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소식
[민들레(64호)] "길동무 여러분, 늘 행복하세요. 사랑합니다." (김형탁 사무총장 이임사)
▲ 2019.11 신임 사무총장 인터뷰 당시
이제 사무총장의 역할을 내려놓습니다
- 김형탁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사무총장의 역할을 내려놓습니다. 새로 구성된 4기 이사회가 재단의 날개를 활짝 펴게 하리라 기대합니다. 처음 사무총장을 시작할 때 실은 느닷없이다가온 제안에 망설였습니다. 노회찬재단의 사무총장이라는 역할이 나에게 걸맞은지 가늠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러했던 시작이 벌써 5년 남짓한 세월로 쌓였습니다. 이제 처음 시작할 때보다는 조금은 홀가분한 심정으로 총장의 역할을 내려놓습니다.
첫 이사회 자리에서 말했던 소감이 떠오릅니다. 5년 뒤 노회찬재단은 무엇으로 남을까? 노회찬의원 추모단체일까, 진보정치인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일까, 아니면 진보적인 씽크탱크, 사회운동단체일까 등등. 제가 너무 질문을 서둘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재단 설립자들로서는 하고 싶은 일이 정말 많았을테니까요.
하지만 저는 새로 태어난 조직이 자신의 사명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즉 고유한 존재 이유를 갖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생명력을 가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았습니다. 저에게 지난 5년은 그 답을 찾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그 답을 우여곡절을 겪은 진보운동의 역사 속에서 찾으려기 보다는 지금 바로 노회찬재단을 후원하는 후원회원들의 마음 속에서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자신의 생계를 꾸리기에도 녹록하지 않을텐데 기꺼이 재단을 후원하시는 회원의 마음은 무엇일까를 떠올리려 했습니다.
저마다 간직하고 싶은 노회찬의 모습이 있을 터입니다. 그중에 하나를 끄집어내어 이것이 노회찬정신이다라고 단정하여 말할 수 없다고 봅니다. 저는 6411 버스 연설에서 노회찬정신을 찾으려 했습니다. 6411 연설이 울림을 주는 이유는 투명인간의 존재를 환기했기 때문이 아니라, 역으로 그들에게 투명정당이나 다름없는 진보정치의 한계를 반성하며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소리 높여 외치기보다 함께 비를 맞는 정치를 만들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노회찬재단은 그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 생각했습니다. 투명한 존재에 색을 더하고 목소리를 키우고, 또 서로 연결하여 더 큰 하나가 되는 길을 여는 것, 그것이 노회찬재단이 해야할 일이라 보았습니다.
그 길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주목하려 했습니다.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길을 잃는 조직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 조직은 지도자의 의지로 꽉찬 듯 보여도 이내 조직의 기반이 허물어집니다. 의지와 고집을 구분하지 못하고 변화에 뒤처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꼭 해야 할 일을 찾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회원 전체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답을 내려놓고 다양한 증거를 거기에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많이 하였습니다.
여전히 저는 답을 찾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답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정답이 아니라 다양한 해답 중에서 하나의 해답을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표현이 그래서 만들어진거라 봅니다. 중요한 건 애초에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하는 일이 앞서지 않으면 선택할 수 있는 가짓수는 몇 개 되지 않을 것이란 점입니다. 다행하게도 노회찬재단은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할 수 있는 수많은 연결고리를 자산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많이 부족했지만 이제 새로운 집행부와 사무총장이 저보다 더 훌륭한 길을 찾을거라 믿습니다. 노회찬재단은 행복하다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하나 귀한 다양한 목소리가 있습니다. 재단에 도움되는 일이라면 기꺼어 마음을 내어주는 소중한 회원들이 있습니다. 그 마음으로 함께 길을 걷는다면 재단은 더 크게 성장할 것입니다.
내년이면 재단 사무실이 공덕동을 떠나 창신동으로 옮깁니다. 이제 사무실이라 부르지 않아도 될 재단의 공간이 만들어집니다. 넓어진 품에 더 많은 소중한 목소리가 자신의 색을 찾았으면 합니다.
더 잘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제 인생에 지난 5년은 어려움 속에 희망은 더욱 빛이 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또다른 가능성을 탐색하는 길을 갑니다. 남은 욕심이 하나 있다면 재단에 담아둔 저의 시간이 자그만 밑거름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길동무 여러분, 늘 행복하세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