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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소식

민들레(29호) 문화인 노회찬 - 우리들의 영원한 스미스씨

행사안내 2021. 10. 01




문화인 노회찬

우리들의 영원한 스미스씨 



10월은 고대하던 영화 <노회찬 6411>이 극장에서 개봉하는 달이다. 감사하게도 <음식천국노회찬> 필자인 덕분에 시사회 초대까지 받았다. 영화를 빨리 보고 싶은 마음이 꼭 멀리 떠나있던 옛 친구와의 만남을 기다리는 것 같다.

필자는 사실 작년 이 맘때 쯤, 이 영화가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으로 제작된다는 걸 처음 안 몇 사람 중의 하나다. <음식천국 노회찬> 연재를 함께 진행한 재단의 박규님 실장님이 마침 그날 영화제 제작지원작으로 선정된 사실을 귀뜸해 주었고, 메가폰을 잡은 민환기 감독은 노회찬 의원이 즐겨 찾았던 동소문동의 주점 '성북동막걸리'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였다. 

“제작지원 심사위원들이 물어보시데요. 노회찬 유명세를 업고 거져 먹으려는 거지? 나 역시 그럴 생각은 없었죠. 노회찬은 일관되게 사회주의의 이상을 우리 사회에 실현해 보려고 자기 나름의 방법을 찾던 사람이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듯이 한국에서 진정한 사회주의자가 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그런 사람이 동시대 우리와 살고 있었다는 걸 그려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1억(제작지원금)을 주겠다고 하시더라구요. 얼른 받았죠.” (일동 박수)

그날 모인 사람들 사이에선 "왜 심지어 극우파들 중에서도 노 의원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을까?"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과거 언젠가 자신이 이상으로 삼았던 인간의 모습, 또는 한번쯤 되어보고 싶었던 모습, 그런 걸 노회찬에게서 보았던 게 아닐까요?“

사실 나도 그렇다. 비록 생전에 그와 많은 만남을 가지진 못했지만, 그의 스토리는 내게도 늘 '한번쯤 되어보고 싶은 사람의 초상'이었다.

1970년대 초 서울로 이사 온 우리 가족은 수유리 단칸방에서 생활한 적이 있었다. 중학생이던 나는 그 무렵 텔레비전의 영화 상영프로인 ‘주말의 명화’나 ‘명화극장’에 푹 빠져 있었다. 부모님이 불빛 때문에 잠을 못 드실까 봐 이불을 뒤집어쓰고 영화를 보곤 했는데, 그중에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명작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도 있었다.

정치인들의 음모로 꼭두각시 상원의원이 된 시골청년 스미스는 정치꾼들의 기대와는 달리 워싱턴의 부패정치에 맞선다. 그러자 그들은 스미스를 의회에서 쫓아내기 위해 온갖 혐의를 씌우고 협잡언론을 동원해 스미스를 정의를 가장한 위선자, 사기꾼 등으로 몬다. 스미스는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낸 법안을 지키기 위해 24시간 필리버스터에 들어간다. 그러자 꾼들은 필리버스터를 막기 위해 협잡기자들에게  매도기사를 쓰게 하고, 여론기관을 동원해 수만 통의 비난편지를 스미스에게 보내게 한다. 23시간이 넘도록 홀로 필리버스터를 감행하다 쏟아진 가짜편지 앞에 절망한 스미스는 쓰러지고 만다. 그때 그의 진실투쟁에 동참하고 싶었지만 정치생명이 끊어질까 두려워 스미스를 모함했던 선배 정치인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스미스의 투쟁에 동참하면서 영화는 스미스의 승리로 끝난다.

이 영화 속에 나오는 '의로운 일은 역시 외로운거군요'라는 대사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의로운 일은 외롭다.

노동운동에서 여의도 정치까지 노회찬의 정치역정은 스미스씨처럼 의로웠고, 스미스씨처럼 외로웠다. 그러나 스미스씨처럼 노회찬도 혼자가 아니다. 보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세월이 지날수록 더 그를 그리워하는지.

한국정치판 전체를 향해 일생을 홀로 필리버스터를 감행한 노회찬. 그가 살아있었다면 나는 그에게 이 스미스씨 이야기를 바치고 싶었다.

"노의원님을 보면,  어렸을 적 이불을 뒤집어쓰고 본 영화가 생각이 납니다. 당신은 우리들의 영원한 스미스씨에요." 

어서 그 영화가 보고 싶다.
어서 <노회찬 6411>을 보고 싶다.


- 이인우 (한겨레신문 제작국 국장, 도서 ‘음식천국 노회찬’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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