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소식
민들레(16호) 음식天國 노회찬 <15> 창원 오동동부엉이집, 구구바다장어구이집
- 이인우(한겨레 기자)
1.
창원시는 1970년대초 대한민국 최초의 계획도시로 건설됐다. 2010년에는 주변의 마산시, 진해시를 끌어안고 인구 1백만명의 전국최대규모의 기초자치단체가 됐다. 창원이란 지명은 조선초기 태종이 대마도 왜구를 막는 군영 설치를 위해 의창(義昌)현과 회원(檜原)현을 합쳐 창원부를 만든데서 유래한다.
창원공단은 주로 창원시 성산구 일대에 자리잡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노동자 인구가 어느 지역보다 밀집해 있어서 노동자정치세력화 운동이 일찍부터 활발했다. 이러한 창원에 노회찬이 등장한 사연은 다른 편에서도 몇번 언급했었다.
"권영길 의원의 불출마 이후 새누리당에 빼앗긴 의석을 진보진영이 되찾아오려면 민주당과 정의당의 후보단일화가 필수적이고, 그 단일후보는 반드시 새누리당 후보를 꺾을 경쟁력이 있어야 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노회찬 만한 대안이 없었다. 이것은 몇 사람만의 생각이 아니라 정의당을 비롯한 이 지역 민주노동진영의 중론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실제 선거국면은 험난한 길의 연속이었다. 노회찬이 정의당 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민주노총 조합원의 지지를 먼저 얻어야 했다. 이 고비를 넘기면 민주당 후보와의 후보단일화라는 두번째 고비가 있고, 세번째는 당시 여당의 지지세력인 보수 표심의 벽을 넘어야 했다. 노회찬은 이 세 고비를 차례로 극복했다. 노회찬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언해도 좋다.
2.
2016년 2월 출사표를 던지고 창원에 내려온 노회찬 사람들은 당시 여영국 전 의원(당시 경남도의원)이 운영하는 창원미래연구소에 방을 하나 얻어 비공식 선거사무실로 사용했다. 이들은 하루 일과를 마치면 근처 식당을 찾아 저녁 끼니와 한잔 술을 해결하곤 했는데, 그 집 중의 하나가 성산구 상남동의 '오동동부엉이집'(마디미로3번길 8 2층)이다. 오동동은 구 마산의 번화한 동네. 이 집이 오동동에서 시작해 현재의 상남동 자리로 옮겨온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다른 동네로 이사오면서 원래 동네이름까지 그대로 썼다면 그만큼 그 이름으로 많이 알려진 집이란 뜻 일 게다.
ⓒ일러스트 김경래
노회찬은 이 오동동부엉이집 생선국을 무척이나 좋아했다고 한다. 여기 생선국은 비린내 하나 없이 시원한 맛이라 술꾼에게는 해장용으로 딱인데 특히 오동동부엉이집이 유명했다. 술을 좋아했고 또 술자리가 많을 수 밖에 없는 노회찬으로서는 더 할 나위 없는 음식이었을 것이다. 기자도 이런 산 생선국을 처음 먹어보았는데, 단연 가성비 최고의 해장국물이었다.
마산의 대표 향토음식이라고 할 만한 생선국은 바다에서 막 잡은 살아있는 자연산 생선(주로 도다리, 물메기, 명태. 제철 다른 잡어들도 생선국 재료로 쓴다고 한다)을 토막쳐 다시마와 무우로만 낸 육수에 넣고 마늘과 소금, 국간장 등으로 살짝 간을 한 다음 열전도가 높은 양은냄비에서 센 불에 미나리와 몰이(모자반)를 얹어 한소끔 끓인 뒤 바로 손님상에 내놓는 국이다. 산 생선을 쓰는 만큼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는다. 국이 식어도 비린내가 올라오지 않으니 시원한 맛에 식어도 자꾸 손이 간다.
오동동부엉이집 생선국만의 비결이라면 국을 끓일 때 해초(모자반)와 이 집에서 직접 만든 막걸리 식초를 가미하는 것. 양은냄비에서 생선국이 마지막으로 끓을 때쯤, 창원 특산의 북면막걸리로 만든 식초를 반큰술 넣는게 포인트라고. 모자반은 생산량이 많지 않아 전남 완도 등지에서 직접 사온다. 이 모자반 역시 부엉이집 생선국의 차별성을 자랑하는 한편 국물 맛을 잡아주는 미묘한 역할도 하는 것 같다.
마산에는 탱수(삼세기의 경남 사투리)탕도 유명한데, 이 탱수탕이나 봄철 도다리쑥국도 넓은 의미에서 생선국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밖에 부엉이집의 호래기(꼴뚜기의 창원 사투리)회는 제철에만 먹을 수 있는 별미 중의 별미이다. 반찬 하나 하나도 모두 허투른 솜씨가 아니다.
