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소식
[민들레(60호)] 노회찬재단 x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직접 듣는 6411의 목소리> 수강 후기
노회찬재단 x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직접 듣는 6411의 목소리> 수강 후기
당사자 목소리를 넘어, 주체가 되는 삶
- 하태욱 (노회찬정치학교 기본과정 2기 수료)
올해 상반기(4~6월)에 진행한 성공회대학교 노동대학(이하 노대)은 총 12강 중 7강부터 일반/심화 과정으로 나뉘어 진행했다. 코로나 시대 이후 처음으로 전면 오프라인 강의 운영을 원칙으로 전환하였기에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나는 성공회대학교에 유일한 조교로 이번 심화 과정(‘직접 듣는 6411의 목소리’) 진행을 도왔다. 강사가 편안하게 강의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 임무였다.
노회찬재단(이하 재단)과 공동 기획한 이번 과정의 초점은 당사자 목소리를 듣는 데 있었다. 첫 강의는 한겨레 신문사와 재단이 함께 진행하는 코너 <6411의 목소리> 편집자문위원 중 한 분인 하명희 소설가(이하 작가)가 맡았다. 그는 강의에서 각종 현장에 존재하는 ‘당사자’ 목소리를, 수강하는 사람이 직접 낭독하는 방식으로 강의를 진행했는데, 신기롭게도 문장을 읽을 때 흡사 글쓴이가 지금 이 자리에 존재하는 것처럼 공기가 바뀌는 순간을 맞이하며 소름 돋았다.
지난 2019년 이후 노대와 인연을 맺으며 남한 사회가 드러내는 모순과 부조리를 나름 바삐 쫓아가며 인생을 반추하고 살았으나, 늘 마음 한구석에 아쉬움이 있었다. 특히 나는 유니온샵에 형편이 꽤 좋다고 여겨지는, 금융권 노동조합에서 상근자로 일했고 이후 임기제 공무원 노동자로 일하며 노동조합 현장 간부를 해왔다. 당시에는 조합에 가입할 수 있는 조합원이 되었고, 또 간부까지 하며 스스로 놓여있는 문제를 돌파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조합에 가입하여 현장 간부가 되었기에 ‘당사자’가 되었다(얻었다)고 여겼다.
그렇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제대로 된’ 채용 시험에 합격한 ‘정규직 노동자’가 아니었고, 기간이 정해져 있는 ‘임기제’였으며, 민주노총 산하 공무원노조 지부에 속했으니 소속된 단체는 있으나, 같은 처지 동료와 ‘함께 하고 있다’는 마음으로 살아내기가 어려웠다. 외롭고 헛헛했다. 일하는 기간이 정해져 있는 내게 특히 ‘승진’은 당사자가 아닌 이슈(문제)로 여겨졌다. 정규직이 아닌 노동자, ‘기간제’ ‘계약직’ 노동자가 내 이름이자 처지였다.
당사자는 무엇일까. 다양한 고용/계약 관계를 지닌 우리가 ‘같다’고 말하려면 여러 다른 구석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동지’라는 단어가 내게 낯선 이유다. 같은 처지라는 것이 허울에 가깝고,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을 차별하여 ‘더 뛰어나고 우위에 있는’ 집단으로 스스로 규정하여 위치하는 꼴이 위선이라 여겨 역겨웠던 적이 많다.
현재 발 디딘 곳이 ‘지옥’이라는 전제가 서글플 수 있겠으나, 강좌를 함께 하며 강사가 속한 세계를 추체험하며, 그가 전하는 비슷한 분노와 같은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은유 작가가 자주 사용하는 ‘감응한다’는 표현을 좋아하는데, 마치 당사자가 된 것처럼 처지를 이해하려 하고,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솟아났다. 어디에서 왔을까. 스스로 특별하다고 여겨온 아집과 비대한 자기 존중이 그간 나를 지키는 방어기제였고, 이 상태에 놓여있는 스스로가 구조 안에 놓인 존재라는 것을, 누군가의 이야기를 통해 재확인했다고 할까.
삶이 어려운 누군가와 닮은 처지일 수 있겠다는 안도감, 나 혼자만 외롭게 덩그러니 부유하는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위안을 받았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주체임을 자각하고,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명료한 사실도 이번 강의로 알았다.
각기 다른 당사자도 서로 처지를 알려 노력하고 돕는다면 비록 내 문제를 단 한 번에 해결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견고한 벽을 균열 낼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상한 희망, 이는 내가 이번에 재단과 함께한 강의에서 마음에 깊이 심은 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