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재단 -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재단 소식

민들레(10호) 문화인 노회찬 - 거인의 어깨 위에 (노회찬재단 로고 디자이너)

재단활동 2020. 02. 28





항상 거인의 어깨 위에
- 축구전문디자이너 장부다 (노회찬재단 로고 디자이너)


2018년 말,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안타깝게 우리 곁을 떠난 고 노회찬님의 뜻을 이어가기 위한 재단이 출범하려 하는데, 그 로고를 만들어줄 수 있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잠시도 뜸을 들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부족한 실력으로 누가 끼치지 않는다면, 당연히 해야지요.” 그 순간 그냥 그분의 환한 웃음이 떠올랐습니다. 

사실 저는 노회찬 의원님과 딱 한 번 만난 일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적절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날 한 번의 만남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만큼 인상적인 것이었습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노회찬’이란 이름은 ‘상식과 진보’를 지지하는 이들에게 친근한 것이기도 했지만, TV와 뉴스지면에서 보는 그의 모습이 실제 현실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기에 더욱 가깝게 느껴져서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진보신당 시절 당 비서실에 있던 대학 후배의 요청으로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세 사람이 점심을 같이 하게 되었는데, 아마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의 상징색을 무엇으로 하는 게 좋겠냐는 의견을 듣고 싶다는 것이 모임의 주제였습니다. 제가 가진 축구전문디자이너라는 입장에서 볼 때 붉은색이 갖는 의미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어 하셨습니다. 지금이야 붉은색을 자칭 보수당이라는 새누리당이 사용해서 의미가 퇴색했지만, 당시만 해도 ‘레드컴플렉스’라는 단어가 실재했을 때였으니까요.

저는 당시 축구 대표팀이 사용하는 명칭처럼 ‘핫레드(Hot Red)’라는 용어를 쓰면 붉은색을 못쓸 이유가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붉은색은 언제나 좌파의 상징색이었고, 젊은 세대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으며, 오히려 당당히 쓰는 게 좋다는 것이었죠. 의원님은 조용히 고개를 끄떡이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또 당시 2009년 11월 국내에 지각 런칭했던 ‘아이폰(당시 3GS)’ 이야기도 있었죠. 삼성 X파일 폭로 사건으로 자신은 ‘삼성’ 폰만큼은 쓸 수 없는데, 다른 한편으로 당시 대세로 등장한 스마트폰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셨나 봅니다. 엄연히 아이폰은 미국 제품인데, 진보정당  정치인이 ‘아이폰’을 사용해도 괜찮을지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당연히 괜찮다고 답변하며, 그 이유로 당시 국내에서 통신사가 일방적으로 개발자(지금 용어로 하자면 ‘콘텐츠 노동자’란 표현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로부터 갈취하다시피 한 앱 유통 수익 배분이 2008년 런칭한 ‘애플앱스토어’에서는 개발자 중심(개발자 70: 앱스토어측 30)으로 생태계가 바뀌었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미국 브랜드지만, 적어도 노동자 편에서는 애플이 더 나은 생태계를 조성해 주었으므로 진보적인 것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금이야 당연한 배분 비율로 생각하지만, 그전까지는 정 반대로 유통사(통신사) 위주로 수익이 배분되어왔거든요. 

이런저런 이야기와 반주로 점심을 마친 노회찬의원님은 다음번엔 드럼통집에서 소주 한 잔 걸치자며 활짝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드셨습니다. 잠깐 뵈었을 뿐이지만 10년을 알고지낸 형 같은 미소였던 게 기억납니다. 지금도 생생히... 


저의 사적인 인연은 여기까지입니다만, 방송에서 뉴스에서 그의 모습은 항상 곁에 있는 지인 같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1년에 한 번을 만나도, 몇 해 만에 만나도 늘 어제 만난 것 같은 그런 느낌 같았지요. 2018년 갑작스런 서거는 그래서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 일입니다.

노회찬님은 스스로를 ‘자유인, 문화인, 평화인’이라고 하셨죠. 음반 수집이 취미일 정도로 음악을 무척 좋아하는 저는 그 세 단어가 무척 와닿았습니다. ‘모든 국민이 악기 하나쯤 연주할 수 있는 세상’이란 말씀도 무척 좋았구요. 50줄에 뒤늦게 본 제 아들에게도 꼭 악기를 가르칠 생각입니다. 

그는 왜 이리 친근하게 느껴질까요? 진보라고 하면 어려운 이론서나 용어를 남발해서 스스로를 격식에 가두는 경우도 많이 보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곁의 이웃들이 쓰는 언어 그대로 어려운 문제들을 술술 풀어 이야기하셨죠. 그러면서도 멀리 보고 꿰뚫는 혜안으로 유명했습니다.

아이작 뉴턴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죠. ‘내가 멀리 내다볼 수 있었던 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 덕분이다’. 혹자에게는 이 거인이 명망가이거나, 유력 인사, 권력자 또는 그들이 남긴 역사로 해석되겠지만, 노회찬님에게는 그 거인이 ‘6411번을 타는 우리 이웃들’이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거인을 의미하는 인류의 역사란 것이, ‘수많은 이름 없는 이웃들이 서로를 위해 흘린 피와 땀, 그리고 눈물로 만들어져 온 것’이니까요. 그는 멀리 보는 혜안을 가졌지만, 언제나 따뜻한 우리 이웃이자 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재단 로고를 만들 때도 묵직하고 든든한 구조물과 그 틈 사이로 스며드는 빛과 같은 따뜻한 이웃 간의 정과 유머를 생각하며 만들었습니다. 그의 미소를 기억하면서요.

새봄이 머지않은 이때, 
‘코로나19 사태’로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 던졌을 
그의 촌철살인 한 마디가 그리워집니다. 

2020. 2. 27

축구전문디자이너 장부다




노회찬재단 로고 제작의도 및 취지

노회찬재단의 로고는 故 노회찬 의원의 소탈하고 정결한 성품을 멋부리지 않은 직선으로 담담히 디자인하였습니다.

특히 우리 사회의 소외된 노동자를 상징하는 '6411 버스' 심볼과 함께 재단의 슬로건인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를 더하여, 고인의 뜻을 이어가고자 하는 의미를 더했습니다.

햇빛처럼 밝은 에너지가 넘치는 퍼머넌트 옐로 딥(Permanent Yellow Deep) 컬러는 고인 특유의 밝고 에너지와 희망이 넘치는 화법, 그리고 영원히 바래지 않을 것만 같은 고인의 담대하고 진보적인 철학과 일관된 행보를 상징하는 색상으로 고인의 뜻을 기리고자 하는 재단의 의지를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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