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재단 -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재단 소식

[민들레(61호)] 6주기 후기 (추모제2) 노래하는 노회찬의 조각들, 노래모임 6411

재단활동 2024. 08. 05





노래하는 노회찬의 조각들, 노래모임 6411
- 이한솔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연수연구원, 노회찬재단 후원회원)


"서른 해만, 서른 해만 더 한 번 살아볼꺼나.."

세월호가 그랬듯, 재난 같았던 6년 전 그날이 똑똑히 기억난다. 대전에서 박사학위 과정의 고단한 일상을 보내며 연구실 앞 카페에서 아침커피를 기다리던 중에, 눈을 의심케 했던 속보를 접했던 그날이. 며칠을 허망하고 헛헛한 마음으로 보내다가, 이렇게나마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실험 일정을 다 미루고 서울로 올라가 연세대에서 열린 노회찬 의원 추도식에 참가했었다. 아무런 개인적 인연도 없지만, 그 존재만으로 마음이 편안했던, 자연히 희망을 두었던 정치인의 죽음은 일개 시민인 나에게도 너무도 큰 충격이었다. 함께 슬픔을 나누는 자리에서 다소간의 위안은 받았지만 무엇보다 마음을 슬프게 했던 것은, 그와 같은 정치인은 없을 것이고, 그 누구도 노회찬을 대체할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었다. 하릴없는 헛헛한 마음을 달래고자 그의 탁성이 남은 영상이나 녹음을 무엇이건 찾아 들었다. 그 중 가장 많이 들었던 것이 생전 그가 작곡 했다고 알려진 <소연가>였다. 소연가를 들을때마다, "서른 해만, 서른 해만 더 한 번 살아볼꺼나.."라는 가사에서 마음이 멈췄다. 서른 해만, 서른 해만 더 살지. 왜 떠나셨을까. 원망스런 마음으로, 그 때는 그런 마음이었다.

일상을 보내기 바쁜 소시민이지만, 그래도 노회찬을 응원하고 그의 꿈에 기대를 걸었던 시민으로서, 그래도 미약하나마 보탤 수 있는 힘은 보태고자 다짐했었다. 노회찬 재단 설립이 추진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안테나를 세워두었고, 설립 소식이 들리자마자 아주 소액이나마 후원회원이 되는 것으로 사적인 공허함을 달랬다. 코로나 기간 노회찬 정치학교 2기에 등록해 비대면 수업을 듣고 졸업장도 받았다. 그렇게 관심을 이어가던 중에 노회찬 재단 노래모임 광고 문자를 받아보았다. 아름다운 우리의 소리, 정가를 배워보는 시간을 노회찬 재단에서 제공해준다는 반가운 소식. 마침 거처를 대전에서 서울로 옮긴지 얼마 안 되었고 나름 음악과 노래를 좋아하던 터라, 처음 접해보는 국악도 배울 겸, 평소 궁금했던 노회찬 재단에도 가볼 겸, 큰 고민 없이 노래모임 참가신청을 했다.

그렇게 어쩌다 시작했지만 참으로 귀한 시간들을 보냈다. 2022년 봄, 매주 공덕동 재단 사무실에 모여 정가 가수 정마리 선생님께 시조창을 배우고, 선생님의 귀한 노래를 라이브로 듣는 호강을 누리기도 했다. 4주기 추도식에서 소연가를 추모공연으로 준비하기로 결정되고서는, 더 진심을 담아, 같은 마음으로 모인 분들과 함께 소리로 뜻을 모았다. 함께 소리를 모은 분들 중에는 나처럼 노의원과 일면식이 없는 분들도 있었지만 크고 작은 인연으로 함께했던 분들과 동지들이 계셨고, 특히 우리보다 앞서 3주기부터 활동하셨던 분들 중에는 청년 노회찬을 기억하는 노의원의 오랜 친우분들도 계셨다. 참 좋은 분들과 함께 노래에 대해서, 또 노의원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귀중한 시간. 그래서 추모의 마음에 감사한 마음을 더 얹어, 더 큰 소리로 노래했다. 

소연가를 준비하면서, 정마리 선생님께서 노회찬 의원이 고등학교 시절 직접 그렸던 원본 악보를 공유해주셨다. 오선지 한가득 이 노래에 대한 노의원의 애정이 뚝뚝 묻어났다. 음표들 밑에 고등학생 노회찬의 정갈하고 성숙한 글씨체로 노래에 대한 친구들의 피드백을 청하는 간단한 메모가 적혀 있었는데, 어딘가 출품하고자 했었는지, 상금 받으면 10% 주겠다는 예의 익살도 추신으로 남겨져 있었다. 한편 궁금했다. 노의원은 왜 그토록 석남화 이야기에, 소연가 시구에 감명을 받았을까.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가사 한줄이 눈에 들어왔다. “죽어서도 살아서,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 죽어서도 살아서. 죽어서도 살아서. 이상하게도 그 뒤로는 “서른해만 더 한번 살아볼꺼나” 보다, 이 가사가 눈에 마음에 더 들어왔다.

4주기 추도식 후에도, 우리는 <노래모임 6411>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함께하고 있다. 벌써 6주기인 올해에도, 어김없이 모란공원에서 열린 노회찬 의원의 추도식에서 노래모임 6411과 함께 소연가를 불렀다. 비도 오고 시간도 더 많이 흘렀지만, 추모객들의 수는 예년과 다름없었다. 올해로 5기 입학생을 맞이한 정치학교 졸업생들도 동문회처럼 다같이 참여했다. 노회찬 의원과 당적이 다른 야당 인사들도 많이 참여해, 노의원의 꿈을 함께 이어가겠다는 다짐을 하는 모습도 보았다.

이번에는 소연가를 부르면서, “죽어서도 살아서”라는 가사를 계속 생각하게 됐다. 우리 사회가 점점 더 걱정스러운 상황을 향해가고, 지금 노회찬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무의미한 상상을 계속 하게 되는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 노회찬의 조각들을 품은 수많은 사람들이 힘껏 꽃을 피우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확인하는 순간들이 있다. 이렇듯 함께 모여 노회찬을 생각하고 기억하는 수많은 우리들이 있는 한, 못다 이룬 노회찬의 꿈이 이뤄져가는 장면들을 우리는 보게 되리라 믿는다. 그때까지, 함께하는 우리의 노래도, 점점 더 아름다워지리라.
 


공유하기

페이스북에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에 공유하기
트위터
카카오톡에 공유하기
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