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소식
노회찬재단 2023년도 쉼지원사업 결과보고 (학교너머더큰학교)
* 노회찬재단 2023 쉼지원 공모사업에 선정된 ‘학교너머더큰학교’에서 제주로 쉼워크숍을 다녀왔다는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에세이 형식의 후기를 아래와 같이 전해드립니다.
'더큰학교의 더큰 제주워크숍' 낭은 돌 의지, 돌은 낭 의지하듯 제주에서 구로까지
- 전선행 (구로청소년문화예술센터 운영단장, 더큰학교 운영위원)
2023년 7월 2일. 아침 7시 40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 6시 30분까지 김포공항 4번 게이트에서 모이기로 하였다. 그리고 곧이어 난장스런 풍경이 그려진다. 탑승게이트로 착각한 사람(바로 나다), 지각하는 사람, 이제 막 일어난 사람, 숙취로 고생하는 사람들…. 그럼에도 불편하거나 이상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학교너머더큰학교’ 스럽지 않은가? 엄격한 규칙도, 완벽한 사람도 없지만 약간의 소란 속에서 즐겁게 웃는다. 그렇게 한 명도 빠짐없이 무사히 태우고 하늘을 향해 달리는 비행기 안에서 생각했다.
‘구로’라는 이름을 가진 지역사회에서 ‘교육’을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이 가지각색의 모습으로 어우러진다. 우리만의 조직문화로 사람과 집단을 잇고, 집단과 집단을 이어가며 함께 만드는 시너지로 지역사회의 교육을 지키며 만들어가는 곳. 학교너머더큰학교가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노회찬재단’의 쉼지원 사업으로 떠나는 2023 제주워크숍을 두서없이 떠들어 보려한다.
1. 이 곳에서 서울에서 출발하는 일정은 모두 같았지만, 제주에서 출발하는 일정은 조금씩 달랐기에 짐가방의 종류와 크기 또한 모두 제각각이었다. 10명의 사람과 10명의 가방. 이제 막 숙소로 출발하는 우리에게 가장 큰 난제는 ‘이 차에 사람과 짐이 모두 타는 것’이었으나 다행이도 가방을 잘 쌓아놓고, 사람이 몸을 잘 접어가며 앉으니 차량이 식당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불편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노래가 흘러나오고, 새로운 환경에서 불어오는 공기를 만끽하며 나름 평화로운 드라이브가 이어진다. 뒷자리는 서로 바꿔가며, 운전자를 독려해가며, 서로의 기분과 상태, 식사를 챙기고 대화를 나눈다. 제주가 시작되었다.
2. 시작해보는 이번 워크숍의 테마는 ‘다크투어’로, 제주의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어두운 일면을 보고 듣는 시간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조식 식당을 가는 길, 정확히는 구겨앉은 차량 안에서 다크투어의 인트로(intro)가 시작된다.“맨 뒤에 냉방이 잘 안되는 것 같은데, 앞에는 춥다고 하네. 혹시 여기 지금 (설국)열차 꼬리야?” 역시 현실은 냉정하다며(물론 자리는 계속 바꿔 앉았다) 하하호호 웃고 떠드는 소리가 과속방지턱을 만나 쏙 들어갔다. 대신 ‘윽!’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특히 맨 뒷자리는 차량의 흔들림이 강하게 체감되는 자리여서 앉을 때 나름 편한 자세를 찾기 위해 애썼던 반면, 앞좌석은 비교적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이 작은 공간에서의 ‘다름’이 제주의 비마냥 갑작스레 쏟아졌다. 그리고 장난에서 시작된 고민은 단순한 차체 특성을 넘어서 현실의 평등은 얼마나 더 가혹할지로 번져나가, 어느새 흠뻑 젖어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내 힘으로 움직일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있나? 제주도 민주주의민족전선의 건국 5칙을 보며 오른손을 들어 꼽아본다. 민전이 결성된 1947년 이후,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3. 역사를 딛고 제주도 민전의 건국 5칙이 갑자기 화두에 오른 것은, 4·3사건의 도화선이 된 삼일절 행사에 대한 내용을 제주 4·3평화기념관에서 확인하며 시작된다. 짧은 시간동안 오래된 제주의 아픈 이야기를 훑어보며 그곳에 있던 모두의 가슴에 작은 슬픔이 흐르지 않았을까 싶다. 갓난 아기부터 지혜로운 어르신들까지 이유도 없이 죽어갔다. 무차별적 학살은 제주 곳곳에 흉터를 남겼고,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후유증이 되었으며 현재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 때문에 모두가 기억해야 한다 입을 모은다. 기억의 상실은 과거를 휘발시키고, 잘못과 반성없는 역사는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 배웠기 때문에. 억울한 죽음 위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애도의 자세이기 때문에. 과거 평범한 일상을 살았을 제주의 주민들, 난징의 주민들, 독일의 유대인 모두가 그러했다. 누구도 그렇게 죽을 이유가, 누구도 그들을 학살할 권리는 없다.