오동동부엉이집은 50년전 마산 합포구 바닷가 오동동6번지 아들 넷 있는 집의 큰 며느리(이계순)가 처음 문을 열었다. 큰며느리의 생선국 식당은 곧 마산 일대에서 손꼽히는 유명한 생선국집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나머지 아랫동서 세명도 '큰행님'을 따라 각자 생선국집을 열어 모두 성업을 이뤘다고. 나중에 큰며느리가 시댁인 오동동에서 이곳 상남동으로 옮긴 것이 지금의 오동동부엉이집이다. 현재는 셋째 이남숙(68)씨가 운영 중이다. "큰 형님이 나이가 드시고 다리가 아파 병원을 다니게 되면서 식당을 대신 맡고 있다"고 설명한다. 2000년대 초 인기 아이돌그룹 인피니티의 호야가 큰 집의 손자라고 한다. 식당 카운터에도 손자의 사진이 자랑스레 붙어있다.
"노의원님은 우리집 음식을 참 좋아했어요. 생선국 외에 병어회, 호래기회도 좋아했지요. 오시면 꼭 들러서 소주 한 잔 하시며 좋은 얘기도 많이 들려주시고. 우리 집엔 다른 유명인들도 오시지만, 노의원같은 분은 보기 힘들어요. 우리 할머니(큰 동서)도 노의원님을 참 좋아하셨는데. 소식 듣고 얼마나 맘이 아팠는지…"
3.
창원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곳을 더 들렀다. 노회찬의 창원 발걸음이 마지막으로 멈춘 집이라고 해서 찾아간 성산구 중앙동의 '구구바다장어구이' 집(외동 반림로126번길 57-1)이다. 창원은 장어거리가 따로 있을 만큼 장어요리가 유명하다. 마산 앞바다에서 바다장어가 많이 잡히고, 또 양식도 많이 하기 때문에 싱싱한 장어를 제때에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구구바다장어구이집은 일행의 소개에 따르면, 창원의 많은 '짱어집' 중에서도 가격대비 맛이 좋기로 소문난 집이라고 한다.
타계 하기 열흘전인 2018년 7월13일 노회찬은 이 집에서 그해 6월 치러진 전국동시지방선거 경남도의원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여영국 전 의원 등을 초대해 소맥을 나누며 아쉬움을 달랬다. 노회찬은 “여의원을 더 크게 쓰여지 게 할려고 창원시민들이 이번에 잠깐 쉬게 하는 것”이라며 몇시간 사이로 천국과 지옥을 오간 여영국을 위로했다(여영국은 개표초기 계속 이겼다가 새벽 부재자투표 개표에서 아슬아슬하게 졌다) 이번 여행에 여 전 의원을 초대해 노회찬과의 창원시절을 돌아볼 기회를 가져보려 했으나, 그만 정의당 중앙당 일정과 겹치는 바람에 자리가 이뤄지지 못했다.
처음 온 사람들에게 이 집은 '구구'라는 특이한 옥호가 먼저 눈길을 끌 것 같다. 보통은 잘 쓰지 않는 한자를 한글과 병기해가며 간판에 쓰고 있는데, 금테두를 구에 공 구 자를 쓴 구구(金+口 球)이다. 직역하면 둥근 공에 금을 씌운 것이니 황금빛 여의주를 연상시킬 의도의 작명임이 분명하다. 유래를 물어보니 아는 스님이 식당주인의 생일이 9월9일인데서 착안해 지어주었다고 한다. 이름 덕분인지 가게가 성업을 이루고 있다니 축하할 일이다.
구구집에는 금속노조 경남지부장을 지낸 신천섭(S&T중공업근무) '동지'도 함께 했다. 노회찬이 창원에 올 즈음의 사정을 잘 아는 분들이 많이 모였으니 선거 때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봤다.
"노회찬 깃발만 올리면 90%이상 승산이 있다고 봤어요. 그런데 막상 선거( 민주노총 조합원의 지지를 확인하는 1차 투표)운동에 돌입하니까 진영논리가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겉으로는 지역연고가 없는 사람을 왜 뽑느냐는 트집이었지만, 실상은 정파간 진영논리가 작용했다고 봐야죠."
결국 노회찬 진영은 민주노총 산하 지부장들에게 내부의 진영논리를 뛰어넘어야 후보단일화도 있고 본선 승리도 있음을 강조하며 현실적 대안으로서 노회찬을 지지해 줄 것을 호소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많은 조합원들, 활동가들이 내심으로는 노회찬을 지지했고, 노회찬만이 빼앗긴 진보정당 의석을 되찾아올 대안이라는데 동의했어요. 그건 틀림없는 사실일거예요." 이처럼 분위기만으로는 1천표 이상의 여유있는 승리가 점쳐졌음에도 막상 개표결과는 박빙이었다. 2위 후보와의 표차는 279표 차. 자칫했으면 질 수도 있었던 선거였다. 그만큼 진영논리는 뿌리깊고 고질적인 병폐였다.
4.
구구바다장어구이집은 기자에게 장어는 기름기 때문에 많이 먹지 못하고 쉽게 물린다는 건 잘못된 고정관념이었음을 일깨워주었다. 장어는 스테미너식으로 인기가 높지만, 기름진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호감도가 그리 높지 않은데, 바다장어는 그게 아니었다. 민물장어와 달리 기름기와 느끼함이 적고, 육질도 고소하고 바삭한 식감도 좋다. 굽기가 바쁘게 젓가락이 나간다. 오후들어서만 벌써 세 번 째 식당인데도 그렇다.
