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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소식

[민들레(50호)] 특별기고 - 삶의 어둠과 상처를 마주하고 치유하다

재단활동 2023. 08. 01





특별기고

삶의 어둠과 상처를 마주하고 치유하다
< 구술생애사 7주간의 여정 + ing >



“어쩌죠? 모집공고를 내자마자 정원의 두 배가 넘게 신청을 했어요! ”

예상외의 결과였다.
노회찬 재단이 <실천하는 인문예술교실 >의 첫 수업으로 “구술생애사”를 진행한다고 했을 때  ‘구술생애사’ 강좌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재단의 모집인원은 선착순 20명. 강의실 규모와 7주라는 짧지 않은 강의 시간에 수강생들이 가질 부담을 고려한 건데, 정작 공고를 내자마자 마감해야 하는 뜻밖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재단에선 이런 일이 처음이라고 했다. 놀랍고 반가운 마음과 함께 “왜”라는 궁금함도 적지 않았다. 

‘구술생애사’가 학술분야가 아닌 일반 대중들에겐 아직까진 낯설고 멀게 느껴질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한 신청이라면, 수강 도중 이탈자도 적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예상은 또 빗나갔다.
대학생, 교수, 직장인, 사진작가, 사회단체활동가, 주부, 전.현직 공무원 등. 30명이 넘는 수강생 대다수가 7주간의 여정을 함께 한 것이다. 그것도 열정적으로.  최현숙 구술생애작가의 노련하면서도 농익은 수업엔 소외받고 잊혀진 사람들에 대한 뜨거운 애정이 녹아 있었고, 매 시간 강의실을 꽉 채운 수강생들은 꾹꾹 눌러 담듯 경청하며 기록했다. 버릴 것 하나 없는 최현숙 작가의 열정적인 강의에 수강생들 역시 성실함과 열정으로 답한 것이다. 나는 그 현장에서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사람에 대한 선한 의지를 보았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찾은 ‘왜 구술생애사인가’에 대한 답이기도 했다.

삶을 기록하는 작업은 다양한 방법으로 진행돼 왔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기록하는 자서전이나 회고록이 있는가 하면, 지배계층이나 엘리트들의 경험을 역사적 의미를 부여해 기록하는 작업들도 흔하다. 제3자가 쓰는 평전도 추세의 하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구술생애사는 여타의 생애 기록들과 차별된다. 구술생애사에는 평범한 사람들과 소외된 계층의 생애와 삶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것이다. 세상의 관심과 시선에서 비껴 있거나 외면당한 투명인간들에게 집중하고, 그 목소리를 세상에 드러내는 작업이 ‘구술사’이고 ‘생애사’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구술가 폴 톰슨은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사람들의 문헌만으로 역사가 연구된다면 과거의 불평등은 현재의 불평등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의 경험을 기록하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역사쓰기를 가능한게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덧붙여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는 “소소한 일상이나 흔해 빠진 사람들의 흔해 빠진 생애 이야기를 통해 사회문화와 심리를 엿볼 수 있다”고도 했다. 이 두 사람의 말은 구술생애사 작업이 확장되고 보편적으로 진행되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7주간의 강좌를 마친 수강생들은 7월부터 본격적인 후속 작업에 들어갔다. 
모두 16명으로 구성된 후속작업팀은 여성도배 기능인 1세대 1호 김OO, 대한민국 청년의 현주소 우OO, 기아차 장기해고 노동자 박OO, 요양보호사 김OO 등 우리 사회 다양한 연령대의 투명인간과 6411의 주인공들을 만날 예정이다. 삶을 기록하는 작업이니 만큼 올해를 넘겨 내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 짧지도 쉽지도 않을 시간과 과정이겠지만, 나는 이 모든 발자국을 가슴 벅차게 응원하며 한발 한발 함께 하려 한다.

상처 투성이인 자신의 삶을 세상을 향해 들려주는 어려운 결정을 한 사람들, 이들의 목소리를 기록으로 남기며 재해석하는 모든 과정과 시간은 특별할 것이다. 이 특별한 과정에 동참한 이들은 모두, 우리 역사의 생생한 기록자이며 증인들이다.


- 이선주 (방송작가, 야학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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