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소식
[민들레(52호)] 문화인 노회찬 - 길을 내는 사람
문화인 노회찬
길을 내는 사람
나는 미술로 세상과 소통하는 작가이다. 예전에 마을지도로 벽화를 그린 적이 있었는데, 처음엔 어디에 누가 사는지 그리게 되어 집이 먼저 눈에 들어왔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릴수록 집을 이어주고, 사람들을 이어주는 길을 인식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예전에 마을 길은 그저 집을 드나들기 위해 지나치던 곳이 아니었다. 길에서 마주한 사람들 서로의 안부를 살피고, 정을 나누는 마음을 배우던 곳이었다. 다시 말해 길은 ‘사회적 연대의 장’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캔버스 앞에 앉아 그린 것이 매화나무 가지였다. 그리곤 매화나무 가지에 주렁주렁 집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좀 이상하지 않나? 그러나, 내가 그린 것은 나뭇가지가 아니었다. 작업실이 있던 달동네서 마주한 길. 비록 구불구불 골목은 가파르다 못해 등산을 방불케해도, 어느 사람에게나 다다를 수 있게 해주는 길을 그렸다.
요즘 자주 듣는 말이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말이다. 일자리가 없어지고 그곳에 있던 노동자가 자취를 감추는 사회에 ‘혁명’은 누구를 위한 말인가? 하지만 이 시대에 직업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감춰져서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사회는 톱니바퀴 앞으로 내몰린 인간활동에 기대서 지탱되고, 그 ‘막바지’를 책임지는 사람들은 언제나 노동자들이었다.
보이지 않게 일하고 있는 이 유령 같은 노동자들의 삶과 존엄을 회복시킬 방법은 무엇일까? 그 연대와 결속을 쌓는 첫 단계는, 그들에게 다가가는 길을 찾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라고 외치며, 그들에게 가는 길을 보여준 사람이 노회찬이었다. 새벽어둠 속에서도 반짝이던 그의 길은, 단지 청소노동자에게 가는 길만은 아니었다. 이 사람은 장애인, 성소수자등 사회에서 외면받는 사람들에게 가는 길을 끊임없이 만들어 냈다. 비바람이 거칠게 그들을 밀어내면, 우산도 내던지고 그들과 함께 길을 찾았던 사내가 정치인 노회찬이었다.
“이분들이 그 어려움 속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을 찾을 때 우리는 어디 있었습니까? 그들 눈앞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손이 닿는 곳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에 과연 있었습니까?” 차돌처럼 단단한 질문을 던지며, 그는 정치가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
오랜 시간 걸음의 ‘흔적’과 ‘마음’과 섞이면 비로소 길이 되고, 골목과 마을이 되고, 이것들이 모이고 쌓여 공동체가 된다. 화려하고 과시적인 곳보다, 생명이 꿈틀거리는 가파른 길이 더 아름답다 믿었던 사람이 노회찬이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처럼 마음소리 멈춰서면 길은 이내 쓸쓸하게 잊혀지고 사라진다.
소금처럼 썩지 않고 세상 살아가기 힘든 요즘, 그가 내어준 길에서 많은 사람들이 정 나누기를 바라본다. 그러면 어둠도 그만큼 밀려날 것이고, 이내 빽빽해진 우리 곁에서 진달래는 더욱 힘낼 것이다.
언젠가, 진달래 향기 그윽한 길을 노회찬과 함께 걷기를 기대하며...
이선일 (화가)
저 매화나무에 물을 주어라 / 36×51 / mixed media / 2014 이선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