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소식
[민들레(58호)] 후원회원 이야기 "노회찬 평전을 읽고 노회찬재단 후원회원이 되다"
후원회원 이야기
노회찬 평전을 읽고 노회찬재단 후원회원이 되다
<노회찬 평전>을 읽었다. 560쪽이나 되는 두툼한 책이지만, 흡인력이 대단했다.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은 제쳐두고 책읽기에만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참으로 값진 보상을 충분히 받았다. 책을 덮은 새벽 2시께, 스마트폰을 열어 노회찬재단에 정기후원회원으로 등록했다. 마음 한 켠이 뿌듯해져왔다.
공직자로 살다가 50대 초 뒤늦게 정치에 뛰어든 내게 <노회찬 평전>은 참으로 많은 걸 생각하고 또 깨닫게 해줬다. 그간 ‘정치인 노회찬’이라고 막연하게 알고 있던 한 사람을 ‘인간 노회찬’이라는 관점에서 진면목을 보게 해 준 고마운 책이었다.
노회찬은 조숙했다. ‘흥남 철수’ 때 부산으로 내려온 실향민 부모의 고초 덕에 유복한 환경이었지만, 이미 고등학교 다닐 때 유신독재에 반대하는 유인물을 제작해 배포했고 ‘운동’하러 대학에 갔으며 기꺼이 노동현장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평생을 노동자, 서민 등 일하는 대중의 영원한 벗으로 살았다. 진보정당 창당과 원내 입성을 뛰어넘어 집권까지 감히 꿈꾼 이상주의자이자 현실주의자였다. 그런 점에서, 쿠바의 체 게바라가 무장 혁명을 통해 집권한 뒤에도 전 세계 약소민족의 해방을 위해 끊임없이 현장에서 활동했다면, 노회찬은 제도권에서 민주적이고도 합법적인 방법으로 원내진출과 집권하기 위해 한 평생을 바친 점에서 대비된다.
그는 사실 수없이 부딪치고 실패하고 좌절했지만, 또 오뚜기처럼 일어섰다. 진보진영의 정치세력화와 대통령 후보 선출을 넘어 2004년 처음으로 진보정당의 원내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하지만, 정파간 분열과 통합, 그리고 다시 분열로 이어져왔고 그 결과는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다.
나는 솔직히, 끊임없이 실패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그의 동력이 무엇일까, 몹시 궁금했다. 동지였던 여성과 만나 결혼한 그는 아이를 갖길 원했으나 이룰 수 없었다. 어느날 자신의 조카가 큰아빠는 왜 그렇게 어렵고 힘든 길을 가느냐는 질문에, “이 일을 할 때 진정 행복하기 때문”이라는 답에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국회의원 출근 첫 일정 뿐 아니라 임기 마지막 일정으로 국회 청소노동자들과 식사를 하며 고충을 해결해준 일은 그가 정치를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해온 대표적인 사례다.
평생을 진보정당 운동에 헌신해다 안타깝게 생애를 마감한 그는 참으로 따뜻한 인문주의자이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첼로를 연주할 정도로 예술에 조예가 깊었고 음식, 여행, 역사 다방면에 모르는 게 없는 인문주의자였다. 거친 언사만이 능사인 줄 알고 실력을 제대로 키우지 않는 다른 정치인들과는 무척 대비되는 성품과 소양을 갖춘 정치인이자 인문인이었다.
그런데, 그토록 두툼하던 책이 막상 종반으로 접어들면서 남은 쪽이 얇아지자 문득 두려움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책의 결말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러 속도를 늦추며 최대한 천천히 그리고 가슴 졸이며 책을 마무리해야 했다.
문득, 책을 덮으며 그의 명연설 중 하나인 ‘6411번 버스 연설’을 직접 필사해봤다. 2012년 10월 진보정의당이 출범했을 때 당대표를 수락하며 한 연설이다. 그는 실제로 2010년 서울시장 선거 때 구로에서 출발해 강남 개포동까지 가는 6411번 버스 첫차를 탔고 그 때 버스안 풍경을 떠올리며 원고없는 즉석 연설을 했다. 읽고 또 읽어도 울림이 큰 명문이다. 정치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에 새겨야 하는 연설이다.
며칠 전 치러진 총선에서 녹색정의당은 지역과 비례 그 어느 곳에서도 당선자를 내지 못했다. 20년 만에 다시 원외정당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정계은퇴를 선언하는 심상정 의원의 눈물 글썽이는 모습이 참으로 가슴 아팠다. 지금 우리 남양주 마석모란공원에 잠들어 계시는 노회찬은 편히 쉬고 계시진 못할 듯 하다.
‘야심성유휘(夜深星逾輝), 밤이 깊을수록 별은 더욱 빛난다.’ 노회찬이 2013년 1월 진보정의당 대표로 새해 첫 인사 때 한 말이다. 그렇다. 작금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진보정당을 향한 노회찬의 꿈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 아니, 이어질 것이라 확신한다.
- 최현덕 (전 남양주 부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