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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48호)] 특별기고 - 정가보컬리스트 정마리의 <봄∙굴∙꽃> 공연

재단활동 2023. 05. 15




[특별기고] 정가보컬리스트 정마리의 <봄∙굴∙꽃>공연 


코트(KOTE)로 들어가는 길목은 공사중이다. 도심 재개발의 창끝은 도심의 허파와 같은 코트로 진격하고 있다. 날씨예보를 보니 토요일 전후의 날씨는 괜찮은데, 토요일만 오전오후 비로 표시되어있다. 코테의 마당에는 100년 전에 나서 소임을 다하고 선채로 죽어간 오동나무옆에 새로 돋아난 아기 오동에 꽃이 피었다. 6년만에 피었다고 한다. 오동나무 꽃은 밝은 대낮에 보는 것도 좋지만, 어스름한 저녁에 보는 것이 제격인 거 같다. 딸이 태어나면, 오동을 심는다고 했나? 이 오동은 딸 혼사를 위한 장롱으로 거듭나게 될 것인가? 또는, 거문고로 거듭날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어미 나무처럼 도심의 한복판에서 선채로 죽어가게 될까? 

정구종의 설치작업은 환경친화적이다. 공연장소의 원형은 거의 건드리지 않고, 소품들을 배치한다. 이번에는 눈물 방울같이 생긴 한지등(燈)을 60여개 여기저기 배치하였다. 100일을 맞은 아기 정도의 크기이다. 자연스럽게 빚어진 등들은 눈물 방울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꽃봉오리나, 굴 또는 씨앗일 수도 있다. 정마리가 아기 안듯이 들고 노래하기도 한 것을 보면 그것은 ‘해변에 엎드려 있던 쿠르디’이거나, 어느 해 4월에 스러진 아이들일 수도 있다. 철거중으로 보이는 건물의 외벽은 거친 속을 보여주고 있으며, 창문 속에서는 여러 색의 조명이 불안하게 번쩍인다. 그 아래에 위태롭게 마련한 무대에서 ‘봄 굴 꽃’을 노래하고 있다. 오동나무에 찾아온다는 봉황의 울음이다. 

사회자의 소개없이 내려앉은 봉황은 가곡삼매로 시작한다. 우린 비현실적이거나 초현실적인 세계로 빨려 들어간다. 검은 바지와 흰 윗도리를 입은 두 사람의 느린 움직임은 우리를 이 세계로 천천히 끌고 들어간다. 김기범과 박시한의 움직임은 물음부호가 건들거리며 떠다니는 것 같다. 누가 무심코 놓아둔 샌드위치를 뒷골목 고양이가 와서 뜯고 있다. 그 모습이 초현실적인 분위기에 어울린다. 어쩌면 자궁안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다. 봄은 자궁같은 바다속과 어두운 땅을 뒤흔든다. 이 봄은 또 어떤 굴을 품고, 어떤 꽃을 피워내게 될까?

소리의 뼈대는 신지용의 Soundscape의 전자음이 담당한다. 아날로그 악기인 베이스에 디지털 이펙터(effector)를 연결하여 내는 그 음악으로 해서 탄탄하게 꽉 채운 느낌을 가지게 한다. 커다란 덩치의 소리 구조물 사이로 정마리의 가늘고 낭창낭창하지만 뇌수를 서늘하게 가르는 소리가 느리게 물결처럼 흘러 나온다. 여기에 김상현의 거칠고 무거운 ‘말(나레이션)’이 더해지면서 전체적으로 매우 다채로운 소리의 집이 짜여진다. 정마리의 소리가 여성적이라면, 김상현의 말은 남성적이어서 조화를 이룬다. 외기의 온도는 10도이다. 4월말의 저녁밤치고는 매우 기온이 낮은 편이다. 1부의 분위기는 그 기온에 맞춰진듯하다. 블라드미르 나보코프의 소설 Lolita(로리타)는 가을에 어울리는 스토리라고 생각했었다. 봄밤이지만 오늘 저녁은, 다시 비틀즈 멤버 존 레논의 ‘Oh my love’를 들으며 Lolita의 삶을 되새겨보기에 딱 맞는 기온이다. 정마리가 ‘oh my love for the first time in my life’를 반복할 때마다, 기온은 점점 더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정마리가 오래 전에 작업했다는 중세유럽의 그레고리안 성가의 분위기에 젖어든다. Eb은 D#과 같은 음이지만, 성가에서 Eb을 많이 쓰는 것은 자신을 낮춘다는 종교적인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들었다. 이때, ‘그 해 여름 내 나이때...’라는 강한 ‘말’과 함께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1부가 끝났다. 2부를 기대하게 하는 구성이다.

