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소식
[민들레(78호)] 노회찬재단, 창신동 시대를 열다

🎬 특별영상 : 이번 정류장은 ‘노회찬의집 6411’ 입니다
6년 동안 차곡차곡 쌓여있던 마포에서의 기억들,
나아가 '창신동' 그리고 '빨간 벽돌집' 그리고 '노회찬의집'을
기획했던 사람들이 전하는 이야기. 그 소중한 진심을 영상으로 담았습니다.
노회찬재단,
창신동 시대를 열다
- 조승수 (노회찬재단 이사장)

재단을 창립하다
2018년 7월 26일 저녁. 세브란스장례식장 한구석에 6~7명이 모여, 내일 출상과 장례 이후에 대한 논의를 했다. 아직도 믿기지 않은 그의 부재 속에서도 산자의 도리를 다짐하며 재단 창립으로 의견을 모으고, 장례 후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2018년 가을 창립준비 위원회 발족과 더불어 사무실을 물색하는 가운데 마포역 인근 성우빌딩에 20평 남짓한 공간을 마련했다. 국민들의 조의금을 유족께서 재단 설립 기금으로 기탁해 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향후 사업과 공간 확장을 염두에 두고 최대한 절약할 수 있는 임대 사무실을 찾은 결과였다.


마포(공덕동) 시대
재단은 3대 목표를 설정하였는데, 그중에서 ‘제2, 제3의 노회찬’을 길러내는 정치학교 사업은 교육공간이 필수적이었다. 또한 재단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좁은 사무공간도 운영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었다.
새 공간으로 이전을 추진하면서 월세 지출이 없는 전세일 것, 최소 50평에서 70평 정도의 공간일 것, 그리고 접근성이 좋은 곳이라는 기준을 마련했다. 하지만 전세 임대 자체를 찾지 못해 몇 개월 동안 수십 곳을 둘러보던 중, 최종적으로 공덕역 사무실을 확정했다. 접근성이 매우 좋고 공간의 크기나 쾌적함 등의 이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둘러본 수많은 사무실 중에서 유일하게 전액 전세 임대로 나온 곳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지나고 보니 이 시기는 재단의 사업이 본격화되고 자리를 잡는 중요한 시기였다. 6년 반의 시간 동안 재단은 성숙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공간이 되었다. 최초 건물주도 재단에 우호적인 분이라 전세금을 낮춰 주는 호의도 베풀어 주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건물주가 바뀌고 전세금을 올릴 수밖에 없었고, 무엇보다 공간을 찾아주신 분들의 안타까운 말씀이 적잖게 있었다. 건물의 외형도 지적되었지만, 출입의 번거로움이 단연 압도적이었다. 보안이 뛰어난 점은 일반적인 경우 장점이 되어야 하나, ‘열린 공간’을 내세웠던 재단으로서는 큰 단점으로 작용했다. 특히 행사나 교육이 진행되는 저녁, 주말 시간대가 큰 문제였다. 재단 명의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전에는 감내할 수밖에 없는 문제였지만 결단을 내려야 했다.


운명처럼 창신동 옛집을 만나다
2023년 중순, 이사회에서 재단의 공간 이전 추진을 결정했다. 전세, 매입, 신축의 세 방안 모두 열어 놓고 검토를 하기 시작했다. 은평에서 강서, 성북에서 관악까지 수많은 곳을 둘러보다가 드디어 운명처럼 창신동 옛집을 만났다.
창신동 공간에 대한 반대도 내부에서 만만찮게 제기되었다. 역시 가장 큰 문제는 재정적 부담이었다. 공간 마련을 위한 과도한 채무는 향후 사업비의 압박으로 돌아올 것이 분명했다. 특히 후원금 모금이 과연 우리 계획대로 달성될 것인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이사회에서는 결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수년간의 과정에서 보았듯이 날로 오르기만 하는 서울의 부동산이라는 괴물을 하나라도 우리 것으로 만들기 전에는 공간이 주는 압박과 어려움은 끝나지 않는다는 것, 재정적 압박 역시 적극적인 재단 활동과 후원 확대라는 선순환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독립적인 공간이 필수적이라는 점. 모두가 내린 어려운 결단의 순간이었다.
창신동 옛 주택은 여러 가지 검토거리를 던져주었다. 70여 평의 대지, 활용도가 보이는 지하 공간, 전태일 재단과 불과 10분 거리이면서 아직도 남아있는 봉재 골목의 역사성, 한국 사회에서 가장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이주민 밀집 지역, 그리고 동대문역과 동묘역 지하철 3개 노선의 교차점이라 어느 역에서도 5분 내외라는 놀라운 접근성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장점이었다.
드디어 이사회 보고와 승인, 공간 이전 추진단과 단장 선임을 거쳐 24년 8월 12일 계약금을 치르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공사가 진행되면서 재단 내부에서는 모금에 총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미 늘어지기 시작한 공기에 따라 공사비도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기 때문이었다. 24년 10월부터 시작된 모금은 우리 모두를 놀라게 하였는데, 예상 밖의 열기와 모금이 이루어지고 연말의 후원주점도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다. 그럼에도 11억이 넘는 부채는 이후 부담스러운 숙제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예상 밖의 모금 성과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행정 절차와 강화된 안전규정, 폭염 등으로 공사기간이 계속 연장되면서 공사비 증액도 뒤따랐다. 하지만 추진단의 적극적인 노력, 시공사의 대승적인 결단, 이사회의 승인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노회찬의집 6411’을 마주하며
돌이켜 보면 고마운 분들이 너무 많다. 마포역 시절의 공간부터 공덕역을 거쳐 창신동에 이르기까지 공간을 알아봐 주신 박은영 님, 이웃이면서 많은 협조와 성원을 해주신 초원교회 목사님과 성도님들, 난관이 있을 때마다 대안을 마련해 주신 설계사무소 칸과 강재호 소장님, 전시기획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주신 하 춘 선생, 오랜 인연으로 함께해 준 심한별 박사, 70차에 이르는 회의를 주관하며 치밀한 점검과 과감한 추진력을 보여준 김용신 추진단장, 그러고 무엇보다 기부자의 벽에 영구히 이름이 새겨질 1만 명에 가까운 후원자님들이 없었다면 이 사업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창신동의 공간의 이름은 설문조사를 거쳐 ‘노회찬의집 6411’로 확정되었다. 노회찬의 집은 근엄한 박물관이 아니라 주민과 시민 누구나 편안하게 드나들고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할 방향을 세웠다. 주말 방문자를 위해 토요일도 개방하여 담당자도 두고, 아이들도 스스럼없이 드나드는 그런 공간. 지역사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재단이 될 것이다. 신설하는 동영상 채널을 통해 더 많은 사람, 더 많은 청년들, 도움의 손길을 바라는 분들에게 기댈 수 있는 내어주는 어깨가 되고자 한다.
1월 말 이사와 안착의 과정을 거쳐, 오는 3월 정식 개관을 앞두고 설렘과 긴장이 교차하고 있다. 재단이 설립부터 창신동 노회찬의 집까지 후원자님들의 열정과 애정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이제 다시 설립정신을 되새기며 향후 재단의 운영과 노회찬의 집 활용에 더 많은 애정과 질책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