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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소식

민들레(36호) 문화인 노회찬 - 회찬복음

재단활동 2022. 04. 27




문화인 노회찬

회찬복음



10명의 진보정당 후보가 삼김시대를 종식시키고 원내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룬 2004년 4월 15일 밤, 나는 감격하고 흥분한 일개 지지자로서 여의도 민주노동당사에 그냥 막 달려가 노회찬 당시 사무총장을 처음으로 직접 뵈었다. 당시 사무실에서는 민주노동당가 음원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고 님께서는 동지들과 함께 힘차게 팔을 휘저으며 이 노래를 부르고 계셨다.

개인적으로 인사를 나누고픈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날 그 소원을 이루지는 못했다. 가까이서 그분을 뵈었고, 그냥 그게 참 좋았다. 어린 팬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가까이서 보고 괜히 혼자 막 좋아한 것과 결코 크게 다르지 않았던.. 정확히 그날을 기준으로 삼으면, 그날까지 방송에 노출된 양은 내가 훨씬 많았을 테지만..

“아! 압니다.”

처음 대면해 나름 신경 써서 내 소개를 하고 인사를 나눴을 때 그분의 첫마디가 이러했던 것으로 나는 기억한다. 일찍부터 후원금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일까? 그런데 후원자가 어디 한둘이었을까? 내 직업이 좀 튀어서? 모르겠다. 여하튼 예수님을 만난 세리 삭개오 같은 심정이었달까? 흠모하는 그 훌륭한 ‘사람’이 나를 이미 안다. 그 ‘사람’이 나란 ‘사람’을 벌써 안다. 행복했다.

모교 개교 100주년 기념 연극에 그분과 함께 카메오로 참여한 적이 있다. 주어진 역할이 아주 크지는 않았지만, 문화인 노회찬은 연습과 공연에 매번 성실했고 대단히 자연스러웠으며 더하여 훌륭했다. 하긴 주어진 역할 ‘선언문 낭독’을 그보다 더 훌륭하게 감당해낼 사람이 무대 안팎 세상천지 어디에 또 있을까?

공연을 마치고 시내 모처에서 열린 뒤풀이에 각계의 유명한 사람들이 참 많이 모였다. 애써 내 곁에 온 사람도 없지 않았지만(^^), 노회찬 선배 주위에 역시 가장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솔직히 나도 얼마나 그 주위를 열심히 맴돌았는지.. 누군들 그러지 않았겠는가? 타고난 넉살과 넘치는 인품 그리고 그분이 추구했고 또 일구어낸 고귀한 가치.. 진보의 불모지에서 오히려 전적으로 환영받는 유일한 전인적 인간 노회찬이었달까..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태복음 25:40)

이 나라에서 진보는 기독교 신앙과 마치 상극인 양 여겨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하나님 말씀을 이만큼 온전하게 실천하며 끝까지 열심히 살아낸 사람이 어디 또 있을까? 20세기 전태일 열사의 삶과 죽음을 통해 예수의 모습을 보았다는 숱한 사람들이 있는데, 21세기 들어 나는 그 귀하다는 신앙의 표본을 그에게서 또 찾았다고 하는 것이 분명 바른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마태복음 4:8-9)

그가 그토록 진보를 고집하지만 않았으면 이 나라 그 누구보다 집권 가능성이 높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 사람이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영달이나 성취에 조금도 좌우되지 않고 그저 진정한 영광과 참된 가치를 위해 기꺼이 망하고 죽기를 선택한 그분은 분명 이 시대의 또 다른 예수가 아니었을지..

2017년 하반기부터 2018년 초까지 전국언론노조 KBS지부에서 140일이 넘는 파업을 벌일 때 사측에서 난데없이 벌인 부족한 명분의 모금방송에 마지못해 출연을 하시고서는 생방송 중 유일하게 우리(!) 파업 노동자들을 꼭 집어 언급해 주시고 현장에서 피케팅 하던 우리(!) 손을 꼭 붙잡아 격려해 주시던.. 과연 그러시던 분이..

두꺼운 철판을 뚫고 피어난 꽃이 한 송이 있다면 그것은 당신일 것입니다. 반드시 피어나야 할 우리 모두의 삶이 있으며, 그것이 진정 이 척박한 땅에서도 온전히 가능하다는 사실을 일평생 몸부림쳐 일깨워 준 당신. 행복하기를 두려워하지 말자던 당신. 제 마음속 정치인이 딱 한 분 계셨는데, 이제 제 마음이 텅 비었습니다. (2018. 7. 23. 필자의 페이스북)

여전히 어려운 세상 속에서 진보의 가치를 온전히 붙잡고 살려면 싫든 좋든 누구나 비장해지지 않을 수 없는 법인데, 굳이 비장함으로 무장하지 않더라도 그분의 모습을 보기만 하면 우리는 그저 좋아 벌써 자연스럽게 행복한 진보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을..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린다. 도착하셨구나! 하늘은 좋겠다!” (2018. 7. 28. 필자의 페이스북)



글을 쓰는 사이 대한민국 최초의 생맥주집이며 일찍이 백년가게로 지정된 우리들의 소중한 생활문화유산 ‘을지OB베어’가 심야에 불법 강제집행을 당해 간판과 집기가 모조리 뜯겨나가고 말았다. 그토록 살갑고 뜻깊었던 6평 작은 공간, 서민의 귀중한 사랑방을 오직 탐욕뿐인 천박한 체제의 폭력으로부터 지켜내지 못해 가슴이 또 찢어진다.

그가 없어 못 지키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이렇게 우리가 그를 지켜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저 죄송합니다.’


- 최승돈 (KBS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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