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소식
민들레(16호) “당신과 함께, 상하이 교민들을 만납니다”
“당신과 함께, 상하이 교민들을 만납니다”
“20대 나의 고민의 정답지, 노회찬”
“대중언론” 90년대 대학신문사의 고민이었다. 당시 대학신문은 선동과 이념 언어들로 가득했다. 그 때 등장한 캐치프레이즈 “대중언론”이다. 하지만 대중과 소통하겠다는 우리들의 언어는 ‘대중언론의 선봉!’, ‘대중신문의 깃발!’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렇게 졸업고사의 정답을 채우지 못한 채, 세상을 바꾸지 못한 오기와 바꾸겠다는 패기만 안고 교문을 나왔다.
그리고 몇 년 후, 누군가 졸업고사 OMR 카드 정답지를 내밀었다. “노회찬” 의원이다. TV와 신문을 통해 만난 그의 언어는 달랐다. 현장 속에서 피어난 살아 있는 말들에 빠져들었다. 가르치려 들지도, 대놓고 설득하지도 않았다. 단번에 이해되고 공감됐다. 자연스럽게 스며들며 선동 당하고 있었다.
“상하이에 소환된 노회찬”
상하이 교민신문사에서 일한 지 16년 째. 2005년 상하이는 거리마다 사회주의 향기 물씬 풍겼다. 당시 교민신문은 해외 한인사회의 꽃, 향우회·동문회·전우회 소식들과 중국에 진출한 기업소식, 중국생활정보가 지면을 채웠다.
입사한 지 몇 달 안돼 창간특집호를 준비했다. 나의 정답지, 당시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님 인터뷰를 하겠다고 기획서를 내밀었다. 그 동안 교민신문에 없던 정치인 기사를 싣겠다니, 그것도 사회주의 중국에서, 외국 언론이 피할 수 없는 검열이 있는 이 곳에서? 해볼 테면 해보라고 했다. 괜찮을까? 다행히 괜찮았다. 경쟁 신문사의 부러움과 놀라움을 사며 1면을 장식했다. 노 의원님과의 첫 만남은 16년 전 보좌관이 이어준 온라인에서다.
이후 2009년 노 의원님을 또 한번 상하이로 소환했다. 재외국민 선거, 참정권 관련 인터뷰에서 진보신당 대표로 의견을 주셨다. 두 번이나 지면을 빛내 주신 것에 감사인사를 제대로 드리지 못한 죄송함이 크다.
“상하이에서 만난 노회찬”
20대 국회의원 재외선거를 앞두고, 정의당을 응원하는 노 의원님 대학 후배들이 그를 상하이로 모시자고 제안했다. 허망하게 국회의원 타이틀을 뺏긴 것에 대한 분노가 후배들을 자극했던 것 같다. 국회의원이 아닌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 작가로 초청됐다. 반가웠지만 아팠다.
2015년 12월 상하이 한인타운의 한 호텔 강연장, 나의 OMR카드 정답지를 만나는 순간이다. 두 번의 서면 인터뷰 끝에 실물을 영접하게 된 역사적인 자리다. 그는 추운 겨울 호빵맨 얼굴을 하고 등장했다. 얼른 달려가 인사를 했다. “우린 제법 친한 사이”라며 손을 내밀었다. 손을 덥석 잡아주며 고맙다고, 멀리서 애쓴다고 따뜻한 말을 건네셨다. 2005년 서면 인터뷰에서 실제 만남까지 딱 10년이 걸렸다. 그 해 겨울, 뜨거웠던 강연장 열기, 그의 따뜻한 손을 기억한다.
“그와 함께 상하이에서 할 수 있는 일”
당시 강연장을 찾아준 교민들에게 다시 한 번 “국회의원 노회찬”으로 상하이에 모실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지킬 수 없게 됐다. 상하이 교민들과 인연을 맺은 노회찬 의원이 잊혀지는 것을 아파했던 사람들이 다시 뭉쳤다. 모임 안내문을 보고 찾아온 10여 명과 노회찬재단 상하이 모임을 구성했다. 곁에 계시지 않지만 “노회찬 의원님과 함께” 교민들을 만날 수 있는 일들을 찾고 있다.
현재 상하이 모임은 한국의 노회찬재단 따라하기 중이다. 2년 째, 악기 연주가 가능한 교민들과 함께 추모음악회를 열고 있다. 추모기간 노회찬의 말말말 사진전도 함께 연다. ‘6411 포럼’을 상하이에서도 한다. 자료를 제본하고 발표자를 정해 매달 미니포럼을 갖는다. 한국에서 디자인 시안을 전송 받아 자체 굿즈도 만든다. <읽기 쉬운 내 친구 헌법> 파일을 받아 책자로 만들어 한국학교, 도서관, 교민사회 곳곳에 기부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여름, 상하이 모임에서는 교민들에게 보다 더 "노회찬"의 향기를 퍼뜨릴 수 있는 콘텐츠를 찾기로 했다. 회원 한 분의 재능을 기부 받아 “자녀 금융 교육” 강연을 열었다. 빅히트였다. 사전 예약 신청은 2시간 만에 모두 만석이 됐다. 부랴부랴 2차 강연까지 준비했다. 총 80여 명이 강연에 참석했다. 강연후기에 “노회찬재단에 감사합니다”라는 글을 보니 뭉클했다.
금융과 노회찬의 조합? 과연? 주변에서 하나같이 의아한 반응을 보냈다. 하지만 노 의원님이 상하이 강연장에서 하셨던 “스웨덴의 복지”를 되새겼다. “공정하고 평등한 상생의 나라 스웨덴”의 조기 금융 교육과 연관 지으며 환상의 조합을 이뤄냈다. 대중과 소통하고 그들을 자연스럽게 우리 안으로 스며들게 하는 것. 노회찬 정신을 잇는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고수미 (노회찬재단 상하이모임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