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소식
[민들레(61호)] 6주기 후기 (특별상영회) 노회찬을 만나러 젊음의 거리 홍대에 가다
노회찬을 만나러 젊음의 거리 홍대에 가다
- 김수영 (노회찬재단 회원)
과거의 노회찬 의원님과의 인연이 있어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고, 마석 모란공원을 갈 때면 늘 들러서 왔다. 그 가운데 노회찬평전도 읽고 재단 후원회원도 가입하던 차에 ‘노회찬 6411’특별상영회 문자가 와서 아내와 함께 참여 신청을 하게 되었다.
상영일 날짜를 기억하고 있던 터에 전날 다시 확인해보니 일요일? 어라? 그런데 홍대 앞? 노회찬이란 사람이 아무리 대중의 눈높이와 세대와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젊은이들이 시끌시끌 거리는 그곳에서? 노회찬을 생각한다? 이야 이거 기획한 분이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자리를 과연 메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마음속으로 노원이었으면 아무리 커다란 극장도 채울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큰 헛기침으로 남았다.
당일 아내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함께 홍대 구경하러 간다고 너스레를 떨고 채비를 했다. 일요일도 아침에 잠시 생계를 위한 일을 해야 하는 처지에 서둘러 마치고는 일찍 출발했다. 홍대 앞을 가본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속에 홍대 앞 버스킹을 생각하며 도착해보니 역시 젊은이들의 천국이 아닌가.
아내의 손목을 잡고 50년 전 시골 사람 서울 올라와 빌딩 보느라 헤매는 영화 장면 연출! 그리고는 롯데 시네마를 찾아 기웃기웃하는데 아내와 장소를 찾는 내 목소리를 누군가 들었는지 ‘여기 맞아요!’ 하는 것이다. 60대 정도의 남자분이셨는데, 옷차림? 노회찬을 좋아하는 사람? 이라는 느낌?이 확들었다.
1시간 정도 시간이 남아 사람 구경을 하며 우드포토로 사진 인화도 하고 몇십 년 만에 비비탄 사격으로 군 생활을 향수해 보며 간만의 데이트를 마치고 극장을 찾았다. 이크 ~ 그런데 이런, 예약한 이름이 없네? 분명 신청했는데, 수기로 참가자명을 적고 자리 배석을 받고 자리에 착석, 그래도 이른 시간에 도착한지라 극장의 자리가 다 찰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스크린 옆 출입문으로 들어오는 관객의 면면을 보니 역시 20대의 젊은 층을 쉽게 볼 수는 없었다. 얼추 자리는 다 찬 듯 보이고, 영화는 시작되었다.
봤던 내용들, 읽었던 장면들, 노회찬의 모습들, 그리고 엔딩의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올라간다. 후원자들이리라~ 다른 다큐멘터리영화에서도 이렇게 다 잡질 않을 텐데, 너무 많다~ 너무 길다~ 5분은 넘어 보였다. 그만 하기를 바랬다. 아니 그렇게 많은 사람이 노회찬을 기억하고 지켜 줬다면? 이런 분노가 내심 들끓었다. 그 안에 내가 있었으면서도.
일사천리 쉬는 시간도 없이 자리가 깔리고 세분의 노회찬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자리했다.
노회찬 평전을 쓴 이광호 작가의 평전 이 후의 에피소드나 원고 밖의 것에 대한 궁금증에 시니컬한 답변도, 신장식 의원이 전한 ‘노회찬의 라꾸라꾸 침대’로 당직자들을 가정을 위기에 빠지게 했다는 이야기, 장항준 감독의 ‘마들 연구소’ 강의 이 후 노원에서의 밤을 샌 노회찬과의 영화이야기 등은 관객을 웃음짓게하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결국 6411이 본질이듯 한국사회에서 ‘투명인간’노동자들의 삶에 대한 깊이가 당연한 이야기가 되었다.
국회 운구차가 돌 때 국회 환경미화원들께서 도열에 울먹이는 모습, 뉴스 브리핑 엔딩멘트에서 손석희 아나운서의 5초 남짓한 울음 우는 침묵, 그리고 상영에는 없었지만, 유시민 작가가 빈소에서 외치는 ‘형!’이라는 말에 늘 가슴이 아파온다.
노회찬이 꿈꾸는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만들기’에 나는 어떠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가? ‘길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우리가 남기는 발자국이 길을 만들 것입니다!’ 라는 슬로건에 나는어떤 발자국을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 자문해 본다.
노회찬이 유서에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노회찬의 거칠은 손이 생각나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