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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47호) 후원회원 이야기 - '함께 행복한 세상'을 꿈꾸던 그가 그립다

재단활동 2023. 04. 14





후원회원 이야기

'함께 행복한 세상'을 꿈꾸던 그가 그립다

 


그를 처음 만난 건 1992년 어느 무렵 가리봉 오거리에 있던 노동인권회관 사무실에서였다.

그때는 1991년 한사노를 거처 1992년 한국노동당 발기인대회, 민중당과의 통합, 총선 그리고 통합민중당 해제 등 짧은 시기에 다이나믹한 변화가 이뤄지던 때였다. 총선 패배와 민중당 해체 이후 진보정당추진위원회(진정추)로의 전환을 준비하면서 만기 출소한 그가 전국을 돌며 지역 당원과의 토론을 진행하던 자리였다. 밤을 새운 토론 시간 내내 진보 정치의 미래를 확신하며 설득하던 열의에 찬 그의 얼굴이 뚜렸하다.

진정추 서울시본부 상근자로 일하며 중앙의 사무총장으로 대표로 그와 만나다 15대 총선을 앞둔 1995년 강서을에 출마하려던 그와 함께 선거를 준비했다. 꼬마민주당과의 선거연합에 반신반의하던 회원들을 설득하며 양천에서 강서로 지역을 옮겨가며 '강서의 봄, 노회찬'을 열심히 알렸다. 상근자가 많지 않았지만 저녁이면 일을 마친 회원들과 함께 서로 역할을 분담하며 선거 운동을 열심히 했다. 하지만 사면복권이 되지 않아 결국 출마는 불발이 되었다. 회원들과 해단식에서 누구보다 아쉬웠을 그가 아쉽고 분해서 눈물 흘리던 회원들을 다독이던 그 미소가 떠오른다.

1996년 12월 옆지기와 결혼식날 마침 백화점 세일 때문에 도로 정체로 주례가 늦었지만 그래도 넉넉한 입담으로 함께 출발하는 우리에게 나누어 주던 덕담이 기억된다.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된 후 명절 연휴가 되면 진정추 시절부터 같이 했던 사람들과 함께 그의 집에서 명절 모임을 했었다. 떡국이나 과일 등 명절 음식을 함께 나누면서 자주 보지 못한 선후배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즐기던 모임이었는데 어느 해는 거나하게 취한 그가 갑자기 일어나서 ‘안주가 부실한 건 주인의 잘못’이라며 앞치마를 입고 즉석에서 부침개를 만들어 내놓은 모습이 생각난다. 또 어느 해는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몇몇 사람들과 뒷풀이로 집 근처 술집으로 가서 평소 좋아하던 가곡 명태를 멋지게 부르던 모습도 생생하다.

진보정치인 답게 누구보다 얼리어답터였던 그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블랙베리와 아이폰에 대해 해박하게 이야기할 땐 IT전문가가 같았고, 앱을 통해 아이폰으로 오카리나 연주를 할 땐 마치 예술가 같았다.

자주 찾아가지는 못했지만 가끔 의원회관에 찾아가면 언제나 그 큰 손으로 악수하던 그의 환한 얼굴이 그리운 것은 진보정당의 집권을 위해 모든 힘을 쏟았던 정치인 노회찬이 이제 없기 때문이다. 진보정당의 존재감이 작아진 현실에서 대안과 희망으로 함께 이끌어갈 새로운 노회찬들이 나오기를 기대하며 함께 행복한 세상을 꿈꾸던 그를 그리워 한다.


- 윤건희 (회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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