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소식
[민들레(61호)] <노회찬 평전> 독자서평 - 그의 말을 기다리지 말자.
<노회찬 평전> 독자서평
그의 말을 기다리지 말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깜깜한 밤하늘을 가진 영양 수비면 수하계곡 인근에서 6년 전, 노회찬의 멈춤을 들었다. 깜깜했던 산 그림자가 더 깊을 수 없는 어둠으로 내려앉던 날이었다. 내 마음도 온통 깜깜했다.
노회찬의 멈춤이 줬던 아픔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노회찬 정치의 에너지원’이었던 ‘공적 부끄러움’, 즉 <‘투명인간’에게 다가가지 못한 ‘투명정당’의 부끄러움>을 씻어내는데 당은 여전히 부족했다.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라’던 그의 마지막 당부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면서 흔들렸다. 그의 멈춤이 가져온 파장이 크고 깊었기 때문이든, 그 파장을 넘지 못한 우리의 부족함 때문이든, 여하튼 그의 멈춤이 남긴 아픔은 당에 오랫동안 깊게 새겨졌다.
그렇게 새겨진 아픔이 부끄러워 직업운동가의 삶을 멈춘 지 2년, 여전히 씻겨지지 않는 어떤 미안함으로 노회찬 평전을 펼쳤다. 책장을 한장한장 넘기면서 글을 쓴 이광호 선배님께 고마움이 일었다. 600페이지로 입체화하기 쉽지 않은 그를 이만큼이나마 되살린 선배의 수고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를 다시 찬찬히 살펴보고 동시에 나를 돌아볼 수 있게 해줬기 때문이다.
쪽수가 많은 두꺼운 책이 담고 있을 이야기가 얼마나 깊고 넓을지 상상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두꺼운 책은 사람들의 손에 잘 닿지 않는다. 더군다나 잘 아는 노회찬의 이야기, 특히 끝을 다시 확인하고 싶지 않은 그의 이야기를 펼치는 건 수월치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잘 알지 못했던 학창시절 이야기는 좋아했던, 좋아하는 사람의 옛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수월하게 읽혔다. 이게 노회찬이지,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그의 모습이 기분 좋게 다가왔다.
그러다가 그의 이야기에서 나의 지난 시·공간이 나타나고, 진보정당 만들기를 자신과 동일시했던 또 다른 '노회찬들‘이 그 시·공간에서 자연스레 떠오르는 부분부터는 여러 감정이 일어나 읽다가 눈을 감고, 읽다가 눈물을 흘리고, 읽다가 생각하게 되어 읽기를 방해했다. 지난 시간의 회한이 영향을 미쳤겠지만, 지금의 시간이 책 읽기를 더디게 했으리라. 남은 책장이 줄어들수록, 여전히 두려운 결말로 다가서는 건 어려웠다.
이광호 선배는 노회찬을 교과서로 남았다고 표현했다. 글쎄, 그가 산 시간과 앞으로의 시간이 같지 않을 테니. 여전히 진보정당을 통한 세상의 변화를 자신의 소명으로 실천할 의지를 가진 이들은 노회찬을 교과서가 아니라 참고서로 삼으면 어떨까. 지금의 고단한 시간을 인내할 힘을 기르고, 앞으로의 실천을 계획하는데 그의 지난 태도를 참고하면 많은 도움을 얻지 않을까. 교과서를 원칙이라고 한다면, 참고서는 때로는 그 원칙의 핵심을 더 쉽게 안내하고, 원칙의 적용을 더 풍부하게 응용하도록 도와주지 않겠는가.
직업운동가가 아니라도, 휴머니스트 노회찬과 같이 사람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을 실천하고 싶은 시민이라면, 공동체에서 시민 개개인의 행복을 길어오는 사회를 꿈꾸는 시민이라면, 정치가 그 사람에 대한 애정과 공동체의 행복을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생각하는 시민이라면, 노회찬의 삶을 참고서로 삼을 만하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노회찬을 닮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참고서로 제격이겠다 싶다.
그를 참고서로 삼는데 덧붙이는 마지막 말. 이제 노회찬은 말할 수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들으려 한다. 그라면 무슨 말을 할까 물으면서. 다시 확인하건대 이제 그는 말할 수 없다. 말할 수 없는 그에게서, 그의 말을 듣고 싶다면, 그렇다면 그가 말을 빚어냈던 태도를 배워야 한다. 다행히 이 평전은 그의 태도를 잘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 이 평전에 기록된 그의 태도를 나의 몸으로 옮기는 노력을 할 때, 노회찬에게 듣고 싶은 말을 우리 스스로 하게 되지 않을까. 특히 당의 ’직업활동가‘들이 그러하기를, 당의 직업활동가였던 동료로 기대한다. 노회찬평전을 덮으면서 가장 소망하는 기대다. 그의 기대일지도...
장태수
(제4,6,7대 대구광역시 서구의회 구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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