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소식
[민들레(71호)] 대학생이 마주한 ‘6411의 목소리’ Part.2
대학생이 마주한 ‘6411의 목소리’ Part.2
노회찬재단과 경희대학교는 지난 2023년부터 3년째 교양강좌 <후마니타스 특강 : 6411의 목소리와 노동존중 사회>를 협력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번 학기에도 매주 ‘6411의 목소리’ 필자를 한 분씩 모셔서 특강을 진행했습니다. 해고노동자, 특성화고 졸업생, 난민 등 존재하지만 목소리를 갖기 어렵기에 잘 드러나지 않는 이들이 강연자로 나서 청년들에게 자신의 삶과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지난달에 이어 이번 달에는 후반부의 강연을 듣고 학생들이 제출한 소감문 중 세 편을 선정하여 소개합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 절망이라면, 나는 그것을 내어줄 생각이 없다
- 김연우(조소과 2학년)
이번 특강은 팔레스타인 난민으로 살아온 강연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중심으로,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살과 그 역사적 맥락을 생생하게 전달해 주었다.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이 강연은 전쟁이 아닌 ‘제노사이드’라는 말의 무게를 실감하게 만들었고, 듣는 내내 우리가 얼마나 먼 거리에서 고통을 소비하고 있었는지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강연자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겪어온 네 차례의 전쟁을 거치며 가족과 고향, 일상 전부를 잃었다고 이야기했다. 할아버지의 집은 대문만 남기고 폭격으로 완전히 무너졌고, 가족 세 명이 전쟁 중 차례로 목숨을 잃었다는 증언은 통계나 기사로는 전달될 수 없는, 너무도 생생한 고통의 실체였다. 이처럼 한 개인의 구체적인 서사는 숫자 너머의 인간 존재를 보여준다. 우리는 종종 수치를 통해 비극을 접하지만, 그 숫자들이 하나하나 사람이라는 사실은 쉽게 잊혀지는 것 같다. 그는 자신이 겪은 고통을 말하면서도 절망에만 머물지 않고, 그 안에서 희망과 연대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려 했다.
특히 현재 가자지구의 상황은 전통적인 의미의 ‘전쟁’이라기보다, 압도적인 무력 앞에서 일방적으로 민간인이 살해되는 ‘학살’, 즉 제노사이드(genocide)로 볼 수밖에 없다. 강연자가 제시한 수치는 충격적이었다. 지금까지 약 6만 5천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희생되었으며, 그 중 1만 7천 명이 어린이였다. 전체 지역의 90% 이상이 폐허가 되었고, 병원, 학교, 대피소 등 민간 시설도 공격 대상이 되었다. 특히, 신생아 700명이 갓 태어나자마자 죽음을 맞았다는 사실은 인도주의의 최후 마저 무너진 현실을 보여준다. 병원에서 치료 중이던 한 기자가 정보 전달을 이유로 드론 공격의 표적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이는 표현의 자유, 생명권 모두가 위협받고 있는 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비극은 단순히 최근의 분쟁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강연자는 이 폭력의 뿌리가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그리고 그 이후 이어진 불평등한 국제 질서 속에 놓여 있다고 설명했다. 1917년의 벨포어 선언으로부터 시작된 영국의 위임통치, 그리고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동시에 발생한 ‘나크바(Nakba, 대재앙)’는 팔레스타인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원래 자신들의 땅에서 살던 이들이 난민이 되었고, 이후 수십 년 간 국경에 갇혀 전기도, 식수도, 약품도 마음대로 공급받지 못하는 비인간적인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이 상황은 단순한 무력 충돌이 아니라, 국제 사회가 방관한 구조적 폭력이며, 무기력한 세계 정치의 실패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감동적이었던 것은 강연자가 처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절망에 머물지 않는 태도였다. 그는 “그들이 원하는 것이 절망이라면, 나는 그것을 내어줄 생각이 없다”는 말을 남기며, 끝끝내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저항의 의지를 드러냈다. 이것은 단순한 감정적 언사에 그치지 않고, 생존 그 자체가 저항이 되는 가자지구의 현실을 보여준다. 삶을 지키는 것, 살아남는 것, 그리고 진실을 말하는 것은 이곳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적 행동이 되는 것이다.
