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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63호)] <함께하는 사람들> 인터뷰 - 이정기 봉제인지회 지회장

재단활동 2024. 11. 01





(가)6411 노회찬의 집
<함께하는 사람들> 인터뷰 - 이정기 봉제인지회 지회장


노회찬재단이 창신동으로 터를 옮깁니다. 봉제골목 바로 옆입니다. 오래되었지만 아담하고 예쁜 집입니다. 용도변경 공사를 마치고 내년 6월경에 입주할 예정입니다. <6411 노회찬의 집>을 어떤 모습으로 만들까요? 여러분의 생각과 바람을 들어보려 합니다. 맨 먼저 이정기 봉제인지회 지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김형탁) 먼저 노회찬 재단 회원들을 위해 자기소개와 봉제인지회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이정기) 안녕하십니까? 저는 화섬식품노조 서울봉제인지회라는 노동조합의 지회장으로 있는 이정기라고 합니다.봉제인지회는 서울 전역에서 일하는 봉제 노동자가 조합원인데요, 10인 미만의 영세한 봉제 사업주들도 본인이 직접 노동을 해야 공장 운영이 되기 때문에 노동자라고 봅니다. 사업이 영세해서 일반 회사처럼 교섭을 통해 지위 향상을 교섭할 수 있는 자본 사업주가 없습니다. 

95% 정도가 4대보험이 안 되고, 급전이 필요할 때 이자가 20%가 넘는 카드 대출을 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비수기에 일이 없을 때 생활상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대출이라든가 자녀 결혼, 부모님 돌아가실 때 상호부조와 법률지원을 하는 공제회를 같이 운영하고 있습니다.봉제하면은 특징이 몇 가지가 있는데 10대에 노동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평생 한 물만 판 여성 노동자의 수가 훨씬 많아 70~80%가 여성 노동자고, 지금 경제 산업 자체가 어려워 신규 유입이 없다 보니 지금도 적으면 50대, 많으면 70대 여성들이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지회는 현업에 있는 분들을 조직하는 단체다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김형탁)봉제라고 하면 전태일 열사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가 없는데요. 예전에 청계피복노동조합이 있었잖아요, 청계피복노동조합이 있었을 때와 지금 봉제인 지회로 활동할 때 어떤 차이가 있나요?

(이정기) 환경이 변했다고 말씀하시는 분은 없어요. 다만 바뀐 것이 있다면 그때는 봉제 종사자들의 평균 연령대가 20대일 정도로 10대 후반에서부터 20대 초중반 노동이 많았었는데, 지금은 적으면 50대 많으면 70대 여성들이 노동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때 청계피복노동조합이라고 하면 현장 반응이 엄청 뜨거웠었어요. 나이도 젊은 데다가 그 시기에 나를 대변해 줄 수 있는 단체가 청계피복노동조합밖에 없었기 때문에요.오히려 더 나빠졌다고 할 수는 있는 게 젊은 시기에는 내 꿈도 있고 뭔가 이루려는 목표가 있었는데, 그때 10대 20대 초반이었던 분들이 지금도 그대로 노동을 하고 계시는 거예요.

