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소식
소식지(6호) 음식天國 노회찬 (3)영등포 길풍식당에서 죽변항까지
음식天國 노회찬
(3)영등포 길풍식당에서 죽변항까지
노동운동가 노회찬이 국회의원직을 수행한 것은 3번이다. 그러나 4년의 임기를 채운 것은 그가 처음 여의도에 입성한 2004년 제17대 때 뿐이다. 그의 정치 역정이 얼마나 치열했고 또 고단했던가를 새삼 돌이켜보게 된다.
그가 처음 의정 단상에 섰을 때, 그는 비록 비례대표였지만 진보정치의 의회 진출을 상징하는 대표 인물로서 각광을 받았다. 많은 국민들이 낡은 정치를 성토하는 신예 정치인의 직언직설에 묵은 체증을 쓸어내듯 열광했다. 그가 국민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었던 수단은 대중과 밀착된 삶과 언어였다.
"50년 묵은 정치, 이제는 갈아엎어야 합니다. 50년 동안 같은 판에다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 판이 시커메집니다. 판을 갈 때가 이제 왔습니다."
그의 ’판갈이론’은 정치주체의 교체 필요성을 서민적인 언어로 실감나게 표현해 국민들에게 큰 인상을 남기며 촌철살인으로 가득한 노회찬 어록의 첫페이지를 장식했다. 그의 레토릭은 대개 서민의 삶속에서 나왔기에 국민들은 그에게 열광했고, 노회찬도 국민들과 쉽게 소통할 수 있었다. 노회찬의 삼겹살 불판갈이는 소박한 서민식당을 사랑하고 한국적인 미각을 찾아 골목길을 누볐던 식객다운 상상력의 소산이기도 했다.
그렇게 삼겹살 불판을 사이에 두고 소줏잔을 기울이는 일상에 더 익숙했던 그에게 처음 겪는 ‘국회의원의 식사’는 꽤나 낯설었던 것 같다. 첫 국정감사 때 감사원에서 있었던 일인가 보다.
"감사원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한다. 점심식사인데 전복이 등장하고 생선회와 산해진미가 차려졌다. 법사위원장은 국회의원 1인당 1만원 미만으로 책정된 식대를 감사원장에게 전달한다. 형식적으로 보면 감사원 구내식당에서 법사위 돈을 내고 점심을 먹은 셈이다. 그러나 그 음식은 일반 서민들이 평생 한 번쯤 먹어볼까 말까한 고급요리이다.
식당 창문 밖 북악이 회색빛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기름기 낀 기성 여야 의원들보다는 함께 노동운동을 한 젊은 보좌관들과 어울리는게 더 마음이 편했을 것이다.
"오늘은 박00 보좌관 생일이다. 방 식구들이 국회 내 함바집으로 저녁 먹으러 가는데 따라가지 못했다. 신00 동지가 굶지 말라며 파전 한 장을 가져왔다"
노회찬 유고산문집을 뒤적이다가 눈길이 멈춘 곳들이다.
비례대표로 출발해 처음으로 지역구에서 당선했지만 어이없는 법논리로 2012년 제19대 의원직을 2백몇십일만에 잃은 뒤 노회찬은 2016년 20대 총선 때 여의도로 돌아왔다. 그렇게 4년만에 다시 온 여의도는 역시나 또 낯선 변화들이 많았다. 노회찬은 그 여의도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다짐삼아 젊고 참신한 보좌진으로 진용을 꾸린다. 오랜 동지 몇 명만 남기고 나머지는 노동운동이나 기성 여의도 정치와는 거리가 먼 ‘새 피’들로 의원실을 채운다. 그렇게 모인 노회찬 사단의 11명 가운데 20대가 4명이나 됐다. 여성도 4명이었다. 의원회관에서 “정의당 노회찬 의원 방이 가장 젊고 활기차다”는 부러움 섞인 관찰기가 속출했다.
노회찬은 그렇게 초선부터 3선까지 젊은이들과 일상 속에서 어울리기를 좋아했다. 그들 중에는 선거캠프 자원봉사자, 정의당 청년당원 출신 등 인간 노회찬을 추종해 모인 젊은이가 있는가 하면, 교수님의 추천으로 ’취직’을 한 친구도 있다. 로스쿨을 막 마치고 공익변론과 인권분야에 관심이 많아 노 의원 방을 노크한 젊은 변호사도 있다. 그와 함께 한 2년의 시간, 노회찬이라는 사람을 알기엔 짧은 시간이었으되, 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지금은 동료의원실로, 다른 직업으로 뿔뿔히 흩어진 ‘노회찬의 아이들’이 지난 10월24일 밤 영등포 양평동4거리에 다시 모였다. 길풍식당. 그가 누구든 노의원실의 사람들에겐 잊을 수 없는 장소다. “여의도가 갑갑하고, 정치가 답답할 때 수행원 한, 둘하고만 왔어요. 차를 댈데가 없어 빙빙 돌때도 많았지만, 마음 편해 하시던 모습이 선하네요.”
여럿이서 혹은 단둘이서 노회찬과 함께 한 이들 중 김성용(여영국 의원실), 장연경(김성환 의원실), 하동원(가업승계 수업중), 로스쿨을 갓 졸업하고 합류했던 법률보좌진의 신유정(법무부 인권정책과), 신건호(진선미의원실) 변호사 등이 노회찬재단의 박규님, 박창규 실장 등과 자리를 함께 했다.
