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소식
[민들레(72호)] 이사를 앞두고 대수선 중인 '노회찬의 집' 앞에서 (미리 가보는 노회찬의집)
미리 가보는 <노회찬의집>
창신동-숭인동 동네 한바퀴
이사를 앞두고 대수선 중인 '노회찬의 집' 앞에서
- 임을유 (<음식천국 노회찬> 맛집탐방팀 회원)
'노회찬의 집'이 이사를 온다. 그는 가고 없기 때문에 사실 재단이 이사를 오는 것이다. 가까이에 살고 있는 나는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참 많이 반가웠다. 노회찬의 이름이 든 간판이 제자리를 찾아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종로구 창신동 '봉제공장 이웃들의 곁'이다.
노 의원님의 7주기를 추모하며 재단이 준비한 탐방 프로그램에 신청을 하였다. '노회찬의 집'이 들어올 창신동-숭인동 동네 한바퀴가 주제이다. 탐방은 동묘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중고제품과 오래된 물건들, 헌책이 가득한 골목이었다. 안내를 맡으신 <오래된 서울>의 저자 김창희 재단이사님이 이곳 창신동과 숭인동, 정확히는 동대문을 나서면 있는 한양도성의 바깥 마을에 대한 옛날이야기를 해주셨다.
성 안의 사람들을 먹이기 위해 농사를 짓고 가축을 잡았던 곳. 모르긴 해도 상품(上品)은 도성 안으로 들여보내고, 팔고 남은 하품(下品)만을 가족들과 나누었을 것이다. 하품 중에 가장 좋은 것을 자식의 입에 넣어 주었을 것이고, 정작 농사를 지은 이는 하품의 하품 만을 먹었을 것이다.설명자료에는 동묘 일대를 묘사한 그림도 두어 점 있었는데 아름다운 옛그림이었으며 그 그림 어디에도 농사짓고 가축 잡는 사람들은 묘사되어 있지 않았다. 생략된 인생 그리고 금잡인(禁雜人). 동묘의 정문 앞에는 돌에 한자로 이렇게 새긴 비가 서 있다. 종이에 먹으로 써 붙인 것도 아니고 아예 돌에 새겨 놓은 것이다. '관계없는 자는 함부로 드나드는 것을 금한다'.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비석. 이곳은 옛부터 그런 곳이라고 하셨다. 도성 안의 사람들을 먹이기 위해 일했던 도성 밖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에서는 생략되고 귀한 것에서는 배제되었다. 관계없는 자, 잡인(雜人)으로 정의되어 돌에 새겨졌다. 돌멩이 같은 사람들, 그런 느낌이 들었다.
7월, 노회찬이 저문 한여름의 볕 아래를 걷고 걸어 창신동 '노회찬의 집'으로 갔다. 전태일재단과 이웃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동대문시장의 일을 보는 작고 영세한 봉제공장들이 즐비했고, 골목 벽에는 종이에 손글씨로 쓴 구인광고가 여럿 붙어 있었다. 아줌마 구함, 요즘같은 디지털 세상에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그것을 쓴 사람도 그것을 볼 사람도 스마트폰으로는 어려움이 있어 그랬을까, 아니면 어차피 공장에서 일을 할 사람은 이곳에만 있어 그랬을까. 어떤 상세도 없이 그저 아줌마 구함,이라는 다섯 글자였지만 그 안에는 이주노동자라는 말도 들었고 힘든 일이라는 말도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렇구나, 이곳은 여전히 조선시대 그때처럼 차별받는 낮은 사람들이 도성 안의 높은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곳이구나. 그 일은 힘들고 힘든 만큼의 대가는 받지 못하는 인기 없는 일. 너도 나도 하려고 드는 일에는 구인광고가 없다. 21세기 대한민국 서울이지만 조선시대 한양, 성곽의 바깥 그대로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이치에도 맞지 않고 도리에도 어긋나는 부조리를 막기 위해 노력했고 저항했다. 죽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어찌 이렇게 더딘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담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끝은 없는 것 같다.
구인광고 속 사람들의 세상에 있던 노회찬의 정치가 아직도 여전히, 그리고 그의 정신을 잇는 사람들이 아직도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물이 흐르는 가장 낮은 곳에 바다가 있고 어떤 물도 바다를 거스르지 못하는 것처럼. 세상의 돌멩이 같은 사람들이 스스로 커다란 물이 되어 목소리를 내고, 그 목소리를 끝내 누구도 거스르지 못하는 그런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늦가을 어쩌면 초겨울이라고 한다. '노회찬의 집'의 문이 열려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 집 안으로 걸어 들어가야지. 그렇게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꽃을 들고 오는 이가 있을 것이고 그 꽃을 받는 이도 있을 것이다. 세상에 살아 있던 노회찬의 말하는 목소리가 들리고 그가 연주하던 첼로 소리가 들리면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하자. 그의 술잔을 하나 옆에 놓아두고 함께 마시듯 마시며 이야기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가 꿈꾸던 세상을. 그가 돌보고자 했던 세상 돌멩이들을 위한 일을 도모하고 실행하면서 우리는 그림에서 생략된, 누구도 즐겨 그리지 않는 이들의 삶의 모습을, 누구도 즐겨 부르지 않는 그들의 노래를 노회찬의 집에서 함께 부르고 그릴 수 있을까. 더 이상은 지지 않는, 질 수 없는 커다란 물 바다로서 나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노회찬의 뜻을 '노회찬의 집'에 같이 담아 갈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