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소식
[민들레(60호)] 희망악기 지원사업 심사 소회 (민정연 이사)
2023년도 희망악기 지원사업 지원단체 후기 중에서 ('홈리스야학')
민정연 (노회찬재단 이사)
희망악기 지원사업의 심사를 제안받으며 떠오르는 두 가지 음악 교육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엘 시스테마’(베네수엘라 국립 청년 및 유소년 오케스트라 시스템 육성재단 또는 음악 교육 프로그램). 음악 교육 프로그램을 이야기할 때마다 빠짐없이 언급하는 성공 사례입니다.
‘엘 시스테마’는 한 경제학자가 외국인 음악인에 밀려나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자국 음악인들의 자립을 돕고, 빈민가의 방치된 청소년들에게 음악을 가르쳐 범죄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시작한 프로그램입니다. 여러 어려움 속에 젊은 음악인들을 음악 교사이자 행정가로 성장시켰고 이들이 후배들을 모아 가르치며 점점 성장하여 국가적인 차원의 프로그램으로 키워냈다고 합니다. 물론 긍정적인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권과의 유착, 선전의 도구로써 오용하는 문제 등 비판의 지점도 많습니다. 시대에 따라 부침이 있지만 아직도 여전히 ‘엘 시스테마’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 프로그램의 시작이 음악 영재 육성이 아니라 삶의 질의 향상이라는 측면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노회찬 재단의 희망악기 지원사업이 입시교육에 몰두하는 우리 사회에 치여 사는 청소년들에게 작은 숨통이라도 트여주는 계기가 되길 바라기에 ‘엘 시스테마’의 시작이 더욱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또 하나는 직접 목격한 우리 사회의 음악 교육이었습니다. 제가 몸담은 꽃다지에서도 청소년 음악 교육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주로 합창이나 기타를 가르치는 교육이었습니다. 이 중에서 기타를 가르칠 때 매우 곤혹스러운 경험이 있었습니다. 악기를 배우러 모인 청소년은 열 명이 넘는데 기타는 달랑 두 대. 학생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약속 시간의 두 배를 투자해서 지도를 했지만 두 명이 연주할 때 나머지 학생들은 쉬고 있어야 했습니다. 악기를 추가로 살 여유가 없는 상황을 알기에 안타까웠던 순간이었습니다. 그 안타까운 기억이 떠올라 희망악기 지원사업이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라며 심사에 임했습니다.
지원 신청서를 읽으며 청소년 우선, 악기를 지도할 강사가 있어서 제대로 악기를 사용할 수 있는 곳에 지원 우선순위를 두었습니다. 그런데 지원 신청서를 읽으면 읽을수록 성인들이 주축인 곳도 눈길을 거둘 수가 없었습니다. 애초 예상한 시간보다 심사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예상되는 악기 구입 비용을 계산하며 가능한 많은 곳에 악기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심사의 기준을 선회했습니다. 내년에는 재단의 사업 예산이 증가하여 좀 더 좋은 악기를 좀 더 많은 곳에 지원할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말입니다.
한국 사회의 유일무이한 가치 판단의 기준은 ‘돈’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성공을 강요하고 경쟁을 부추깁니다. 그래서 음악 교육도 성공에 초점을 맞춘 영재교육 중심입니다. ‘희망악기 지원사업’이 경쟁사회라는 바위를 깨트리는 계란이 되면 좋겠습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말이 언감생심 이룰 수 없는 것을 빗댄 얘기이지만, 계속해서 하다 보면 바위가 깨지지는 않아도 바위틈에 피어나는 풀꽃의 영양분이 될 수는 있지 않을까요? 부디 지원받은 악기가 잘 쓰여서 삶을 살찌우는 시간을 만들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