1부에서 청각와 시각에 서늘한 충격을 준 정마리가 노래를 부르며 구웠다는 굴전을 중간 휴식에 제공하여 우리들의 미각까지 챙겨주었다. 남해 바다에서 시인이 키운 굴로 정가 연주자가 굴전을 빚었다. 이건 물론 프로의 솜씨는 아니지만‘정가(正歌) 품은 굴전’은 남아나질 않았다. 음악에 이어 요리에서도 굴전 샌드위치로 크로스오버를 시도하고 있었다. 

2부에서 연주된 ‘충적세의 굴’이 상징하듯, 겹겹이 다양한 층의 곡들로 채워나갔다. 하얀 한복에서 빨간 코트로 갈아 입은 정마리는 최영미 시인의 ‘선운사에서’로 2부를 열었다. 도발적인 시로만 알고있던 그 시인이 쓴 서정적인 시이다. 그 시의 한 구절인‘꽃이 지는 건 잠깐이더군’에서처럼 피어있는 꽃보다는 지는 꽃에서 느끼는 감성이 우리에게 더 진하게 다가온다. 우리를 위해 활짝 피고 있다가 한순간에 져버린 한 사회주의 운동가의 육성 노래로 자작곡 ‘석남화(철쭉)’를 들을 때, 소름이 돋았다. 고흥균은 검은 색 천을 하나 드는 간결한 방법으로 살풀이 춤을 스트릿 댄스에 버무렸다. 여기에 방민영의 둔탁하지만 깊이있는 거문고 연주가 섞인다. 고구려의 악기인 거문고는 많은 음악적 표현수단을 꽁꽁 묶어놓고 타는(=연주하는) 악기라고 한다. 터져나오는 울음을 틀어막고 우는 울음과 같다. ‘모든 시민이 악기 하나쯤은 다룰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애쓰다가 더운 날 져버린 노회찬과, 장석 시인의‘해변에 엎드려 있는 아이’를 위해 우리가 충분히 울었는지 묻고 있다. 아직도 모두 함께 울고 있는지 묻고 있다. 

신냉전의 모습으로, 기후위기의 모습으로 위험은 점점 더 다가오고 있다. 이건 마치 도심재개발의 경계가 코트로 점점 더 진격해오고 있는 것과 같다. 무대 너머 보이는 현대식 건물벽엔 붉은 네온 불빛으로 ‘헤커스 어학원’이라고 굵게 쓰여 있다. 당신은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간 사이 잠든 아기’같이 잠들고 있지 않은가? 장석 시인의 시구(詩句)처럼 ‘그 애가 죽었으므로 우린 깨어’났는가?





- 서덕영 (경희대 교수)




소연가(LIVE) - 정마리 '봄 • 굴 • 꽃' 공연中
작사 서정주, 작곡 노회찬
노래 정마리

2023 Jungmarie company in KOTE '봄•굴•꽃'
주최 : 정마리컴퍼니 KOTE
후원 : 노회찬재단 중앙씨푸드 사야문화재단 도서출판 강

▶ 공연영상 보기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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