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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33호) 문화인 노회찬 - 노회찬과 <설국열차>, 그리고 ‘남궁민수’

재단활동 2022. 01. 26




문화인 노회찬

노회찬과 <설국열차>, 그리고 ‘남궁민수’



노회찬 선배, 오랜만에 먼 곳에 계신 선배의 이름을 나지막히 불러봅니다.

선배, 지난 2013년 8월 28일을 기억하시나요? 그때 저는 서울시청 근처 찻집에서 선배를 만났지요. 봉준호 영화감독의 영화 <설국열차>가 관객 1000만 돌파를 눈앞에 둔 때였어요. 마음이 들뜬 선배는 “<설국열차> 개봉 첫날 관람했는데 보고 나니 '역시 봉준호 감독답다'고 생각했다”라고 얘기했지요. 그 <설국열차>를 주제로 1시간 30분이 넘도록 인터뷰를 진행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선배는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를 “열차 바깥으로 나가자는 새로운 메시지를 던짐으로써 우리의 인식의 지평을 넓혔다”라고 평가했지요. <설국열차> 속 ‘남궁민수의 세계’가 선배와 가깝다고 하면서 말이죠. ‘남궁민수’(송강호분)는 열차 반란을 주도하는 ‘커티스’나 열차의 설계자 ‘윌포드’와 공조해온 꼬리칸의 지도자 ‘길리엄’과는 달리 문을 부수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지요. “저게 하도 오래 닫혀 있으니까 이젠 벽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저것도 실은 문이란 말이다”라고 말하면서요.

문은 누구나 열고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하나의 길이죠. 하지만 열차 안의 사람들은 그것을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새로운 세계로 갈 수 없어요. 그런 점에서 선배가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거쳐 헌신해온 진보정당은 <설국열차> 속 남궁민수가 시도했던 ‘발상의 전환’이었습니다. 조금 길지만 당시 선배가 했던 말을 소중하게 복기해봅니다. 여전히 지금 여기 한국사회에 필요한 문제의식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브라질노동자당(PT)의 룰라가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고 얘기했다. 그러나 다들 개인의 경쟁 속에서 한 칸 한 칸 앞으로 나아가면서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아주 새로운 제도를 도입해서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과 기대는 별로 안한다. 진보정당은 늘 개인이 한 칸 한 칸 앞으로 가는 경쟁은 이기기도 힘들거니와 이겨봤자 그 굴레를 벗어나기 어렵다고 주장해왔다. 진보정당이 새로운 사회로 가자, 사회 전체의 새로운 제도화를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극복하자고 하는 것이 남궁민수가 말한 혁명이다. 그런데 대개 ‘그것이 가능하냐’고 묻는다. 스웨덴이니까 가능했고, 인구 500만 명밖에 안되니까 가능했다고 한다. 이렇게 ‘우리는 불가능하다’는 선동이 많다. 한 칸 한 칸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의미가 있지만, 이 것은 결국 경쟁을 통해 나아지려는 것이다. 완전히, 크게 사회 자체를 바꾸는 발상은 하지 않았다. 열차 안 사람들이 그동안 벽으로 봐왔던 것이 사실은 문이었다. 그래서 그 문을 부수는 것이 새로운 발상이다. 그 전에는 아무도 하지 않았고, 남궁민수만이 했던 발상의 전환이다. 그것은 사회 전체 패러다임의 변화를 통해서 다수의 행복을 추구하자는 것과 같다.”

선배가 떠난 지금 여기에 남은 진보정당들이 그 ‘발상의 전환’을 잘 진전시켜 주기를, 선배도 간절하게 바라고 계시리라 믿어요. 언젠가 다른 인터뷰에서 제가 “앞으로 진보의 미래를 낙관하나?”라고 물었을 때 자신있게 “나는 낙관한다”라고 말했던 선배였니까요.

인디언들은 달력을 만들 때 그들 주위에 있는 풍경의 변화나 마음의 움직임을 주제로 그 달의 이름을 정했다고 하네요. 아리카라족은 1월을 ‘마음 깊은 곳에 머무는 달’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이 글을 쓰는 1월 24일의  늦은 밤, 선배는 저에게 ‘마음 깊은 곳에 머무는 달’ 같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보았습니다. 그곳에서도 '천국의 동지들'과 행복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 구영식 <오마이뉴스> 기자,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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