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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39호) 특별기고 - 이상한 동창생 노회찬과 노래패 6411

재단활동 2022. 07. 27






특별기고
이상한 동창생 노회찬과 노래패 6411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별똥별...’  독립제작사 Astory가 제작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넷플릭스에서 1위를 하는 등 화제가 되고 있다. (넷플릭스에서는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별똥별’ 부분을 ‘kayak, deed, rotator, racecar’ 등으로 번역했다고 한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변호사의 활약을 그렸다. 여기서 스펙트럼은 무지개의 ‘빨주노초파남보’에서 보통 사람들이 ‘초’ 근처에 몰려있다면, ‘빨’이나 ‘보’쯤에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 같다. 그래서, ‘자폐’ 즉, 자기에게 갇혀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영우는 자신에게 갇혀있어서 더 큰 능력을 발휘한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흰수염고래가 멋지게 점프를 하고, 그의 머리칼이 어디선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흩날리면, 남들이 전혀 생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사건을 뒤집는다. 변호사들이 모여서 드라마 평을 하는 유튜브 동영상에서 우영우가 생각해낸 그 방법들은 법리적으로 매우 정확하다고 한다. 그러나, 우영우는 자폐라서 다른 이의 표정을 읽지 못 하고, 따라서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아빠는 각종 감정을 가졌을 때 얼굴 사진을 모아 벽에 붙여놓았다.

이상한 동창생 노회찬은 말이 형용 모순적이지만 공감(共感)에 갇혀 있었다. ‘공감 자폐 스펙트럼’을 가졌다고 할까? 우리 동기들은 고교 입학 시험 마지막 세대이며, 우리가 다닌 학교는 전국 수재들만 모였다는 학교이었다. 그 동기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가거나, 의사 수련을 하거나, 사법연수원을 갈 때, 그는 용접을 배워 위장 취업을 하였다. 동기들이 미국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오고, 전문의 자격을 따고, 판검사 생활을 시작할 때, 그는 교도소에서 요쿠르트로 막걸리를 만들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공감 자폐 스펙트럼을 가졌고, 다른 이들이 처한 어려움을 해결하는 일을 하지 않고 있으면 자신이 괴로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투명인간인 6411 버스를 탄 사람들을 보이게 만들고자 애썼고, 두려움 없이 검사들의 X파일을 공개했고, 재벌들과 맞짱을 떴다. 법이 ‘만명에게만’이 아니라, 만인에게 평등하게 적용되고, 시민 모두 악기 하나쯤은 연주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의 머릿속에서 ‘흰수염고래가 멋지게 점프를 하고, 그의 머리칼이 어디선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흩날리면, 남들이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촌철살인적 표현으로 모두를 미소짓게 하였다. 항상 날선 공방만 있어서 지루한 TV 토론도 그가 나오게 되면 상대방도 그에 얘기에 무장해제되어 웃고 있는 것을 자주 보았다. 그와 같이 을지로 골뱅이 거리를 걸으면, 사진 같이 찍자는 시민들 때문에 자주 멈추게 된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정말 사람 좋은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그가 우리처럼 ‘초’에 머물지 않고, 고집스럽게 스펙트럼 곳곳을 누비며 사람들에게 희망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상한 동창생이 첼로를 잘 연주한다는 것은 아는 사람들은 아는 얘기지만, 그가 고등학교 2학년때 작곡을 한 곡이 있다. 서정주의 ‘석남화’라는 시에 곡을 붙인 것이다. 1974년 8월 1일 손으로 쓴 악보를 노회찬 재단이 가지고 있었다. 1974년이면 48년 전이다. 

우리가 그를 떠나보낸 건 7월말이다. 그날처럼 눅눅하고 무더운 날이 올해도 찾아온다. 노회찬의 4주기 추모제에서 ‘노래모임 6411’은 이 곡을 합창하기로 했다. 노래실력보다는 노회찬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추모제 한 달전에 모였다. 여기에는 동해 고성에 사시는 선장님도 포함된다. 주위에 모두 2번 찍은 사람들만 있어서 대선 충격에 숨 쉬는 것이 어려워 죽을 뻔 했다는 분이다. 노회찬 재단의 소식지 ‘민들레’의 광고를 보고 왔다는 분도 있다. 드럼 좀 친다는 분도 있다. 작년에도 참여했다는 한 분은 ‘이렇게 불러 볼까요?’하면 그 자리에서 악보를 손으로 술술 써내려가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 노회찬 정치 아카데미 출신인 MZ 세대 이한솔은 장사익의 노래를 맛깔나게 부른다. 나는 ‘동기중에 한명은 끼어야 하지 않겠는가’하는 김창희 대기자의 부탁으로 같이 하게 되었다. 

