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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소식

민들레(43호) 문화인 노회찬 - 머슴.. 그리고 서민의 정치인

재단활동 2022. 12. 12


 


문화인 노회찬

머슴.. 그리고 서민의 정치인



나는 인생의 절반을 방송작가로 살아왔고, 내가 맡은 방송의 대부분은 시사프로그램이었다. 그래서 많이 들었던 말이 “국회의원 많이 알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내 대답은 “ 모른다 ”였다.  시사프로그램을 하면서 4번의 대선과 6번의 총선을 경험했고, 이 과정에서 유력 정치인들이 등장하고 성장하며 퇴장하는 모습도 지켜봤지만 내게 있어 정치인은 딱 그 정도의 인연이면 족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예외인 사람이 있었다. 고 노회찬 의원이다.

노회찬 의원과의 첫 만남은 16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2002년이었다. 
각 당 대선주자들과의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민주노동당 쪽에 당전략통을 소개해 달라고 요청했고, 그때 소개받은 사람이 선거대책본부장이었던 정치인 노회찬 이었다. 당시, 대선 분위기는 이회창 대세론이 팽배했다. 선거 때마다 후보 토론을 진행하며 겪는 어려움 중 하나가 1위 후보들이 인터뷰에 잘 나서지 않는다는 건데, 이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각 당 후보들의 인터뷰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던 제작진은 고민이 많아질 수 밖에 없었다. 김 빠진 맥주, 인터뷰 형평성을 운운하며 대선주자 인터뷰를 취소하자는 얘기도 나온 상황이었다. 나도 그 고민에서 자유롭지 않았지만, 그때 내 갈등을 정리하는데 도움을 준 사람이 노회찬 선대본부장이었다.

"작가님은 대통령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머슴이에요. 머슴 중에 상머슴. 상머슴이 잘해야 밑에 머슴들도 일을 잘하고, 상머슴이 상전 잘 모셔야 밑에 머슴들도 상전 잘 모시는 법입니다. 근데 지금 상머슴 하겠다는 사람이 상전 노릇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정치인들이 최고의 일꾼이 되겠다며 선거 때마다 허리를 굽신대는 건 봤어도, 정치인이 스스로를 머슴이라고 말하는 건 그때 처음 들었다. 표현은 푸근하고 서민적인데, 말은 날카롭고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노회찬 의원의 첫 인상이 바로 그랬다.  

12년 뒤인 2014년, 노회찬 의원은 그 머슴론을 자신의 선거 전면에 내세웠다. 당시 나는 왜 이제야 머슴론이 나왔냐고 물었고, 그때 노회찬 의원의 대답은 “그동안 열심히 쓸고 닦았다”는 거였다. 말 잘 하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울 그가, 자신의 정치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건 말 보다 앞서는 행동이고 진심이었던 거라고 이해했다. 그는 정말 그랬다. 국회의원 뱃지를 떼어내기까지 하는 그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그는 상전의 뜻을 거스른 적 없었고, 상전을 위해 온 몸이 부서지게, 때론 미련하다 싶을 만큼 일했던 걸 나는 한 발 떨어져서 봐왔던 거다. 그에게 국회의원 뱃지는 권력의 간판이 아니라 지울 수 없는 머슴의 낙인 임을 봐왔던 거다.

당시 겸연쩍은 듯 소박하게 웃으며 그 한 마디를 하던 노회찬 의원을 보며 나는 그가 오래도록 국회의원을 해주길. 그가 그토록 염원하던 꿈, 진보정당이 집권하기를, 그 중심에 노회찬 의원이 변함없이 함께 해주길 진심으로 바랬더랬다. 

방송작가와 정치인의 인연으로 짧지 않은 시간, 나는 노회찬 의원을 인터뷰했고 그의 정치 행보를 지켜봤다.  노회찬 의원은 낡은 정치판을 바꾸고자 치열하게 싸우고 고군분투했으며, 정치가 품격있는 유머와 넓은 품이 있다는 걸 보여준 정치인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우리 사회 어둡고 낮은 곳의 투명인간들이 세상의 수 많은 벽에 부딪치며 좌절할 때마다 그 벽에 문을 만들고, 그들의 손을 잡고 세상 밖으로 거침없이 나아간 사람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노회찬 의원은 그를 아는 수 많은 사람들이 하는 말과 다르지 않다. 지금 이 순간까지 그는 20년 전 내가 봤던 첫인상, 그 모습 그대로의 사람으로 남아있다. 소박하고 푸근하지만 날카롭게 빛나는.. 대체불가한 최고의 머슴으로 말이다.

혹자들은 노회찬 의원이 세상을 떠나며 노회찬 정치는 끝났다고 말하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6411버스로 대표되는 노회찬 정신이 이어진다면, 그는 죽어서도 살아 있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서민의 정치가가 되길 희망했던 그의 바람처럼, 서민의 정치가들이 우리 정치를 이끌게 하는 것.  그 책무는 남은 자, 우리의 몫이다.  



- 이선주 (방송작가, 노회찬정치학교 심화과정 2기 수강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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