그리고 정부나 지자체로부터 보호를 받았다거나 아니면 내 복지에 대해 누구 하나 관심을 가져준 적이 없었고 그냥 내 기술만으로 살아오신 분들이라 환경이 바뀌었다 안 바뀌었다는 의미가 좀 없는 것 같습니다.봉제 노동자들은 딱 그냥 서울에 그냥 섬 같은 어떤 존재들이라 이렇게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김형탁) 서울의 섬 같은 곳에 존재하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가슴에 와닿네요.  6411 노회찬의 집이 창신동 봉제 골목 바로 옆으로 오는데요, 봉제인지회하고도 가까워지게 됩니다. 그 소식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이정기) 저나 저희 조합원들은 전태일 재단은 자주 가서 회의도 하고 또 기념관이라는 것도 있고 해서 지금은 전태일이라는 이름과 전태일 재단은 그렇게 낯선 공간이 아니거든요.노회찬 하면 노동자라는 이미지보다는 정치인에 가깝게 비춰지는데, 정치인 중에서 조명받지 못한 노동자들에 대해 사회적인 관심을 갖게 한 정치인이잖아요. 6411 버스 같은 경우는 되게 감명받았던 게, 그걸 누구 하나 생각은 있었을지언정 노동자들의 삶을 관심 있게 조명을 해봤다거나 도와주는 정치인들도 없었던 것 같고. 와서 사진 찍고 이런 정치인들은 많은데. 그래서 노회찬이라는 정치인은 전태일이라는 노동자와 보는 방향은 되게 같았을 것 같아요.어떤 재단이라고 하면 그 사람의 정신세계를 실현하고 상징적인 성격이 강한 단체잖아요. 노회찬의 이름을 가진 재단이 창신동에 한 곳에 나란히 하게 됐다는 거, 그리고 노동자들의 쉼터 같은 곳이 하나 더 생길 수도 있겠다라는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봉제인은 한 곳에 정착해 있는 노동자들이잖아요. 그런데도 이분들이 오다가다 어디 가서 편하게 가서 차 한잔 마실 공간이 없거든요.물론 전태일 재단도 잘 안 와요. 그런 공간이 없기 때문에. 그런데 내가 다니다가 쉴 수 있는 공간이 생길 수도 있다라는 느낌이 들어요. 그러면서 정치인에 대한 너무 불신들이 많은데, 진짜 나를 위해서 나를 대변해 주는 실천을 했던 정치인을 기리는 재단이 온다고 하면 되게 좋을 것 같습니다.

(김형탁) 재단이 설계를 지금 하고 있는 중인데 좀 편하게 언제든지 와서 좀 쉴 수 있는 그런 공간으로 지금 만들려고 계획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정치인 노회찬으로 많이 기억하는데 노동자를 위해 살아왔던 노회찬을 새롭게 재조명하고 또 그러한 정치가 돼야 한다는 것들을 좀 익힐 수 있는 그런 어떤 계기가 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봉제인지회가 재단하고 여러 가지 사업들이 좀 했었잖아요. 소개도 좀 해 주시고 특히 기억에 남는 사업 있었으면 말씀 부탁드릴게요.

(이정기) 봉제하시는 분들을 대상으로 사업하기가 진짜 되게 힘들어요.이분들의 생활 패턴, 출근 패턴, 일하는 패턴이 너무 불규칙하고 또 장시간 일을 해서 그다음에 어떤 시간을 잡아서 무슨 사업을 한다라는 게 되게 힘들거든요.그렇게 힘든데 정말 나를 누가 이렇게 챙겨주구나 하는 인상적인 사업이 38 장미 나눔입니다. 그게 누구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분들은 뭐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꽃을 주고받는다는 건 가족 간에도 그런 문화가 대게 안 돼 있거든요. 뭐 그런 기념하는 것들이 익숙하지가 않아요. 이분들은 어렸을 때부터 노동을 위해서 9시 10시까지 일을 하다 보니까 그런 작은 여유들이 없이 살았던 분들인데, 장미꽃 받으신 분들이 문자가 되게 많이 옵니다. 어떤 분들은 미싱 위에다 꽂아놓고 일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물론 장미꽃 한송이지만 이렇게 이게 좋은 일인가 이게 이렇게 나를 흥분시키게 하나 이런 느낌을 받았을 때 너무 좋아들 하시더라고요. 3월 8일이 여성의 날이다라는 것도 한 번 인지를 하고.





