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소식
[민들레(61호)] 후원회원 이야기 - 노회찬을 기억하며
▲ (사진절명) 학생들이 그려준 이은경
후원회원 이야기
노회찬을 기억하며
울었다. 삼 일 내내 울었다. 노회찬 의원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헬싱키에서 들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추모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마지막 가는 길에 배웅하지 못한 마음 때문일까, 시골 군수 같은 노회찬이 사라졌다는 그리움 때문일까, 계속 눈물이 났다. 헬싱키에는 캄피 성당이라는 곳이 있다. 목조로 만들어진 건물로 조용히 묵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목조가 주는 따뜻함과 마음 편하게 해주는 공간은 왠지 노회찬과 닮았다. 헬싱키에 있는 동안은 캄피 성당을 방문해 노 의원을 위해 기도했다. 종교를 가지고 있진 않지만 이렇게라도 나름의 추모를 하고 싶었다.
나는 왜 노회찬을 기억하고 지금도 노회찬을 생각하면 그리울까?
지금 생각해 보면 노회찬의 죽음을 슬퍼한 이유는 개인적 만남과 더불어 우리 사회에서 노회찬이라는 정치인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나는 2013년 고등학교에 근무하면서 사회참여 동아리를 운영하고 있었다. ‘우리는 왜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노 의원을 초청했다. (당시 노회찬은 의원직을 상실하고 민주노동당 분당을 겪었던 상황인데도 고등학생들을 만나는 데 흔쾌히 방문해 주셨다.) 노 의원은 세금의 쓰임과 세금을 감시하는 시민단체 활동을 소개했다. 또한 미국의 투표 용지를 통해 시민들의 다양한 정치 참정권에 관해 말했다. 특유의 화법으로 양양 국제 공항이 세금을 잔뜩 쓰고 만들어졌지만 결국 활주로에 비행기가 뜨지 않고 고추 말리는 용도로 사용된다며 ‘값비싼 고추 건조장(?)’이라는 말도 기억에 남는다. 당시 세금을 들여 지방 공항을 만들었는데 정기 노선이 없이 활주로가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문제점이 있었다.
강연에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주로 참여했다. 그날 학생들은 날카롭게 질문했다. 민주노동당의 분당에 관한 질문, 정치인의 역할, 삼성 X 파일에 관한 질문 등이 있었다. 노 의원은 난감할 수 있는 질문에도 진솔하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관심과 참여가 세상을 바꾼다는 말로 특강을 마무리했다.
그날 학교 선생님들과 노 의원은 삼겹살에 술 한잔 기울였다. 선생님 중 한 분은 노 의원이 한산소곡주를 좋아한다는 정보를 듣고 한산소곡주를 준비해 왔다. 삼겹살에 막걸리 한 잔 기분 좋게 취했던 노 의원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더 좋은 음식을 대접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도 있다. 그 후 나는 막걸리를 마실 때면 노 의원이 생각난다.
방송인 김어준이 노 의원이 군수 하면 잘했을 같다고 이야기했다. 삼겹살에 막걸리 마시던 노 의원의 모습에서 그 말이 떠올랐다. 정감 어린 가게 풍경, 삼겹살, 막걸리라는 음식이 주는 감성, 사람들의 말을 귀담는 노회찬의 모습. 시골 군수처럼 구석구석을 다니며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이다. 지금은 만날 수 없지만 막걸리 드시던 노 의원이 그립다.
아이들의 물음에 진솔하게 이야기하셨던 노회찬을 기억한다.
- 이은경 (광수중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