4. 자연에서 배우고 거문오름을 해설자와 함께 걸으며 신기한 이야기를 들었다. 한 나무에 가시가 잔뜩 있었는데 같은 종의 나무도 숲 안쪽에 있으면 가시가 없다는 것이다. 숲 외곽에 있는 나무에만 가시가 있다고 한다. 함께 한 사람들이 여러 추측을 하며 맞춰 보았지만 결국 정답은 해설자가 직접 설명해주었다.“숲을 보호하기 위해서.” 살아있는 것을 위한 자연의 신비한 노력이 그저 대단하게만 느껴진다. 그렇다면 인간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고민하는 나에게「4·3평화기념관」에서의 기억이 속삭인다. 사람의 욕심이 살아있는 생명을 뛰어넘었을 때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졌는지 조근조근 말해온다. 하지만 또 다시 자연도, 사람도 우리의 욕심대로 휘둘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름다운 제주의 곶자왈을 직접 걸어보며 무분별한 개발로 사라져버린 곶자왈과 남은 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위대하고도 신비한 자연이지만, 인간의 욕망에 이렇게도 쉽게 바스라질 수 있다. 알고 있었음에도 새삼스레 다시 생각해보는 수많은 생명의 존폐가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어디 곶자왈 뿐이겠는가? 무리한 관광사업 활성화로 병들어가는 바다를 보며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주민들 또한 뭉칠 수 없는 이해관계 속에서 조금씩 지쳐가고 있다. 그럼에도 함께 살아가야 하기에 공존에 대한 과제는 앞으로 끊임없이 되풀이될 것이다.
5. 지금을 살면서 2023년을 맞이한 지금. 오늘날 대한민국은, 세계는, 그 곳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을 자연스레 되짚어본다. 뉴스에서는 온갖 비리와 청탁 문제가 하루도 빠짐없이 나오고, 능력주의와 공정성에 대한 이슈는 늘 논쟁의 중심에서 유유히 포류하고 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누군가는 다양한 방식의 현대적 학살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좋은 세상’은 터무니없는 바람일까 싶지만 평등과 공정, 공유와 연대의 가치를 강조하는 노회찬재단 창립선언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부와 권력, 소수 강자의 횡포를 넘어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라는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동자, 서민,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가 진정한 주권자가 되는 ‘참다운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기업가와 노동자가 다같이 잘 살고, 서민을 포함한 모두가 다같이 잘 살고, 여성의 권리가 남자와 같이 되고, 장애인과 학생이 안심하고 생활하며 공부할 수 있는 나라.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동일한 목표로 달려왔다. 누군가 꿈꿨던, 지금의 우리가 원하는 ‘참다운 민주주의’를 위해 필요한 이야기를 소리높여 함께 해야하는 지금도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다.
6. 떠나보는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더큰학교의 사람들과 함께 하였기에 많은 것을 배웠다. 천천히 걸으며 나무에 있는 달팽이를 찾아내는 법, 나무가 나무에게 의지해 새로운 성장을 해나가는 경이로운 모습, 아름다운 꽃의 향기에 취하며 운치를 즐기는 것까지 무엇 하나 버릴 것이 없다. 걸음 하나에 감탄하고 아름다운 사진을 남긴다. 어깨를 활짝 펴고 청량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나의 안에 남은 것이 무엇인지 조심스레 되짚어본다. 그러나 그 무게가 가볍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마음이 무겁다. 제대로 지키지 못한 약속과 함께 텅텅 비어있는 쓰레기봉투(워크숍 규칙 중 하나였다. 일명 ‘제주쓰레기의 서울행’)가 나를 질책한다.
7. 돌아오다 낭은 돌의지. 돌은 낭의지. 제주 곶자왈에서 돌과 나무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간다는 말이다. 인간과 자연이 서로 의지해야 한다는 말로도 들렸고, 인간이 인간과 의지하는 공동체의 가치로도 느껴졌다. 그리고 생각은 ‘우리’로 이어진다. 지역사회 안에서 서로 의지하면서 어린이 청소년들을 위한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교육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 학교너머더큰학교의 역할임을 다시 한 번 상기하며 돌아왔으나 이를 위해 구체적인 지표설정은 아직 숙제로 남아있다. ‘쉼’을 통해 더 많은 길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올 수 있도록 해주신‘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노회찬재단’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구로에서의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 숙제는 남아있지만 마을을 잇는 ‘교육’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