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재단 -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재단 소식

[민들레(62호)] <노회찬 평전> 독자서평 - 우리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노회찬이 준비한 선물

재단활동 2024. 09. 13





<노회찬 평전> 독자서평
<노회찬 평전>은 무기력하게 주저앉아 있는 우리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노회찬이 준비한 선물




사랑하는 지선

에딘버러에서 런던으로 돌아가는 열차 안에서 이 글을 쓰고 있소. 에딘버러는 스코틀랜드의 수도인데, 영국이라는 한 나라의 다른 나라라 할까? 역사와 문화가 매우 이질적인 곳이오. 런던으로부터 650km 떨어진 곳이니 부산-평양 거리쯤 될까?

...가난했던 스코틀랜드의 옛날은 찾을 길 없고, 중세 때부터 지배계급이던 귀족들의 성들로 도시가 가득 차 있소. 마치 옛날엔 모두 그런 큰 집에서 살았던 것처럼. 여행이 길어지면서 당신 생각도 깊어가오. 한번 꼭 같이 왔으면 좋겠소. - 96.6.6 런던행 기차 안에서 당신의 찬



영국을 여행 중이던 노회찬이 기차 안에서 그의 아내 지선에게 썼던 편지다. 여행이 깊어지면서 당신 생각이 깊어간다는 고백에 뭉클했다. 여행이 깊어지면 사랑도 깊어진다. 그래서 몸이 어느 곳에 있는 가는 중요하지 않다. 사랑의 거처는 장소가 아니다. 마음이다. 당신을 향한 나의 마음. 그런데 당신과 다시 한번 같이 오고 싶다던 그의 약속은 지켜졌을까?

짐작컨대 그후 노회찬의 행로로 봤을 때 그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못했을 것이다. 미완의 약속. 그런데도 그의 편지를 읽으며 회한보다는 설렘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이제 그는 약속을 지킬 수 없는 세상으로 떠났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여기 이 세상에 남았기 때문일까? 

7월 23일, 노회찬 6주기가 지났다. 벌써 또 그렇게 하염없는 세월이 하염없이 흘러가 버렸다. 장대비 쏟아지는 날 통영 작업실에서 내내 <노회찬 평전>(이광호, 사회평론)을 읽으며 그가 살았던 시대를 따라다녔다.

삼성 X파일 폭로 후 삼성이 지배하는 삼성 공화국에서 혈혈단신 삼성과 7년 전쟁을 치르던 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2004년 노회찬이 국회의원이 되자 그를 아끼던 열린우리당의 한 3선 의원이 조용히 그를 불러서 다 좋은데 미국과 삼성은 건드리지 마라. 한국에서 정치하려면, 정치 수명을 길게 누리고 싶으면 그들을 건드리지 말라고 말했다. 노회찬은 그 의원의 경고 또는 조언이 고마웠을 것이다. 그에게 분명한 목표를 갖게 했으니 말이다. 이후 노회찬은 ‘나는 그 두가지를 건드리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2004년 미국을 건드렸고 이어 2005년 삼성을 건드렸으니,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생각대로 이룬 셈이었다.”

노회찬은 2004년에는 용산미군기지 이전 협정의 불평등함을, 2005년에는 삼성x파일을 폭로했다. 그후 뇌물을 주고받은 자들은 다 무죄가 됐는데 정작 그들의 범죄 사실을 폭로한 노회찬만 유죄를 받으며 국회의원직을 박탈당했다. 

노회찬은 2006년, 전관예우 문제와 유전무죄 무전유죄 실태를 전면 공개하며 “이 나라의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한 것이 아니라 만명한테만 평등하다”고 했다. 그래서 만인 중 하나였던 그 또한 국회의원이었으나 만명한테만 평등한 법 앞에 유죄가 됐다. 역시나 그가 폭로한대로 이 나라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나라임이 명확히 증명됐다.

그후 몇번의 정권교체가 있었지 세상은 여전히 만명한테만 평등한 세상이다. 그래서 만인은 무전유죄인 세상이 지속되고 있다. 더 나가 없는 죄도 뒤집어 씌우면 죄인인 세상이 돼버렸다. 노회찬은 “머리에서 심장으로의 긴 여행”을 제대로 마치지도 못하고 홀연히 버렸다. 

그런 그가 야속하기도 하지만 그는 시대의 소명을 넘치도록 다했다. 미적거리고 있는 것은 우리들이다. 무기력이라는 유령이 이 나라를 배회하고 있다. 대체 언제까지  유령에 사로잡혀 있을 셈인가? 노회찬은 여전히 평등한 세상의 꿈을 져버려서는 안된다고 다독인다. 

그래서 <노회찬 평전>은 무기력하게 주저앉아 있는 우리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노회찬이 준비한 선물이다. 이 선물은 무겁지 않다. 그러니 주저하지 말고 집어들어 보시라. 정치인 평전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다. 흥미롭고 유쾌하고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우리가 몰랐던 노회찬이 거기 있다. 책이 마냥 좋기만 하겠는가? 단점도 있다.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은 한번 손에 잡으면 놓기 어렵다는 점이다.



강제윤
(시인, 섬연구소 소장)

<노회찬 평전> 발간 1주년, "독자 여러분의 투고를 기다립니다"


공유하기

페이스북에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에 공유하기
트위터
카카오톡에 공유하기
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