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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42호) <월간 노회찬> 10월 기획자&참석자 강연후기 - 박경석 대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재단활동 2022. 11. 10




 

기획자(이종민 부장) 강연후기


노회찬 의원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이번 강연을 준비하는 시간 머리속에 맴돌던 질문입니다. 탈시설, 장애인 이동권, 권리형 일자리 등 장애인의 보편적 인권 실현에 대한 외침, 동등한 시민으로 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국가와 사회의 적극적 역할을 촉구하는 목소리. 분란의 소지가 없을, 오히려 더욱 울려퍼져야 할 목소리가 어느 공당 대표의 정치적 의도 속에서, “비문명”으로 왜곡되었습니다. 대다수 “시민”의 불편을 야기하는 “생떼”, 심하게는 “테러”로 규정지어져 혐오의 대상, 심하게 “욕받이”로 귀결시키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목소리에 동의하고, 지지하지만 방법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기도 합니다. 대다수 “무관한” 또는 “하루 일상을” 열심히 시작하려는 “대다수의 시민”이 피해를 보는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하면서 말이죠. 그래서 더욱 머리 속에 맴돌았습니다. 노회찬 의원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제가 의원님이 아니기에 그 어떤 해석도 그분과 동일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의원님의 발자국을 따라가며, 그 발자국이 맴돌던 곳에 찾은 흔적은 이것이었습니다. ‘함께 맞는 비’. 권력과 사회를 향해 극단의 선택을 하지 않고는 목소리를 전할 수 없던 사람들과 함께 비를 맞으며 그 이야기를 듣고, 권력과 대다수를 향해 전하려던 의원님의 태도. 이번 강연은 그런 ‘함께 맞는 비’를 실천하는 시간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시도였습니다. 박경석 선생님과 장애인 활동가들이 지하철을 멈춰 서게 만드는 선택을 하면서 우리 사회에 전달하고 싶던 이야기와 외침이 무엇일까를 들으려 하는 것이, 그 흔적의 의미라 생각했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 답게 살겠다는 의지와 외침은 장애인을 “위한” 시설에 갇혔고, 정부 관계자의 반복되는 “신중히 고려해보겠다”는 기계적인 답변이 쌓일수록 그들은 우리 주변에서 멀어졌습니다. 그 멀어짐은 차별과 억압의 또다른 동의어였습니다. 다른 단어, 다른 이유, 다른 사례로 전하는 박경석 선생님에게 건낸 수많은 질문들, 거기에는 공감, 지지, 우려, 반박, 비난, 혐오 등 다양한 감정이 담겨 있었습니다. 질문은 달랐지만 박경석 선생님이 답변마다 꾹꾹 눌러 담아 전달하려했던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잊히지 않을 것이다.” 

굳이 전철을 타는 방식의 시위를 해야하냐는 질문에 박경석 선생님은 웃으며 이렇게 반문합니다. “지하철이 있어서 탔을 뿐이고, 출근 시간을 피해 지하철을 탔다면 볼멘소리, 반발이 안 나왔겠는가?” 그게 본질이 아니라는 듯 그는 이어서 답합니다. “우리는 시설에 갇히는 방식, 사회와 분리되는 방식으로 잊혀졌고, 잊혀지지 않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이동권이 자기 이름인줄 아는 어린이의 이야기를 곁들인 그가 말하는 장애인 이동권은 사람이자 시민인 장애인이 사회로 함께하고, 참여하게 하는 기본권이고, 사회에서 동등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마땅한 권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사회적 효율성을 내세우며 1939년 나치 독일이 저지른 자국 장애인 학살 정책 <T4>로 시작했던 박경석 선생님의 “잊혀지지 않기 위해 했던” 투쟁의 이야기. 박경석 선생님은 한국 사회와 정부가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와 정책은 21세기 재현되고 있는 “T4” 다를 바 없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그의 이야기를 듣던 끝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애인을 위한” 수식어가 진정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으며 되려 그들을 우리 사회로부터 분리시키는 명분이고, 그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갈 방법과 상상을 어렵게하는 족쇄였구나. 사회를 어지럽히는 “비문명”의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 교묘하게 모습을 감추고 있는 비문명성, 비인간성을 경계하게 하는 죽비가 아닐까.



