <매일노동뉴스> 경영에도 가까운 친구로서 도움을 주기도 했다.
통영해물일번지, 호동식당, 서호시장 시락국
천화원의 만찬을 끝으로 거제도를 떠나 통영으로 돌아온 밤, 마지막 차수를 채운 곳은 통영 해물 일번지. 가리비를 비롯한 조개류로 시원한 국물을 내 늦은 밤 속풀이 막차 집으로 제격이었다. 이 집 역시 노회찬이 친구들과 즐겨오던 곳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들렀던 자리에 젊은이들이 둘러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는 모습을 지켜본다. 노회찬을 아느냐고 물으니 대부분 알고 있다는 눈치를 보여준다. 고마운 젊은이들이었다. 3일째 아침 해장은 중앙시장의 호동식당이 책임져주었다. 깔끔한 국물의 복국은 물론, 아구 수육도 일품이었다. 서호시장에서는 시락국에 막걸리 한 잔. 시간 때문에 들리지 못하고 가는 충무김밥집은 구전으로만 음미한다. 쾌속선이 없던 시절 충무 할매들이 김밥과 오징어무우반찬을 만들어두었다가 연안여객선이나 운송선이 들어오면 재빨리 올라가 팔았다는 그 김밥을 노회찬은 무척 좋아했다. 필자도 물론이다.
통영에서 못 먹고 가는 것이 너무 많다. 다시 와서 하나씩 시식하고 싶은 마음에 최후의 3인인 최만섭 선생과 김경래 화백, 그리고 필자는 통영고속 터미널 앞 낙지볶음 집으로 발길을 옮긴다. 이러다 서울에 가기는 갈 건가? 통영의 세 번째 오후가 그렇게 깊어갔다.
**3일 내내 능력 밖 음주에 밀려 취재가 부실했다. 그나마 원고를 채울 수 있었던 것은 기행을 이끌어준 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가능했다. 초대해 주신 장석 선배님과 언제나 일행의 중심이 되어준 김창희, 최만섭 선배님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