(김형탁) 그리고 코로나 처음 막 유행할 때 진심의 마스크라고 그것도 만들어서 직접 손으로 만들어서 보냈잖아요. 그것도 참 의미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정기) 봉제하시는 분들이 내가 여유가 없다고 해서 주변의 나눔이라는 걸 많이 못하는 게 아니라 그 여건이 되게 안 만들어지거든요. 지금 저희가 마스크 나누는 데 그 계기는 그때부터 시작한 것 같아요.지금까지 한 3년 4년 정도 이음이라고 하는 재능 기부를 하는데, 한 달에 한 번 일요일 남들 쉬는 시간에 공장 나와서 만들어요. 처음에 마스크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미혼모를 위한 아기 턱받이, 제화나 인쇄같은 노동자와 청소 노동자들을 위한 팔토시, 그다음에 네팔 어린 학생 교복까지 해서 한 4년 정도 계속 이어져 오는 있어요.코로나 때문에 다 힘들었었잖아요. 그때 노회찬 재단의 마스크 나눔 아이디어가 기회가 돼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분들 되게 힘들잖아요. 토요일까지 일하고 쉬어야 되는데. 일요일날 한 10명 12명 이렇게 하면 그냥 금방 만들어요.근데 제가 재능 기부 작업을 할 때 느끼는 점이 하나 있어요. 라디오를 안 틀어요. 이분들이 항상 작업할 때 혼자 작업을 해야 되는데 기계 소음도 되게 심한데 라디오는 더 크게 틀어 놓고 일을 하시거든요. 왜냐면 주변 동료하고 말할 여유가 없는 거예요. 근데 나눔이라는 작업을 하면서 내가 하루 한 10만 원 13만 원 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재능 기부 그건 돈을 받지 않고 일을 하는데 너무 분위기가 좋아요.웃음소리가 끊이질 않고 너무 기분 좋게 작업할 수 있는 어떤 공간이나 장소 아니면 그런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도 이분들한테 좀 힐링일 수도 있겠다라고 해서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내 가치를 높이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런 기회들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는 것은 앞으로 더 발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 재능을 필요로 하는 데 있으면 앞으로 확대해서 좀 해볼 생각은 있습니다.

(김형탁) 재능을 나누고 기부하는 그 활동들이 노회찬의 진심이 마스크가 계기가 됐다는 것이 참 의미가 있네요. 재단이 이제 창신동으로 옮기게 되는데 어떤가요? 노회찬 재단이 이런 사업은 꼭 좀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이정기) 나를 찾을 수 있는 어떤 기회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씀을 많이 하세요.그중 하나가 여건이 되면 건강을 위한 프로그램이나 취미 생활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게 저희가 해보니까 쉽지가 않더라고요.노동자들을 위한 센터 같은 게 있어 요즘은 그나마 좀 나은데 정부가 주도적인 권한을 갖는 사업들은 되게 한계가 있잖아요. 그걸 좀 벗어날 수 있는 사업들, 예를 들어서 저희가 작년에  한 여섯분 정도 종로 상가 가서 옷을 대여해서 입고 사진을 찍어주는 걸 잠깐 했었는데 그분들이 너무 좋아하시는 거예요. 내 평상복이 아니라 한복이든 뭐든 간에 나를 뽐낼 수 있는 옷을 입고. 그래서 우리를 누가 사진을 좀 찍어줄 수 있는 프로그램 같은 것도 한번 생각을 해보는데 좀 쉽지 않아요. 

(김형탁) 알겠습니다. 노회찬 재단에서 회원들이 많으니까 재능 기부할 수 있는 분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되겠네요.  노회찬재단이 옮기면서 벽돌 기금 모금을 시작합니다. 동료 시민들한테 응원하는 한 말씀 좀 부탁드릴게요.






(이정기) 요즘 보면 기부 문화 같은 건 되게 잘 돼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직 현장에 계신 분들이 기부에 대해 인색함이 좀 있어요. 노회찬 재단이라는 공간이 생겨서 우리 같이 필요로 하는 노동자들이 좀 많이 찾을 수 있게끔 했으면 합니다. 노회찬 정신을 좀 더 알릴 수 있는 곳에 벽돌 한 장을 쌓을 수 있게끔 많은 동참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게 제 바람입니다.

(김형탁) 감사합니다.

 

<6411 노회찬의 집> 벽돌기금 모금 특별사이트
https://6411hou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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