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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소식

민들레(9호) "장미꽃 향기가 그리웠던 까닭은..." - 진선미 국회의원

재단활동 2020. 01. 30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노회찬. 그 이름을 떠올리면 코 끝에서 장미향기가 느껴진다. 

봄 기운이 가득 퍼지는 3월이 되면 노회찬 의원님은 매년 빠짐없이 장미꽃 한 송이를 내게 보내주셨다.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특별 선물이었다. 3월이 시작되면 나는 늘 장미꽃을 기다렸고, 장미꽃은 어김없이 배달되었다.

노회찬 의원님께서 매년 빠뜨리지 않고 기념해 준 여성의 날은 백여년 전 미국에서 시작된 기념일이다. 그 당시 여성들은 하루 14시간의 살인적인 노동을 하면서 제대로 된 임금을 받지 못했다. 그렇지만 여성들에게는 임금인상을 주장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할 자유가 없었고, 국가 제도를 바꿀 수 있는 선거권도 주어지지 않았다.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죽어야 했다. 오랫동안 참고 견뎠으나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되었을 때 수 만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뉴욕 거리에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고 외치면서 거리를 행진했다. 

노회찬 의원님이 보내주신 장미꽃 한 송이는 승리의 상징이었다. 백여년 전 여성 노동자들은 참정권에 대한 상징으로 장미를 요구했고, 마침내 장미를 손에 쥘 수 있었다. 노회찬 의원님은 장미와 함께 동봉한 편지에 ‘성불평등 현실에 대한 반성의 마음’과 ‘성평등을 향한 힘찬 염원’을 적어 보내주셨다. 노회찬 의원님은 뛰어난 젠더 감수성을 가지신 분이었고, 현실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미래에 대한 굳건한 비젼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다. 노회찬 의원님이 국회에 계시다는 것 자체만으로 나는 평등한 사회가 펼쳐질 우리나라의 내일을 낙관할 수 있었다. 

작년 3월에도 나는 매년 그러했듯이 장미꽃 한 송이가 배달되기를 기다렸고, 기다렸던 장미꽃 한 송이를 받았다. 그러나 보낸 이는 노회찬 의원님이 아닌 노회찬 재단이었다. 이제 더 이상 노회찬 의원님의 이름으로는 장미꽃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달았을 때, 확고하게 보이던 내일을 향한 길이 끊어진 것처럼 보였다. 정치가 뭔지, 왜 정치가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외면하고 싶었던 정치의 낯선 민낯이 황당했고 고통스러웠다. 

노회찬재단 후원회에 가입하게 된 것은 장미꽃 향기가 그리워서였다. 부드럽고도 따뜻한 그 향기는 노회찬이라는 이름을 떠올릴 때마다 내 코 끝에 다시 맴돌았고, 노회찬 의원님의 부드럽고도 따뜻한 목소리가 내 귓가에 어른거리게 했다. 십 여년 전 호주제 위헌 소송을 준비하며 만나 뵈었던 노회찬 의원님, 내가 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어오자 불러내어 밥을 사주시며 격려해주시던 노회찬 의원님, 만나 뵐 때마다 잘했다고 그리고 잘하고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던, 다정다감하셨던 그 분. 

노회찬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가슴에 새기고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일터에 선다. 정치의 민낯은 노회찬 의원님께 비정하였지만, 노회찬 의원님이 꿈꾼 것은 따뜻한 정치였다는 것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정치의 힘을 노회찬 의원님은 아끼고 사랑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리고 노회찬 의원님이 꿈꾸셨던 따뜻한 정치, 모두에게 평등한 세상, 그 날의 꿈을, 내 가슴 속에 새겨진 노회찬 의원님과 함께 꿈 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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