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소식
[민들레(64호)] 나는 살아갈 사람과 건축가 사이를 잇는 '번역가'
"저는 살아갈 사람과 건축가 사이를 잇는 '번역가' 입니다."
(가)6411 노회찬의 집 <만드는 사람들> 인터뷰
심한별(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 노회찬의 집 건축팀장)
* 인터뷰 진행 및 정리 - 이강준 노회찬재단 사업기획실장
먼저 노회찬 재단 회원들을 위해 자기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노회찬의 집 건축팀에 팀장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제 역할은 ‘번역가’입니다. 공간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 그 공간을 설계하는 건축가(디자이너) 사이의 의사소통을 돕습니다. 비슷한 프로젝트를 몇 차례 진행한 적이 있고, 학부에서 건축학을, 대학원에서 도시계획학을 전공했습니다.
노회찬 의원과의 개인적인 인연이나, 추억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지난 2005년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으로 국회에 보고하러 가서 노회찬 의원을 처음 만났습니다. 따뜻하게 손으로 악수를 해주시면서 ‘열심히 해봅시다’라고 했던 만면의 미소가 기억납니다. 대학 졸업 후 건설사를 다녔었는데요, 도시의 공공성, 건축과 사회에 대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당시 시민단체 활동을 하다 고 정기용 건축가와 인연을 맺었고 관련 활동을 하다가 민주노동당에 연이 닿았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 노회찬의 집으로 다시 인연이 이어지고 있네요.
노회찬의 집을 만든다는 얘기를 처음 들은 게 언제죠? 그리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무엇이었나요?
2023년 10월 15일입니다. 당시 노회찬재단 이전 후보지 중 하나였던 홍제동 건물에 답사를 가서 자문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어느덧 1년이 넘었네요(웃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왜 홍제동일까’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입지 말이죠. 노회찬 의원이라면 어디로 가실까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조금 실망스런 홍제동 건물을 본 다음에는 솔직히 ‘돈’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산이 있을까 없을까? 현장에서 이야기 나눈 다음에는 노회찬재단의 성격과 활동에 대해 궁금해졌습니다. 제가 노회찬 의원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지만 재단에 대해서는 잘 몰랐거든요. 노회찬의 집이라고 했을 때, 노회찬을 그리워하고 기리는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 노회찬을 알게 될 많은 사람들에게 물리적이고 가시적인 공간을 통해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어서 굉장히 무게감 있게 다가왔습니다.
직간접적으로 다양한 공공 건축 프로젝트에 참여해 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노회찬의 집을 건축하는 데 있어서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노회찬의 집은 사람들이 어떤 기대와 함께 소통하기 위해 모이는 공적 공간입니다. 노회찬의 집 건축물은 그런 의미와 상징을 갖춰져야 하고, 그곳에서 소통이 의미있고 지속되는 힘을 가지려면 건물을 사용하는 분들이 어떻게 서로 만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런 공적 건축물은 소유주나 관리자의 의지만 배타적으로 반영되면 의미도 퇴색되고 살아 있지도 않습니다. 물론 노회찬재단이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하려는지도 기본적으로 중요합니다. 거기에 덧붙여 다음 세대의 수많은 노회찬‘들’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 소통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그 시대적인 변화를 뒷받침하는 유연하고 포용력있는 공간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건물 자체가 스스로를 뽐내어 도드라져 보이기보다는 자연스럽고 편하게 사람들이 머물 수 있어야 합니다. 현재 건물이 그런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것은 큰 장점입니다. 기본적인 기능이 크게 보강되어야 하지만, 공사 이후에도 그런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공간이 되도록 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과제인 것 같습니다.
노회찬의 집 건축팀장으로 매주 정기회의와 수 차례의 워크숍을 해 오셨는데요, 과정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일, 혹은 조금은 아쉬웠던 것이 있으셨는지요?
지금의 창신동 집을 마주한 순간이 제일 인상 깊었습니다. 제가 몇 건의 공공건축 프로젝트에 참여했었는데요, 입지나 건물이 결정되는 이야기들은 일반적인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모두 다 저마다의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 같습니다. 노회찬의 집이 창신동에 자리 잡는다는 건 큰 사건인데요, 이 집을 처음 발견한 것이 계기였고, 그 집을 알게 해준 여러분들이 있었죠. 누구 한 개인의 노력이라기보다는 여러 인연들이 모여 가능했고, 노회찬재단이 이 땅과 집을 만나는 순간이 가장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땅의 모양과 지금의 집이 가진 형태에 노회찬재단이 앞으로 펼칠 이야기가 호응하고 조화하면서 이어 나가겠죠. 특히 주인이 손바꿈을 많이 하지 않고 60년대의 원형을 잘 보존하셨습니다. 또한 정성스럽게 지은 집이었고, 집 주인분이 성품도, 인상도 굉장히 좋으셔서 좋은 기운이 있는 집이라는 생각에 이 집을 만난 것이 가장 인상에 남는 순간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노회찬재단 회원들과 나누고 싶은 것을 인사말을 겸해 부탁드립니다.
직업적인 특성 때문에 저는 오래된 동네와 집들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는데요. 그 공간들을 천천히 살펴보면 예전의 시간들이 켜켜이 묻어 있습니다. 동네 길에도, 건축 재료에도, 구조에도, 시대와 그 집을 사용한 주인의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노회찬의 집이 될 주택은 1961년도에 만들어졌고, 그 후 지금까지 약 70년 동안 크게 바뀌지 않고 그 공간을 사용하던 집주인의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저희가 노회찬의 집으로 새롭게 단장을 하면, 앞으로 100년 동안 많은 분들이 오셔서 새로운 이야기를 더하지 않을까요?. 100년 가는 집이 될 겁니다. 저는 한분한분 다 기록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요, 재단장될 노회찬의 집은 수많은 분들의 노동과 애정의 결과물이 될 것입니다. 벽돌기금에 참여해 주신 분들을 포함해서, 흙을 파고 철거하고 매만지고 예쁘게 갈고, 면을 만들고 재료를 붙이는 노동자 한 분 한 분이 건축의 기록이고, 노회찬의집 그 자체입니다. 내년 여름 노회찬 7주기 즈음에 개관할 노회찬의 집에 오시면 어떤 분들이 어떻게 참여하셨는지 그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고, 향후 그 공간에서 펼칠 활동들에 큰 보람을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많은 참여와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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