"창원이 장어요리가 발달한 곳이란 걸 와서야 처음 알았습니다."
"본래 마산 앞바다엔 짱어가 많이 잡혀요. 요샌 양식도 많이 해서 짱어가 넘칩니다. 짱어거리도 있잖아요."
이곳 분들은 장어를 꼭 짱어라고 발음하신다.
▲ 노의원이 이 집에 올 때마다 반가운 친구를 대하듯 꼭 보고 갔던, 구구바다장어구이집의 지킴이 (일러스트 김경래)
한 분이 기자에게 "서울에도 짱어집이 있지예?"라고 묻자, 다른 분이 "서울에 없는 게 어딨어? 그래 묻지 말고, 이래 물어야제. 서울에도 이래 맛있는 짱어집이 있습니까?" 아무래도 오늘은 앉은 자리에서 구운 장어를 가장 많이 먹은 날이 될 것만 같다.
"경상도 음식 맛없다는 건 잘못된 편견인 것 같아요. 창원만해도 아구찜, 장어구이, 추어탕, 탱수탕과 생선국 등등 하나같이 다 맛만 좋은데."
"창원의 경우는 싱싱한 해산물을 쉽게 구할 수 있어서 전통적으로 생선요리가 발달한데다, 공단이 생겨 전국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살 게 되면서 각 지방 음식의 장점들이 음식에 스며들게 되지 않았을까요?“
기차시간이 다가와 슬슬 일어설때가 되었는데도 이야기가 끝이 없다.
"찬바람이 솔솔 불어오기 시작한 요즘에는 떡전어도 빼놓을 수 없지요, 창원에선."
떡전어는 가을철에 마산만에서 잡히는 전어를 가리킨다. 창원지역에서는 떡처럼 살이 통통하고 크다고 하여 떡전어라고 부른다고. 보통 전어보다 크기 때문에 큼직하게 토막쳐서 구워먹기도 하고 뱃살의 잔가시를 빼고 회를 쳐 먹거나 무쳐 먹기도 하는데, 어느쪽이나 모두 별미로 친다.
"찬바람 불거든 떡전어 드시러 다시 오세요."
약 8시간 동안 세군데 식당을 들렀다. 속도전하듯 창원의 삼시세끼를 마치고 그만 헤어지려니 그새 창원에 정이 들었는지 케이티엑스(KTX)가 있는 게 오히려 야속하다. 귀한 시간 내어 음식과 이야기 베풀어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살아서 좋은 사람들을 가교로 만들어주신 천국의 노회찬에게도.
함께하신 분들.
배정란(노회찬선본 자원봉사단장)="아들셋이 전교회장도 하고 그러는 통에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하다가 여영국 전 의원의 창원미래연구소에 관여한 것이 계기가 되어 노회찬 의원님 선거를 돕게 됐다. 의원님은 정치인을 떠나 아주 다른 느낌의 사람이셨다. 인연을 소중하게 여겨주셨다. 서울서 내려오면 꼭 사무실 방마다 문을 두드려가며 저를 찾아봐 주시고 안부도 챙겨주시고 그러시는 게 참 좋았다. 제가 노의원님 자랑을 많이 하니까 주변 학부모님들도 노의원을 뵙고 싶어해서 만남의 시간을 부탁드려놓았는데 그걸 못하고 갑자기 가신게 너무 아쉽다."
노창섭(창원시의회 부의장·정의당 경남도당위원장)="공고를 마치고 회사에 들어간 뒤 노동조합에 참여했다. 노 의원님과는 창원에 내려왔을 때 가까이 수행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생각밖에 내향적이고 수줍음을 타는 감수성 예민한 소년같은 일면에 내심 놀랐다. 서울과 달리 동선이 긴 선거운동을 하느라 힘들어하시는 걸 보고 더욱 열심히 도와드리고 싶었다." 노 부의장은 일행의 창원 일정을 도맡아 이끌어주셨다.
신천섭(전 금속노조 경남지부장)=창원 통일중공업(S&T중공업의 전신) 임금투쟁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린다(통일중공업은 당시 급여가 짜기로 소문난 회사여서 거의 매년 노사쟁의가 발생했던 기업이다). 노회찬 선거 현장에서 가장 열성적인 운동원 중의 한사람이었다.
김순희(정의당 경남도당 사무처장)= "중학시절 야간고등학교 보내준다고 해서 공장행 버스를 타고 '여공'이 됐다." 노동조합 일을 열심히 하면서 민주노총의 맹원이 되었다. 정의당에 입당해서는 지역 당무를 도맡아 해오고 있는 살림꾼이다. 노회찬 없음의 무게를 가장 통절하게 실감하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경남도당 사무실 노회찬 사진 아래서 그녀가 "노회찬(의 부재)를 미워하며" 흘린 눈물을 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