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소식
민들레(22호) 문화인 노회찬 - 노회찬의 말(言)이 그립습니다
문화인 노회찬
노회찬의 말(言)이 그립습니다
이십여 년 전, 노동일간지 ‘매일노동뉴스’에 취재기자로 입사하여 노회찬 대표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요즘 애들 말로 ‘관록미 뿜뿜’이랄까요? 경륜이 느껴지는 중후한 비주얼이 참 인상적이었는데, 사십대 초반의 나이임을 알고 나서 화들짝 놀랐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어록제조기라 불릴 만큼 많은 국민들이 열광했던 대표님의 입담은 그 때도 이미 정평이 나 있었습니다. 대표님이 참석하는 회식 자리는 종종 ‘노회찬의 토크콘서트’로 돌변하곤 했습니다. 다소 촌스러운 억양에 청산유수라 하기에는 느리다 싶은 말투지만 듣는 이의 마음을 들었다 놓는 묘한 매력이 있었습니다. 거창한 이야기를 소소하게, 심각한 것을 유쾌하게 말할 줄 아는 분이었습니다.
물론 대표님 말고도 내로라하는 달변가는 주위에 많았습니다. 어지간한 말빨 가지고는 명함도 못 내미는 곳이 진보진영이니까요. 하지만 대표님처럼 소탈하고 구수한 감성의 이야기꾼은 본 적이 없습니다. 특히, 소위 ‘운동권 백단어’라 불리는 운동가들의 현학적인 관용어 대신 일반인의 언어로 운동을 이야기했던 분으로 기억합니다.
2015년 국회를 배경으로 한 정치드라마 ‘어셈블리’를 준비하면서 대표님을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용접공 출신 국회의원인 설정이니 대표님 이상 가는 취재원이 있을 리 없습니다. 용접공 시절부터 국회의원까지 특유의 위트와 달변으로 풀어놓은 인생사는 그 자체로 한 편의 멋들어진 휴먼드라마였습니다. 인터뷰 말미에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가장 진보적인 이념은 휴머니즘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표님 같은 인생을 살려면 마음속에 뾰족한 송곳 정도는 품어야 되겠거니 했는데 좀 의외였습니다. 다른 정치인이었다면 가식 섞인 마무리 발언 정도로 여겼겠지만 대표님이기에 울림이 컸습니다.
그러고보니 오래 전 매일노동뉴스의 젊은 직원들을 매료시킨 노회찬의 힘도 운동가의 아우라가 아니라 휴머니스트의 진솔함이었던 것 같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정치가들의 화려한 말의 성찬 대신 대표님의 사이다어록에 열광했던 이유도 비슷한 맥락일 것입니다.
막장드라마 뺨치게 독해지는 한국 정치를 보면서 대표님의 부재를 아쉬워하곤 합니다. 품격과 유머로 상대의 뼈를 때리던 노회찬이 그립습니다. 필부의 눈높이와 감성으로 무장한 휴머니스트, 노회찬의 말이 그립습니다.
- 정현민 (드라마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