정치가이기 이전에 문화인, 사상가의 풍모를 간직한 노회찬에게 여의도 정치는 벗어나고 싶을 때가 많은 노회한 자들의 정글이었다. 유난히 맛이 없기로 정평이 나 있다는 국회식당도 벗어나고 싶은 곳 중의 하나였다. "국회식당 밥맛은 하늘이 국회의원에게 내리는 벌이야."
입맛 떨어지는 여의도 일상이 애먼 구내식당 밥맛까지 망치고 있었던 지도 모른다. 그래서 종종 여의도 밖으로 나오지만 그리 멀리 가지도 못하고 들리는 곳 중의 하나가 이곳 길풍식당이었다고 한다.
양평동 길풍식당은 소꼬리곰탕과 찜으로 유명한 맛집이다. 2대에 걸쳐 40년째이다. 건물 1층 안쪽에 자리한 식당으로 들어서면 유명인사들의 즐비한 방문사인 속에 노회찬의 이름도 보인다. "맛 최고입니다" 소꼬리 맛은 미식가 노회찬의 추천을 믿는 것으로 소개를 생략한다. 꼬리뼈에서 살점을 발라 찍어먹는 간장 맛이 일품이다. 간장에 비빈 탱탱한 식감의 중면을 후루룩 먹는 맛도 그만이다. 과연 노회찬의 날카로운 혀를 감당할만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먹다보니 소꼬리를 요리해 먹는 민족이 세계에서 몇이나 될까 하는 궁금증이 올라온다. 뿔과 발굽을 빼고 소의 거의 모든 부분을 요리해 먹는 한국인이 꼬리를 그냥 둘 리 없었을 터. 파리나 흡혈충을 쫓기 위해 채찍처럼 힘차게 등짝을 때리는 소꼬리를 보며 입맛 도는 보양식을 떠올렸을 법하다.
하지만 먹거리가 많은 시대에 성장한 젊은 세대에게는 꼬리에서 살을 발라먹는게 쫀쫀해보이거나, 혹은 신기한 내공이 요구되는 음식으로 비치기도 하는 것 같다.
“노의원님의 높은 공력을 느낄 때가 두 번 있었습니다. 한번은 예상 질의서도 만들어드리지 못했는데 즉석에서 정곡을 찌르는 질의를 할 때. 그리고 소꼬리에서 고기를 부스러기 한 점 남기지 않고 기가막히게 발라먹을 때."
이들 노회찬의원실의 젊은이들은 대부분 첫 직장이었다고 한다. 그런 그들에게 노회찬은 자상한 아버지같기도 했다. “이것도 먹어보라고 하고, 저것도 먹어보라시며 여러 가지 음식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시고 먹는 법도 가르쳐주시곤 했습니다.”
길풍식당에서 노회찬이 소꼬리를 먹는 원칙 중에 첫손에 꼽히는 것이 절대 소금을 쓰지 않는다는 것. “소금을 찍어먹거나 뿌리면 맛이 가리게 된다고해요. 건강에도 나쁘고. 노의원님은 종종 우리에게 3가지 흰 것을 멀리하라고 하셨죠. 쌀밥, 설탕, 그리고 소금.”
노회찬이 특히 면음식을 좋아했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 길풍식당 특유의 간장에 중면을 비벼먹는 맛도 그가 이 식당을 즐겨찾은 이유중의 하나였을지 모르겠다.
“국수집을 참 많이 데려가 주셨습니다. 이탈리아 파스타도 무척 좋아했고요. 당신이 파스타를 잘 만든다고 한껏 자랑하시고 조만간 곧 맛을 보여주겠다고 약속도 하셨는데...”
노회찬표 파스타를 끝내 먹어보지 못한 젊은이의 시선이 허공을 향해 부옇게 흔들린다.
길풍식당을 나선 일행이 택시를 타고 이동한 2차는 영등포경찰서 부근 먹자골목 안의 해물포차집 ‘죽변항’. 경북 울진이 고향인 주인부부가 10여년째 죽변항에서 실어온 해물을 내놓는다. 주인 아주머니가 "의원님은 한 5~6년전부터 오셨어요"라고 알려주며 그가 즐겨 앉았다는 모퉁이 자리를 가리킨다.
이 집은 가까운 이들과 ‘짱박혀’ 술잔을 기울이기에 알맞은 지하를 가지고 있다. 장사가 잘 돼 지하로도 가게를 넓히고 나서 노회찬도 오기시작한 듯 하다고 하니 그 역시 죽변항의 신선한 해물만큼이나 이 호젓한 지하공간을 편하게 여겼던 듯 하다.
그가 즐긴 메뉴는 돌멍게. 겨울철에는 도치알탕도 좋아했다. 계절에 관계없이 마무리 식사로 해물전골라면을 즐겼다. 이미 어느 정도 술이 들어간 우리 일행도 그 순서를 따라 소줏잔을 기울였다. 남녀 모두 젊은이답게 잘들 마신다. 빈 멍게 껍질에 소주를 채우고 빈 소줏잔 위에 잠시 놓아두었다가 마시면 바다향기가 솔솔 올라온다고 노회찬이 즐겨 권했다고 한다. 그 술맛만큼이나 그가 그립다고 젊은이들이 멍게 술잔을 훌쩍훌쩍 들이킨다. 바다향기 너머 한 사람의 향기가 흐르는 영등포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