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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소식

민들레(23호) 문화인 노회찬 - 노회찬의 첼로, 그리고 6411 정신

재단활동 2021. 03. 31


ⓒ 이상엽

 


문화인 노회찬

노회찬의 첼로, 그리고 6411 정신


 

10여 년 전의 사진이다. 노회찬 전 의원과 내가 팔짱을 끼고 마주보고 있다. 대학로 학림 다방 입구에서 찍은 사진이다. <꾸리에> 출판사에서 기획하여 곧 출판하게 될 <진보의 재탄생>이라는 제목의 책에 담길 대담을 마친 뒤였다. 당시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 기억이 세세하게 나지 않지만, 그에게 특별히 부탁했던 일이 있었다는 것은 또렷이 기억한다. 그것은 첼로 연주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의 첼로 연주를 듣는 것, 그걸 나의 ‘버킷 리스트’에 올리겠다고 말했으니까. 그는 그 특유의 미소와 함께 “연습을 많이 해야 하는데...”라면서 끝내 확답을 해주지는 않았다. 나는 <진보의 재탄생> 편집자에게 책 표지에 그가 첼로를 연주하는 모습의 사진을 올려달라고 강권했고 관철시켰다. 평소 촌철살인을 날릴 때와는 사뭇 다른, 무척 진지한 그의 모습이 책 표지에 올라 있다. 얼마 뒤 나는 한겨레신문에 “첼로를 켜는 노회찬”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그 뒤 그와 나는 각자 다른 길로 들어섰고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해야 했다. <진보의 재탄생> 책은 지금도 내 서가에 꽂혀 있다.  서가를 둘러보다 그 책이 눈에 들어오기라도 하면 회한과 안타까움이 밀려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의 첼로가 나에게 던지는 의미는 무엇보다 ‘장미’다. “빵과 장미”에서의 장미다. ‘빵’이 각자 기본적인 생존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면, ‘장미’는 각자 가치관에 따라 살고자 하는, 보람차고 의미 있는 삶을 뜻한다. 장시간 노동에 지친 노동자들이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며 외쳤던 구호가 “빵과 장미” 아니었던가. 그러나 이 땅에는 장미는커녕 빵을 얻기에도 힘들고 벅찬 일상을 보내는 동시대인들이 너무 많다. 그가 6411 버스 승객들을 찾았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배제된 사람들을 향했던, 항상 아래를 행했던 그의 시선은 그가 가진 정치 철학의 당연한 행보였다. 

장미를 의미하는 그의 첼로는 또한 그의 품격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의 촌철살인을 비롯한 언어에서 그는 품격을 잃은 적이 없다. 지금 당장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있는데, 이른바 유력 정치인들이 펼치고 있는 모습들을 보라. 이것이 촛불 시위 4년 뒤의 정치사회의 모습인가. 다시금 어제가 좋았던 수구세력과 오늘이 좋은 보수세력이 좋은 내일을 서로 차지하겠다고 다투는 모습에서, 어제도 오늘도 좋지 못한 사람들, 그래서 조금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해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6411 정신’을 누구에게서 찾을 수 있는가. 그들의 언행에서 그 어떤 품격을 느낄 수 있는가. 독선과 탐욕에서 비롯된 네거티브와 막말만 난무하지 않는가. 그래서 그의 빈자리가 더욱 안타깝고 서글프기 짝이 없는 것이다. 다른 현실정치인들에게서는 쉽게 찾을 수 없는 그 품격의 하중, 그것을 온전히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의 하중을 견디지 못했던 게 아니었던가 하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것을 조금만 가벼이 여겼더라면! 그래서 그에게 “이런 몹쓸 사람 같으니!”라고 탄식의 소리를 하지 않을 수 있었더라면...!

그렇게 그는 우리를 남겨두고 먼저 갔다. 첼로 연주도 하지 않은 채. 하지만 잊지 말자. 그의 품격을,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6411정신’을!


- 홍세화 (장발장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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