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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54호)] 문화인 노회찬 - 노회찬 평전 시민 오디오북의 탄생

재단활동 2024. 01. 05




문화인 노회찬

노회찬 평전 - 시민 오디오북의 탄생

 

2018년 7월 23일, 믿기지 않는 비보를 듣고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달려가 대성통곡한 게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매주 수요일 ‘노르가즘’ 코너를 통해 목소리를 듣긴 했지만, 딱 한 번 스쳐 지나가면서 본 게 전부인 정치인의 죽음에 왜 그토록 깊은 슬픔을 느꼈는지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노무현리더십학교에서 고위과정을 수료한 후에 민주시민교육을 해보고 싶어 낭독 독서토론 모임 '선데이북살롱 렛미노우'를 만들었습니다. 책을 매개로 한 참여와 대화로 시민력과 사회력을 키울 수 있다고 느낄 무렵 '노회찬 평전'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첫 번째 아이디어는 "시민 오디오북을 만들자!" 입니다. 낭독을 진행하는 모임이기에 녹음만 하면 '시민 오디오북'을 만들 수 있습니다. 녹음은 모임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생각해 왔던 일입니다. 다양한 성별과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여 낭독할 때 나오는 목소리가 갖는 힘이 있습니다. 이 목소리를 시각장애인분들이나 여러 사유로 책을 읽기 힘든 분들께 들려드리면 분명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노회찬 평전은 600페이지로 분량이 상당히 많은 편이라, 한 명의 목소리로 일정하게 읽어주는 기본 오디오북보다 훨씬 편안하고 지루하지 않게 들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두 번째 아이디어는 "매 회차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단체사진을 찍자!" 입니다. 멋도 좀 부리면서 살아야 하는데 자신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나머지 딱 하나밖에 없다고 했던 노회찬의 선글라스. 그런 선글라스를 단체로 착용하고 멋진 진보, 세련된 진보를 추구하자는 의미로 사진을 찍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아이디어를 가지고 선데이북살롱 렛미노우 번외편 '노무현시민센터에서 노회찬 평전 읽기'를 시작했습니다. 매주 수요일 저녁 7시~10시, 총 10회차의 긴 여정이었습니다. 녹음을 한다고 하니 회원들이 처음에는 다소 긴장을 하기도 했는데 회차가 거듭될수록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정식 오디오북처럼 좋은 음질과 훌륭한 성우의 목소리는 아니지만, 기쁘면 웃고 슬플 땐 눈물 흘리며 진심을 담아 낭독했습니다. 회원분들의 노력으로, 10주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진행하여 마침내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온전히 시민들의 목소리로 제작된 16시간 55분 분량의 '노회찬 평전 시민 오디오북'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혹시나 놓고 오는 분이 있을까 봐 3개씩 들고 다녔던 선글라스 착용 단체 사진은 저희 페이스북 페이지에 매번 업로드하여 기록을 남겼습니다.

완성된 '노회찬 평전 시민 오디오북'은 USB에 담아 노회찬재단에 전달하였습니다. 노회찬 대표는 생전에 장애인들의 든든한 친구였습니다. 저희가 제공한 시민 오디오북이 평전을 읽고 싶은 시각장애인을 포함한 활자책이 읽기 어려운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재단에서 잘 다듬어서 공개해 주실 거라 믿습니다. 노회찬 평전보다 그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자료는 없습니다. 어렵게 탄생한 평전인 만큼 더 널리 읽힐 수 있도록 재단에서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많이 기획해 주셨으면 합니다.

노회찬 평전 읽기 대장정의 마무리는 모란공원 묘역 참배로 했습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와 비 예보로 걱정했는데, 다행히 생각보다 춥지 않았고 저희가 묘역에 있는 동안은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날씨도 도와준 참배였습니다. 평일 낮에 방문해서 그런지 아무도 없어 적적하실 듯하여 생전에 가장 좋아하셨다는 화요 한 잔 올리고 묘역 앞에 돗자리 깔고 앉아 한참 수다를 떨다 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갑자기 변한 날씨에, 방금 전까지 묘역에 있던 순간이 꿈 같이 느껴진다는 한 회원님의 얘기가 너무 공감되었습니다. 처음 가는 게 힘들지, 다음부턴 편하게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평전을 다 읽고 나서야 비로소 제가 왜 그토록 깊은 슬픔을 느꼈는지 깨달았습니다. 노회찬처럼 시민과 함께, 시민 옆에서 진정으로 함께 호흡한 정치인은 찾기 어렵습니다. 앞으로도 없을 것만 같습니다. 그런 분의 안타까운 죽음을 견디기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대단한 활동은 아니었지만, 노회찬 평전 읽기를 통해 그의 정신을 조금이나마 기릴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진행한 노회찬 평전 읽기. 후손을 위해 한 삽 한 삽 산을 옮기는 우직한 노인처럼 느리지만 묵묵하게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노회찬(魯會燦)과 노무현(盧武鉉). 두 분의 공통 분모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우공이산'입니다. 두 분이 상상했던 세상이 펼쳐질 수 있도록 저희는 저희 나름대로 일반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한상덕 (낭독 독서토론 모임 '선데이북살롱 렛미노우'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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