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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소식

민들레(40호) 문화인 노회찬 - 정치문화를 바꾼 문화정치인, 노회찬

재단활동 2022. 09. 01




문화인 노회찬

정치문화를 바꾼 문화정치인, 노회찬


 

20여 년 전, 한 방송사의 정치토론 프로그램에서 기성정치에 대한 비판을 한 마디로 압축한 ‘오래된 삼겹살 불판 교체론’을 들고나온 정치인 노회찬은 신선했다. 시퍼렇게 날이 선 채 기성정치를 비판하고 있었지만, 그의 얼굴은 광대가 승천하는 웃는 상이었고, 그가 내뱉는 촌철살인의 정치교체론은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다음날부터 거리에는 삼겹살 불판을 들고 있는 진보당원들의 모습이 찍힌 사진이 모든 언론사의 지면을 채웠다. 수십 년을 어렵게 걸어왔던 진보정당의 대중접근이 노회찬의 한 마디로 친밀하게 접근하는 순간이었다.

정치는 언어로 국가의 문제를 해결하고 협의하는 장르다. 이 장르에서 노회찬은 언어의 마술사로 여겨질 정도로 달변가다. 그의 마술의 저변에는 오랫동안 진보정당 운동을 해오면서 켜켜이 쌓여온 민중의 가슴 속 깊은 열망에 대한 통찰이 있었다. 노동신문의 대표를 하면서 그 통찰을 몇 마디의 언어로 응축하는 훈련을 지속하면서, 그동안 근엄하기만 하고 허세 많아 멀리하고 싶던 정치문화를 다가가고 싶은 뜨거운 대중친화적 ‘정치불판’으로 바꿀 수 있는 문화정치신인으로 화려하게 등장한 것이다.

나는 그가 최초로 국회에 입성한 진보정당 활약 첫해부터 의원실 홍보영상을 만드는 일로 그를 좀 더 자세히 알아갈 수 있었다. 한 해 동안 대중들을 만나고 의정활동을 펼친 기록이 담긴 수많은 사진과 영상, 뉴스 자료들을 모아 영상 의정활동 보고서를 만들다 보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아주 세밀하게 반복적으로 관찰하게 된다. 그가 했던 발언을 반복적으로 듣고 머리에 기억이 될 정도로 편집을 하게 된다. 어쩌면 사모님보다 내가 그의 의정활동 당시의 얼굴만큼은 더 많이 봤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게 한 달이 다 되는 시간 동안 그의 얼굴과 언어를 반복적으로 들으면서 나는 행복했다. 그의 탁월한 말솜씨를 감탄하며 학습하게 됐고, 그가 가진 정치에 대한 철학을 깊이 이해하여 나의 것으로 수용할 수 있게 됐고, 그의 군더더기 없고 허세 없는 몸짓과 표정을 보며 나의 대인관계에 대한 태도까지 배울 수 있었다.

나에게 그의 첫인상은 뼛속까지 닮아가고 싶은 깊이 있고 위트 넘치는 문화정치인이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해가며 그의 의정활동 영상을 만드는 동안 나는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현실정치에서 부딪치는 수많은 난관을 마주하며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현명함을 배울 수 있었다. 누구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던 사건들을 직접 몸에 지고 불 속으로 뛰어가는 모습에서 용기를 배울 수 있었다. 지난한 과정을 겪으며 검찰의 승리로 끝나버린 ‘X파일’ 사건에 대한 결과를 황교안이 발표하던 날, 의원실 창문을 통해 멀리 바라보며 고민의 팔짱을 끼고 있던 그의 뒷모습이 담긴 영상을 편집할 때는, 마치 현실에 나타난 십자가를 진 예수의 재현을 보는 듯 뭐라 말할 수 없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나와 노회찬의 인연이 사진과 영상을 통해 깊어진 것을 되짚어 본다면, 재단에서는 그의 아카이브 자료를 시민들과 공유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KBS에서 5·18광주항쟁을 촬영한 영상자료를 시민들에게 공유하고, 시민들이 항쟁과 관련된 상황에 대해 인터뷰하고 스스로 편집하여 짧은 스토리를 만들어 공모하는 사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나는 이 작업에서 감독으로 참여하며 내가 갖고 있던 광주항쟁에 대한 시각을 더욱 확장할 수 있었다. 이처럼 시민 개개인이 노회찬과 연결돼 갖고 있었던 기억과 경험과 인연을 스스로 이야기로 만들어낼 수 있는 유투브 채널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업로드하는 정치문화를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어쩌면 문화정치는 좀 더 진보할 수도 있겠다.


- 이조훈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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