이번 강연을 통해 나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일상의 조건들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체감했다. ‘중립은 결코 정의가 될 수 없다’는 말에 깊이 공감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한 상황에서 중립을 지키는 것은 오히려 폭력을 정당화하는 태도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더 이상 방관자가 되어선 안 되며, 침묵도 폭력이라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특히 예술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고통을 기록하고 전달하는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앞으로도 팔레스타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곳곳의 억압과 폭력에 대해 더 많은 관심과 연대를 가지고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진실은 살아남은 자들의 증언에 의해 전해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는 우리의 자세가 곧 다음 시대의 기억이 될 것이다. 폭력이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는 기억하고 기록하며 행동해야 한다.
▶ 6411의 목소리(살레 알란티시), 나는 4번의 전쟁을 겪은 27살 팔레스타인 난민입니다
노동, 편견, 그리고 나의 작은 깨달음
- 이예린(무역학과 3학년)
나는 성인이 된 해의 1월 1일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아르바이트를 쉬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첫 직장에서 어린 나이라는 이유로 무시를 당한 적도 있었고, 부당한 일을 겪은 적도 있었다. 나도 노동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노동자로서 일을 해왔으면서도, 정작 노동자의 처우나 권리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일이 힘들어도 월급을 받으니 그만큼은 감수해야 하는 거라고 여겼고, 때로는 부당하다고 느끼는 상황도 ‘원래 사회가 그런 것 아니야?’ 하며 넘긴 적도 많았다. 어쩌면 나 자신도 그런 구조 속에서 길들여진 채 살아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번 학기 동안 노동 현장에서 직접 일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수업은 나에게 많은 울림과 깨달음을 주었다. 매 강의마다 “나는 그동안 너무 무심했구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되었고, 노동이라는 말이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과 깊이 연결된 문제라는 것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최예린 님의 「특성화고 출신도 다 같은 노동자입니다」라는 글은 유독 마음에 깊이 남았다. 아마도 내 주변에서 비슷한 경험을 겪었던 사람을 가까이서 지켜본 적이 있었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그저 기사로만 접했더라면 ‘안타깝다’ 정도에서 그쳤겠지만, 내가 아주 가까이서 그 현실을 목격했기에 글을 읽으며 여러 장면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내 첫 아르바이트는 대기업 본사 내부의 본사 직영 매장이었다. 그 매장에서 관리자로 일하던 사람과 많이 친했는데, 그는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한 케이스였다. 현장실습 때부터 정말 별의별 일을 다 시켰다고 했다. 연장근무는 당연하다는 듯이 월급에 포함되어 있었고, 실습생임에도 매장 관리며 신규 직원 교육까지 도맡아 했다. 정작 그는 본인의 업무에 대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기회도 부족했는데, 회사 측에서는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업무를 무리하게 맡겼다. 나는 그 당시 아르바이트로 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내가 아르바이트로 받는 업무 강도보다 훨씬 많은 책임과 기대가 그에게 주어지고 있었던 것을 종종 느꼈다. 실습생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그는 거의 정규직처럼, 아니 때로는 정규직 이상으로 일해야 했다. 그렇게 버티다 결국 몸도 마음도 지쳐 퇴사했고, 지금은 나처럼 아르바이트 형태로 일을 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같은 학교, 같은 전형으로 같은 회사에 입사한 또 다른 지인도 관리자 일을 계속하고 있는데, 고졸이라는 이유로 상사에게 무시당한 일은 비일비재했으며 폭행까지 당했다. 그가 회사를 떠날까 고민하는 모습을 보며, 학력이라는 이유로 누군가가 부당하게 대우받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고 씁쓸했다. 주변에서 그런 사례들을 계속해서 듣고 보다 보니, ‘특성화고 출신’이라는 이름이 여전히 무거운 편견의 시선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래서일까, 이번 글이 더 마음에 깊이 와 닿았다. 저자가 처음 사회에 발을 내디디며 겪은 긴장감과 막막함, 현장에서 느꼈던 차별과 부당함이 너무나 생생하게 다가왔다. ‘사무직’이라 해놓고 실제로는 생산직과 다를 바 없는 업무를 시키고, 엉성하게 작성된 계약서로 기본적인 권리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 그리고 그런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려는 저자의 모습은 내가 주변에서 보아왔던 장면들과 겹쳐졌다.
