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재단 -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재단 소식

민들레(18호) 노회찬아카이브 <1> 노회찬과 첼로

재단활동 2020. 10. 30




※ 노회찬재단 기록연구실에서는 소식지 <민들레>를 통해 ‘노회찬 아카이브’ 소식을 정기적으로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리며, 관련한 기억이나 사료를 갖고 계신 분은 재단 기록연구실로 연락주십시오. 고맙습니다. (02-713-0831 / archivist.j@kakao.com)


 

New 이 달의 새로운 기록


입수일 2020.08.26.
수집처 강서 방화동 자택
주요기록 1990년 수감 당시 공소장, 진술서 등 중요 문서 등 216건
진행상황 가목록작성 완료



 


Now 노회찬 아카이브는 지금


노회찬 의원의 의정활동 기록 목록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전체 기록물철은 1,170개. 17대 국회 관련철은 253개, 19대 국회 관련철은 85개, 20대 국회 기록물철은 567개, 미상 또는 확인이 필요한 기타 기록물철이 265개입니다. 그중 X-File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X파일’, ‘상설특검등’, ‘삼성특검’, ‘불법도감청’ 등의 철을 우선적으로 정리하여 약 560건의 기록물의 정리가 완료되었습니다. 향후 디지털아카이브를 통해 목록 열람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고, 기록물 공개 여부 평가를 통해 공개가 가능한 기록 원본도 디지털아카이브를 통해 공개될 예정입니다. 

2021년 개봉될 노회찬 다큐 영화 촬영과정에서 아카이브에서 소장하고 있던 비디오테이프(DV) 등 비전자 영상기록물을 디지털화하고 있습니다. 기록 속 노회찬 의원을 곧 아카이브와 다큐 영화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Story (1) 노회찬과 첼로


※STORY 코너에서는 노회찬 의원이 남긴 기록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 이상엽



노회찬을 아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봤을 사진일 것입니다. 이상엽 사진작가가 촬영한 것으로 2010년 출판된 <진보의 재탄생 : 노회찬과의 대화> 책표지에 사용되었던 사진기록입니다. 

노회찬이 첼로를 연주한다는 사실이 처음 알려진 것은 2004년 출판된 <우리 시대 진보의 파수꾼 노회찬>에서 어린 시절에 대한 인터뷰 내용에 실린 후부터일 것입니다. 

“부모님은 신혼 초인 1950년대 중반 부산 피난민촌 단칸방에 살면서 오페라를 구경하러 다닌 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자식들이 악기 하나씩 연주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제가 중학교 입학 시험에 합격하자 아버지는 토스카니니가 지휘한 베토벤의 「운명」을 들으라고 하셨고, 어머니는 첼로를 권했습니다...”(정운영, <우리 시대 진보의 파수꾼>, 랜덤하우스 중앙, 2004, 54쪽)


이러한 기록은 노회찬의 초등학교, 중학교 일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초량초등학교 4학년 일기(1967.1.7.)
노회찬 아카이브 소장

부산중학교 2학년 일기(1970.6.14.)
노회찬 아카이브 소장


 

초등학교 일기 기록에서 바이올린을 기대했던 것과 달리 첼로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입시 마지막 세대여서 6학년 12월 달에 부산중학교에 입학을 했어요. 3월 달까지는 할 게 없잖아요. 놀아야 되는데. 어머니가 원칙이 있었어요. 가정형편이 어렵지만 악기는 하게 한다. 이래가지고 악기 하나씩은 하게 된 건데. 누나가 피아노. 넌 뭐할래? 그래서 누나가 피아노 하니까, 바이올린이나 첼로 중에 하나 골라라. 해서 보니까 바이올린은 작고 첼로는 크잖아. 그때 나는 그걸 기구로 봤으니까. 작은 것은 다루기 힘들 거다 생각하고, 큰 거는 다루기 쉬울 거다. 그래서 첼로 하겠다고 그랬지.” (「김어준, 노회찬에게 묻다: 회찬씨, 농담도 잘하셔」, 노회찬 외, <진보의 재탄생: 노회찬과의 대화>, 꾸리에, 2010, 24쪽)


고등학교 때는 초청을 받고 첼로 공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 재학 당시 첼로 연주 사진 (날짜 미상)
노회찬 아카이브 소장


