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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소식

민들레(33호) 후원회원 이야기 - 나를 지켜주는 정치인, 노회찬

재단활동 2022. 01. 26




후원회원 이야기

나를 지켜주는 정치인, 노회찬 



#1. 상상 이상의 가난 

당시 용어로 ‘영세민’(지금 용어로 기초생활수급자)이었던 나는 중학교 학비가 공짜였다. 영세민의 개념도, 학비 개념도 없던 중1. 나는 언제나 해맑고 밝고 명랑했다. 적당히 모범생이었던 나는 초임 미혼 담임 선생님 눈에는 경제적 형편이 어려울 거라고 짐작만 했지, 내가 영세민일 거라는 건 눈치를 못챈 듯 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 중에서 학비 장학금을 주는 제도인 ‘매점 근로장학생’을 담임 선생님께서는 내게 추천했다. 그러나 담임 선생님께서는 내가 학비 면제 대상인 ‘영세민’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고 매우 놀라신 듯 하셨다. 물론 티는 안내셨지만. 이후 담임 선생님께서 미안하셨는지, 정철 영어 중1 교과서 테이프를 선물해주셨다. 당시 나는 영어는 언제나 백점이었다. 나는 감사하다고 흔쾌히 선생님의 선물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집엔 카세트가 없어서 영어 테이프 듣기를 할 수 없었다. 선생님의 호의에 적절히 반응하는 것은 그런 사실을 말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후 내가 엄마를 졸라서 카세트 테이프를 샀는지, 언제 카세트 테이프가 우리 집에 생겼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2. 내가 만난 기지촌 언니들 이야기 

대학 때 의정부 기지촌 언니들을 매월 만나러간 적 있었다. 오랜 기간은 아니었지만 그 언니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적 있다. 언젠가 내 페이스북에도 쓴 적 있는데, 통계학과 모 교수님은 기지촌 언니들이 생계가 아닌, 유흥을 위해 기지촌에 갔다고 70-80년대 산업화 시절 기지촌과 90년대 기지촌 유입 경로와 양상이 달라졌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만난 언니들은 “한두 번 온 교수들이나 기자들이 왜 여기서 일하냐?고 물으면 유흥을 위해서”라고 거짓으로 말한다고 했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타인에게 드러내는 것도 아무나에게나가 아님을 그때 알게 되었다.


#3. 나를 지켜줄 노회찬 후원하기 

내가 후원회원이 된 건 단순하다. 사실 나는 거대담론 중심적 사고와 사회변화를 꿈꾸며 비활동적으로 젊은 시절을 살았다. 진보정당운동과 노동운동이 사회를 변화시킬 거라 굳게 믿었다. 나는 진보정당운동과 노농운동을 직접 못하지만, 대신 그분들을 지지하고 후원하고 싶은 빚진 마음은 늘 있었다. 정치인 노회찬은 가난이 부끄럽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이야기하고 나누는 것이 부끄럽지 않게 하는 사람이다. 노회찬은 ‘우리를 지켜줄 사람’이다. 나는 예전보다 많이 타락했고 많이 탐욕스러워졌다. 내게 노회찬은 내가 덜 타락하게, 덜 탐욕스럽게 나를 지켜주는 정치인이다. 한때 ‘신자유주의 세계화’로부터 우리를 지켜내는 지구적 연대를 이야기했다면, 팬데믹 이후의 삶에선 무엇으로부터 우리를 지켜내고, 무엇으로 연대를 이야기해야 할지 희미해졌다.

노회찬은 상상 이상의 가난으로 힘들어할 사람들, 상상 이상으로 차별받는 사람들 곁에서 위로해주고 그들의 고통을 나누고, 그들을 지켜줄 것이다. 제2의 노회찬들이 많이 나타나주길 바란다. 노회찬 재단에서 제2의 노회찬들이 많이 나타나도록 ‘노회찬 정신과 실천’을 교육시켜주길 바란다. 내가 뒤늦게 후원회원이 된 단순한 이유다. 


- 장성순 (해피스토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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