지휘와 지도는 정마리 선생님이 한다. 몸이 그대로 악기인 거 같다. 커다란 대금에 팔다리를 붙였다고 하면 실례가 될지 모르나 그렇게 느껴진다. 좋은 음을 내기 위해 필요한 부분이외에는 다른 부분은 거의 없는 몸으로 느껴진다. 각국의 다양한 음악가들과도 교류하는 세계 최고의 정가 소리꾼이다. 덕택에 귀호강을 많이 했다. 매주 한 곡씩 바로 1~2m 앞에서 연주해주었다. 가곡, 가사, 시조와 자작곡. 김영랑 시에 곡을 붙인 바람의 노래도 좋았지만, 나는 두번째 주에 들었던 시조가 제일 좋았다. 버드나무 가지가 길게 늘어져 있고, 가끔 실바람에 떨린다. 버드나무 가지들이 날줄이 되고, 한 쌍의 꾀꼬리가 북이 되어 서로 희롱하듯 날아다니며 씨줄을 쳐넣는 봄날에 이를 외로이 보고 있는 여인을 노래하였다. 저 아래에서는 지하철 몇 개 노선이 서로 교차하고, 수 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왔다갔다하는 저녁 시간에, 15층에 위치한 고즈녁한 노회찬 재단 사무실 공간은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느껴졌다. 머릿속에는 담백한 수묵화가 그려진다. 붓의 농담과 선의 굵기는 자유자재로 변한다. 정마리 선생님의 음악 3개월 들으면 공중부양이 가능하다고 한다. 

몸 안에 입, 가슴, 배 등 공명할 수 있는 공간을 되도록 크게 하세요. 쉬지 않고 스트레칭을 하여 소리가 잘 나오는 관악기 같은 몸으로 바꾸세요. 내 소리가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자기의 소리를 찾으세요. 숨을 길게 하다 죽은 사람은 없으니 숨을 끝까지 늘여보세요. 다음 주까지는 가사를 모두 외우세요. 매일 10분이상 모음을 과장하면서 책을 읽으세요. 이렇게 빗발치는 요구들이 어렵지 않게 느껴진 것은 정마리 선생님의 열정, 순수함, 또 명랑함 때문이다.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것은 ‘멕여야제’하는 ‘웰컴 투 동막골’의 이장님같이 재단의 박규님 운영실장이 항상 먹을 거리가 떨어지지 않게 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빠졌던 주에는 노회찬의 찐 친구인 연극배우 이진성과 출판인 이성우가 먹을 것을 잔뜩 싸들고 와서 마침 당일 환갑을 맞은 분의 파뤼까지 했다고 한다. 

석남화는 철쭉을 말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두 사람의 자살로 끝을 맺지만, 석남화 시에서는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사랑을 얘기한다. ‘너 깨는 서슬에 나도 깨어 서룬 해만’ 같이 살고 싶단다. 18세 소년 노회찬은 이 시에 그의 음악적 지식을 총동원하여 곡을 붙였다. 서양식 형식으로 이 시의 감성을 온전히 표현할 수는 어려웠는지 박자가 어색하였다는데, 이번에 국악인 정마리 선생이 제대로 편곡하였다. 시조창이 처음과 중간과 끝에 들어간다. 시조창은 새벽 안개가 피어오르는 느낌으로 머릿속을 깨끗이 씻고 혼을 맞이하는 듯하다. 합창 부분에서는 8분의 6박자에서 48년만에 해방되어, 8분의 3박자, 8분의 7박자 등이 사용되었다. 

장석 시인의 추모시의 첫 구절처럼 ‘그날이 왔다.’ 꼭 참석했을 사람들의 절반은 희망버스를 타고 거제로 내려간 날. 비 올 확률 70%라고 했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모두들 ‘허망이 아니라 희망’을 얘기했다. ‘승리와 다름없는 패배’를 계속하여도, 같이 한다면 그것은 희망이다. 마지막 리허설에서 ‘~더 한번~’에서 반 박자 느리게 들어갔다고 정마리 선생이 얘기했는데, 실전에서는 당일치기 특별과외를 한 고성 이광수 선장도 정확하게 불렀다. 그러나, 슬픔 가득찬 군중을 마주하고, 노회찬의 묘를 뒤로 하고, 그를 보낸 슬픔을 누르며 노래를 제대로 부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상한 동창생 노회찬, ‘그는 현장에 있다’는 권영길 대표의 말처럼, 무지개 스펙트럼에서 ‘초’에 속한 자아가 죽고, 그 스펙트럼의 후미진 쪽의 색으로 거듭나서 ‘공감 자폐’인 나로 현장에 간다면, 그것이 노회찬과 같이 사는 것 아닐까? 그래서, ‘서룬 해만’ 우리 머릿속에서 흰수염고래가 멋지게 점프를 하고, 우리의 머리칼이 어디선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흩날리다 보면 희망이 현실로 되어있지 않을까? 법이 만인에게 평등하고, 누구나 악기 하나쯤은 연주하는 그 세상.


- 서덕영(노래모임6411 단원,  경희대 전자과 게임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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