고등학교 2학년 때 이화여고 개교기념일 행사에 초대되어 연주한 일화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노회찬 고2때 개교기념일 날 연주했죠. 무대 위에서. 그게 소문 나니까 정신여고, 이화여고 개교기념일 때.
김어준 와하하하하.
노회찬 이화여고 갈 때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렸는지.
김어준 그 나이 때는 최고의 행사라 할 수 있죠. 하하하.
노회찬 이화여고 유관순기념관 강당 가서 또 연주하고. 연주하고 나니까 3천원 받았나? 옆에 이딸리아노 인가 하는 음식점이 있었어요. 교문 옆에. 저녁 때 대접받고. 최고의 그거였지. 최고의. (「김어준, 노회찬에게 묻다: 회찬씨, 농담도 잘하셔」, 노회찬 외, <진보의 재탄생: 노회찬과의 대화>, 꾸리에, 2010, 29쪽)


첼로를 연주하던 정치인인 그가 2005년 대중 앞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연주한 곡은 그리그의 <솔베이지의 노래>였습니다(관련영상 : JTBC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솔베이지의 노래’). 


노회찬의 이러한 문화인으로서의 면모와 문화에 대한 생각은 “누구나 악기 하나쯤은 다룰 수 있는 서울(나라)”라는 정책으로 나타납니다. 2010년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을 때 발간된 자료집 <노회찬의 약속>에서 노회찬은 “천만 시민의 오케스트라, 문화가 넘치는 서울을 만들겠습니다”라고 노회찬의 예술 정책을 말합니다. 그리고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지역문화예술공간 설치, 악기 지원센터 등 인프라 구축, 문화예술인 복지프로젝트 등의 추진방법도 약속합니다. 


▲노회찬의 약속(2010년 6월) 노회찬의 예술 정책 중 일부 (노회찬 아카이브 소장)

 

노회찬의 예술에 대한 생각이 공약으로 나오는 데에는 어린 시절의 경험과 삶의 지향도 영향이 있었겠지만 프랑스의 미테랑 공약과 같은 선진국가들의 공약도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홍기빈 첼로 잘 하신다는 것은 아주 유명합니다만, 어떤 악기를 또?
노회찬 어릴 때 피리를 매우 잘 불렀습니다. 음, 색소폰을 불면, 중국제 150만 원이면 사니까, 그런 생각도 있고. 아니면 좀 더 싼 악기를 사서 다른 분들께 나눠주고도 싶고.
홍기빈 무상으로?
노회찬 예. 돈을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인데, 저도 그런 공약 비슷한 거 내걸기도 했지만, 프랑스의 미테랑 공약이었는데, 모든 국민들이 악기 하나씩 연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습니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삶의 질이라는 거죠. (홍기빈, 노회찬에게 묻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진보의 재탄생>, 329쪽)



문화인으로 살아갔던 노회찬, 이 땅을 살아가는 누구나 원한다면 악기 하나쯤은 다룰 수 있는 나라를 꿈꿨던 노회찬. 

그리고 그를 기억할 때 우리는 첼로에 담긴 그가 꿈꿨던 세상을 기억합니다.

“다음 생에는 더 좋은 곳에서 태어나 더 자주, 멋지게 첼로를 켜고, 아름다운 글을 더 많이 쓰고, 김지선 님(부인)을 또 만나 더 크고, 깊은 사랑을 나누세요”(유시민, 2018.7.26. 추모제에서)

그래서 노회찬재단은 문화예술지원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2019년 강원도 양구 방산중학교에 ‘희망악기 기증’사업을 시작으로 노회찬이 꿈꾸었던 ‘누구나 악기 하나쯤 다룰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악기 기증 사업 뿐 아니라 뮤지션유니온과 같은 인디예술인노조를 지원하는 등의 사업도 하고 있습니다. 이번 2주기를 맞아 김현성 작곡가와 함께 제작한 헌정음반 <새벽첫차 6411>도 음악 속에 노회찬이 꿈꿨던 세상을 담은 노회찬재단의 사업 중 하나입니다. 재단을 통해 노회찬의 꿈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8월 방화동 자택에서 이관된 노회찬의 첼로는 현재 재단에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노회찬 아카이브의 상설 전시 공간이 생기면 공개할 예정입니다. 새로 만들어질 노회찬재단의 공간에서 다양한 노회찬 기록 이야기가 공유되고 확산될 날을 기대해봅니다. 

노회찬재단 공간 마련을 위한 건축기금후원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건축기금 후원 계좌 : 농협 301-0275-1424-61
(재)평등하고공정한나라노회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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