참석자(이준호 님) 강연후기 (voidstrider@gmail.com)


무릎 꿇는 버스

미국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할 기회가 있었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도심 정류장에 휠체어 이용 승객이 있었다. 운전기사는 버스의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웠다. 이윽고 덜컹하더니 커다란 버스가 승강장을 향해 서서히 바닥을 낮추었다. 무릎 꿇는 버스(Kneeling bus)의 기동 모습을 처음 목격한 것이다. 경사로가 전개되었고, 운전기사는 느긋이 운전석에서 내려 휠체어 이용 승객이 경사로를 올라 휠체어석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휠체어 안전띠를 채운 뒤 무릎 꿇린 버스를 다시 세워 운행을 이어갔다. 5분 정도 걸렸을까, 약간의 무료함에 눈알을 크게 한 바퀴 굴린 승객이 한둘 있었을까 모든 과정은 천연이 이어졌다. 그러니까, ‘일상’이었다.

턱의 사회이자 T4 사회인 한국

‘이동하는 장애인의 모습’이 우리 일상엔 얼마나 들어와 있는가. 한국에도 경사로와 휠체어 좌석을 갖춘 저상버스를 종종 보지만, 정작 활약하는 모습은 잘 보지 못했다. 왜일까? 난관이 너무 많다. 한국 사회는 턱의 사회다. 사는 게 숨이 턱턱 막혀 그렇기도 하지만, 턱이 너무 많고도 높다. 성벽 같고, 절벽 같은 턱과 틈새를 가까스로 피해 승강장에 가도 ‘불편’은 끝나지 않는다. 서울 지역 시내버스 중 저상버스 비율은 2022년 상반기 기준 69.3%라고 한다. 마을버스 쪽은 저상버스가 100대도 되지 않는단다. 서울 외 지역에서 장애인 접근이 용이한 대중교통 수단은 이보다도 더 열악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니, 언제 저상버스가 올지는 거의 천운에 맡겨야 한다. 환승이나 ‘정시 도착’은 엄두도 내기 어렵다.

한국의 위정자와 관료집단의 차별적 인식은 수십 년째 요지부동이다. 요는 돈이 없다(아깝다)는 것이다. ‘그냥 버스는 1억인데 저상버스는 2억이라 도입이 어렵다.’, ‘활동 보조 시간을 늘리면 돈이 더 들어서 안 된다.’, ‘장애인을 시설에 몰아넣지 않으면 돈이 더 드니 곤란하다.’ 등등. ‘차별’이 싸게 먹히니 계속하겠다는 자세다. 박경석 대표는 이런 기획재정부를 ‘T4 본부’, 이런 한국 사회를 ‘T4 사회’라고 불렀다. 여기서 ‘T4’란 나치 독일이 1939년에 시작하여 1941년까지(사실상 1945년까지) 지속했던 장애인, 소수자 분리 및 학살행위, T4 정책(Aktion T4)을 뜻한다. 이 정책으로 나치는 2년 사이에만 약 7만 명을 ‘살균’하였고, 학살은 전쟁 중에도 비밀리에 진행되어, 나치 몰락 전까지 관련 희생자는 20만여명으로 추정한다. T4 정책을 밀어붙이며 나치 정권은 집단수용 및 생체실험, 대규모 학살 등의 기법을 획득했고, 이는 ‘홀로코스트’로도 일컫는 2차대전 중 나치 독일의 대규모 인종학살의 예행연습이자 토대가 되었다고 한다. “유전병자 한 명당 하루 5.5 마르크의 비용을 국가가 부담한다. 그 5.5 마르크는 건강한 한 가족의 1일 생활비다.” 나치 독일의 T4 선전 문구 중 하나다. 2022년 한국, 장애인 권리 예산을 둘러싼 관료들의 자세도 여기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어차피 깨진 꿈

박경석 대표는 자신의 별명을 어차피 깨진 꿈, ‘어깨꿈’이라고 소개했다. 사고로 장애인이 되면서 깨져버린 이전의 꿈을 자조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자조가 무색하게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장애인 인권을 위해 어깨를 걸고 나가며 새로운 꿈을 만들어오고 있었다. 그 길에 올해 초 거대 정당의 대표였던 이가 ‘비문명’이란 딱지를 붙여 혐오를 선동하는 딴지를 걸기도 했었다. 그러나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가 어느 강연에서 했다는 이야기처럼, ‘문명’의 시초는 ‘부러졌다 붙은 넓적다리뼈’다. 장애를 입어도 배제되거나 차별받지 않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연대와 돌봄이 있는 사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누구보다도 ‘문명’을 옹호해왔던 셈이다. 이미 한참 지체되었지만, 지금이라도 장애인 권리를 옹호하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 곧 한국 사회에 일말의 ‘문명’을 이룩하는 일이다.



> 월간 노회찬 10월 강연 다시 보기 
“우리가 잊혀진 사회, 그 사회가 바로 비문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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