나는 이번 글을 읽으며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특성화고 학생들을 ‘공부 못 하는 애들’, ‘문제가 있는 애들’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런 편견과는 달리,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하고, 책임감 있게 현장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나는 직접 옆에서 목격해왔다. 출신 학교가 아니라, 개인의 태도와 노력, 그리고 일을 대하는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게 되는 계기였다. 글을 읽으며 마음이 뭉클했던 이유는 어쩌면 ‘특성화고 출신도 다 같은 노동자’라는 그 한 문장이 단순한 외침이 아니라, 그동안 억눌려 왔던 목소리의 해방처럼 느껴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번 수업과 이 글을 통해, 내가 그동안 무심히 넘겼던 노동 현장의 문제들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볼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노동자로서 경험했던 여러 일들도 이제는 다시 돌아보고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는 것도 느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현실을 알게 되고, 특성화고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는 일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나 또한 주변에서 이런 상황을 보게 된다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6411의 목소리(최예린), 특성화고 출신도 다 같은 노동자입니다
‘같이’의 힘을 다시 생각하다 – 행복농장에서 배운 것들
- 정의석(경영학과 2학년)
“정신장애인도 이웃과 서로 돌보며 삽니다.”
처음 이 제목을 보았을 때 나는 ‘정신장애인이 돌본다’는 말이 낯설게 느껴졌다. 돌봄은 보통 ‘건강한 사람’이 ‘아픈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라는 편견이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이 기사를 읽고, 또 강연을 들으며 나는 그 생각이 얼마나 단순하고 오만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행복농장의 이야기는 낯설지만 묘하게 따뜻했다.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그저 도움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농사를 짓고, 주민들과 식사를 나누며, 마을 사람의 삶에 필요한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나 같으면 농사일을 하루라도 할 수 있을까 싶은데, 이곳의 스태프들은 매일 오전 9시 반부터 오후 3시까지 일하며 농장의 중요한 일꾼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들이 그저 '일을 시키는 대상'이 아니라, 실질적인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존중받고 있다는 점이 깊이 와닿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정신장애를 가진 스태프들이 오히려 마을 주민들에게 위로가 되고 있다는 부분이었다. 마을 어르신들이 먼저 이들을 초대하고, 함께 음식을 나누며 외로움을 덜어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금 뭉클했다. 복지라는 건 거창한 정책이 아니라, 이렇게 소박한 식사 한 끼와 웃음 속에서 실현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스태프가 돌아가셨을 때, 마을 주민들이 장례식을 직접 준비하고 제사까지 지냈다는 사실은, 이들이 단지 농장의 일꾼이 아니라 진짜 '이웃'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가 만약 이 마을의 주민이었다면 과연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나도 모르게 경계하거나, 도움은 주되 거리를 두려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조금 부끄러워졌다. 우리는 흔히 정신장애인에 대해 ‘불안하다’, ‘가깝게 지내기 어렵다’는 편견을 갖지만, 사실은 그런 편견이 장애인보다 더 위험하고 차가운 벽이 된다는 걸 이번 기회를 통해 느꼈다.
또 하나 마음에 남은 것은 “누군가 무너지면 그 자리를 다른 사람이 메워준다”는 말이다. 행복농장은 완벽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니다. 불안정하고, 때로는 마음이 무너지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곳은 더 안정적이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도시에서 흔히 듣는 말, ‘각자도생’이라는 단어와는 정반대의 삶이 행복농장에서는 이루어지고 있었다. 경쟁보다는 협력, 효율보다는 배려가 중심이 되는 삶.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진짜 ‘사람 사는 모습’이 아닐까.
사람은 누구나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도 언젠가는 도움을 받는 입장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이웃이 될 수 있어야 하고, 되어야만 한다.
이번 강연을 통해 나 역시 내 안에 자리한 편견을 조금씩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내 주변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나와 다른 모습,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두려워하거나 멀리하기보다,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같이’의 힘이란 결국, 그렇게 서로를 인정하고, 손을 내미는 데서 시작되는 것 같다.
▶6411의 목소리(최정선), 정신장애인도 이웃과 서로 돌보며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