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소식
민들레(43호) 특집 <월간 노회찬> 시즌1 돌아보기 - 기획자 후기
특집 <월간 노회찬> 시즌1 돌아보기
기획자(이종민 부장) 후기
"더 나은 배움과 이야기를 위해 한 숨 돌리고 오겠습니다"
월간 노회찬. 새로운 이름이 아닙니다. 국회의원의 의정 활동이 어떤 지 알기 어려운 캄캄한 블랙박스 같던 시절, 그리고 그것이 관행으로 자연스럽던 때입니다. 국회의원이 할 일을 숨길 필요가 없다며 의정활동을 널리 알려 국민을 더 이롭게 하기 위해 발간했던, 노회찬 의원님의 대국민 의정활동 보고서의 이름입니다. 그 이름을 다시 사용하는데 있어 부담과 책임감도 컸습니다. 하지만 의원님이 자신을 뽑아준, 자신을 지켜보는, 자신에게 기대하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들과 더 가까워지고 했던 약속이었다는 의미를 되새겼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노회찬 재단이 시민여러분께 더욱 가까이, 더욱 자주 찾아뵙겠다는 각오를 담아 재단 정기 강연의 간판으로 삼았습니다.
비난과 혐오, 흠결 잡기가 난무하고 그것 뿐이던 혼돈의 대통령 선거가 끝났을 무렵, <월간 노회찬> 첫 문을 열었습니다. 처음이 갖는 의미는 각별합니다. 순수하고 진지함, 기대감, 동시에 자칫 미숙함이 드러나는 처음. 특별하고 양가적인 ‘첫 순간’을 진부하게 들려지게 된, ‘진보’를 되짚어 봐야겠다 싶었습니다. <진보를 찾습니다>의 저자 박찬수 한겨레신문 대기자와 함께 첫 발을 내딛은 이유입니다. 정답이 될 수 없을지 모르고 누군가는 동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보가 “사회경제적 욕구”에 다시 주목해야한다는 박찬수 대기자의 제안을 귀담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보이는 변화, 일으키는 변화, 그 변화가 놓인 맥락과 환경을 추적해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노회찬 의원님이 남긴 발자국이 향하던 곳의 현재적 의미를 가늠해보는 방법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전혜원 시사인 기자와 만나 급격히 변하는 노동 환경 속에서 우리 시야에서 멀어진 사각지대를 측량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각지대에서 발생하는 몰인간적 노동에 내몰린 노동자들이 노동의 인간성을 찾아가는 의지와 노력을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과 함께 이야기 나눴습니다. 기술의 급격한 발달, 자본의 치밀한 이해타산 속에 잘게 나눠진 노동, 그리고 파편화된 노동자. 분쇄된 노동 현실을 담아내지 보호하지 못하고 흘려보내는 노동의 법제도를 목격했습니다. 현실과 법의 괴리가 커질수록 노동에 담긴 인간의 존엄성은 축소되고 그것을 부르짓는 목소리는 이해집단의 생떼로 바뀌어 갔습니다.
의원님을 잃었던 7월, 그리고 그를 세상에서 만난 8월을 지나 9월 선선해진 날씨와 함께 한 <월간 노회찬>는 지난 세번의 만남에서 나타나는 사회 부조리를 보지 못하게 우리를 ‘현혹’하는 것이 무엇인가 살펴보려 했습니다. 그래서 현재 우리 사회에서 절대선, 절대적 도덕 기준이며 가치로서 위세를 떨치는 “공정”과 “능력주의”를 뜯어보기로 했습니다. 사회학자 김동춘 교수와 단어의 뿌리와 환경, 주된 화자, 그 화자의 의도를 하나하나 뜯어보았습니다. 우리가 통용하는 “공정”과 “능력주의”가 사실은 우리가 겪는 문제의 근본 원인인 불합리한 격차, 부당한 과정, 합당하지 않은 논공행상, 그리고 더 나아가 그것들이 켜켜이 축적되어 얽히고 설켜 뿌리깊게 자리잡은 불평등을 가리는 눈가리개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사회적, 제도적, 경제적 권력과 기득권을 위해 종사하는 “공정”과 “능력주의” 담론,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 낸 사회가 “문명화된 사회”로 지칭되고 지향할 사회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회에 의문을 담아내고 부조리를 온몸으로 저항하며 외치는 이들은 “비문명”의 “테러리스트”가 되었습니다. 기득권 논리에 부역하는 “공정”과 “능력주의”가 실현하는 “사회효율성”은 우리와 같은 시민이고 주체이고 인간인 장애인을 우리 곁에 밀어내고, 격리하며, 사회로 나온 이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날렸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이고 동등한 사회구성원이고자 하려는 이들의 목소리와 담대함을 박경석 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와 대화하며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올해의 마지막 <월간 노회찬>에서, 노동을 하고 있음에도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소모되어온 존재의 일하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20년차 방송작가 권지현 방송유니온 영남지회장과의 만남에서 들었습니다. 분명 동일한 환경과 시간, 공간에서 꼭 필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가치를 만들어 내고, 심지어 없으면 안 되는 존재로서 일을 하고 있음에도 노동자가 아니었던 그림자, 방송작가. 그림자가 아님을 드러내고 어엿하고 당당한 노동자임을 알아가고 함께 연대하는 과정 속에서 삶의 자존감과 만족, 사회적 책임감을 자각해온 권지현 작가의 메시지는 왜 노동에 귀천이 없고, 노동의 인간성 회복, 노동에 대한 존중이 갖는 중요성, 당위성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더 많은 시간 동안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여섯 번의 만남과 여섯 분의 이야기로 일단락을 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구나 알 법한 명사를 모시고, 모두가 관심에 혹할 만한 이야기를 많이 준비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노회찬 의원님이 사랑하신 문구가 맴돌았습니다. “함께 맞는 비” 그렇게 자칫 잊혀지고 가려질 수도 있는 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그들이 흘린 땀의 가치를 세상에 꺼내 올리는 것이 노회찬 의원님이 바라는 바가 아닐까 생각하며 <월간 노회찬>을 준비했습니다. 좀 더 우리 사회, 우리가 함께 해야 할 가치와 이야기, 사람들의 이야기에 다가갈 수 있는 강연으로 새로 오는 2023년에 만나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