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재단 -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재단 소식

민들레(12호) 음식天國 노회찬 <9>마포 현래장

재단활동 2020. 04. 29

- 이인우(한겨레 기자)


1. 
마포대교 북단 불교방송 지하의 현래장(賢來莊)은 마포 일대에서 손꼽히는 중화요리집이다. 감자(요즘은 단호박)가 들어간 옛날식 수타짜장은 수십년 이상 이 집의 명성을 드높인 메뉴였다. 300석 규모의 대형 음식점으로 크고작은 룸이 많아 각종 모임에 최적화되어 있다. 여의도에서 다리만 건너면 되고, 마포로터리쪽으론 옛 야당 당사도 줄곧 있어서인지 이런 저런 정치인들의 "조용한" 회합장소로 즐겨 애용됐다. 



노회찬은 1990년대 후반 어느 무렵부터 현래장의 주요 식객이 되었다. 음식에 예민한 조직운동가답게 그는 비밀스런 만남의 장소에도 맛을 중시했다. 현래장의 수타짜장도 아마 그래서 선택되었을 것이다. 지인들에 따르면, 노회찬은 중요한 정치적 결단이나 진로 선택을 할 때면 참모진이나 ‘자문단’과 현래장에 모여 숙의를 거듭했다고 한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노회찬이 지역 선정을 포함해 선거 전략을 고심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현래장은 노회찬의 정치역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의 하나였다.






2.
아홉번째 음식천국 노회찬이 현래장을 찾은 것은 4월9일. 총선을 6일 앞둔 저녁이었다. 각자의 일정을  조정하느라 잡은 날짜이지 특별히 선거를 의식한 택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테이블에 둘러앉은 면면이 노회찬의 자문그룹의 일원이었고 시점도 총선을 6일 앞둔 때인지라 선거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자리가 되고 말았다. 지금은 선거결과를 알고 있지만, 4월9일 시점에서는 대체로 민주당의 낙승을 점치면서 정의당의 안타까운 처지를 동병상련하고 있었다. 

이날 현래장에서 노회찬을 추억한 사람들은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정치인 노회찬을 정치적으로 자문하고 보좌해온 사람들이다. 대부분 현래장에 자주 왔던 분들이라 식당 분위기나 음식에 모두 익숙했다. 김윤철 교수(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박갑주 변호사(법무법인 지향),  박창규 보좌관(전 노회찬재단 사업기획실장), 이종석(공인회계사,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소득주도성장특위 기획협력팀장) 조현연 박사(노회찬재단 특임이사) 등 참석자들은  2004년 17대국회부터 본격적으로 노회찬을 지원해왔다. 18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노원구 상계동에 ‘노회찬마들연구소’를 설립할 때도 이들은 함께 했다. 그리고 2018년 7월 그가 홀연히 떠난 뒤 재단 설립을 준비하는 실행위원으로 애쓴 사람들이기도 했다. 이 자리를 마련한 음식천국 노회찬의 코디네이터 박규님(노회찬재단 운영실장)도 이 전 과정을 함께 한 사람이다. 



(일러스트 김경래)


민주노동당 시절 노회찬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로 “노회찬이 비례대표로 처음 의정에 참여한 2004년,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때를 비롯해 여러 차례의 선거 국면마다 모였던 것 같다. 언젠가부터 장소도 현래장으로 정해졌고. 생각해보면 그때마다 늘 중대한 기로였고, 전환점이었다.”

"사실 논의는 우리가 하고 결정은 그 양반이 하는데, 대부분 삑사리가 났다. 우리한테는 실컷 고민시키고 정작 결론은 반대로 하기 일쑤였던 거지. 어쩌면 자문이란 게 현실적인 판단에 기울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반면교사로 삼아 자신의 이상과 원칙을 확인했던 게 아닐까 싶다."

"어쩌면 자문효과는 본래부터 기대하지 않았을 거다. 기로에 서서 동지들의 얼굴을 보며 의지를 다지고 힘을 얻는 효과가 더 컸지 않았을까."


3. 
현래장은 본래 불교방송 옆의 한 빌딩에 있었다. 1950년대 처음 문을 열었다고 하고, 현재의 주인집이 1980년대 인수했다. 옥호는 본래 연래장(燕來莊)이었다고 한다. 제비가 날아드는 집이니, 강남갔다가 어김없이 되돌아오는 제비같은 단골손님, 흥부집에 박씨를 물고온 제비같은 복덩이 손님을 연상하면 결코 나쁜 이름이 아니다. 그런데 이 연래장을 인수한 새 주인은 글자 한자를 바꿔 현래장으로 간판을 바꿔달았다.  제비가 아니란 현자들이 오는 집이 되었다. 이 개명은 어쩌면 강 건너편에 빤히 보이는 국회의 존재가 작용한 것일 지도 모르는데, 만약 그렇다면 여의도 선량들이 모두 현자는 아닐지라도  장사를 하는 입장에서는 매우 그럴듯한 착상이 아닐 수 없다. 이 개명이 음식점의 기운을 틔운 것일까, 현래장은 날로 성업하기 시작했고, 10여년 전 불교방송 지하로 옮겨 3백석 규모의 대형 식당을 차린 뒤에도 여전히 성업 중이다. 장사수완이 남달랐던 창업주가 8년전에 사망하고 지금은 부인 윤승자씨와 아들 주세웅씨가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예약노트가 텅 비어 있는 게 안타깝다.








4.
현자들같은 노회찬과 그의 사람들이 현래장에 남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의 하나는 2016년 20대 총선과 관련된 것이었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주로 홍대앞 <토즈>에서 모임을 가졌고, 모임을 마친 뒤 저녁 식사를 하면서 못다 한 이야기를 이어가는 데 현래장은 나름 안성맞춤이었다. 노회찬의 당선을 다짐하면서 12월 말 송년회 겸 단합대회를 연 곳도 현래장이었다. 

당시 노원병은 노회찬이 삼성엑스파일 사건으로 의원직을 잃은 뒤 안철수가 줏어서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상한 바람을 타고 안철수가 대선출마를 저울질하면서 불출마설이 불거질 때였다. 창원 성산과 광주 광산 등에선 노회찬 추대설도 나오고 있었다.

"우리 자문그룹의 생각은 노원병 탈환에 무게가 실리고 있었다. 안철수와 붙는 것이 리스크는 크지만, 대형매치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을수록 과거의 노무현처럼 당락을 떠나 노회찬의 정치적 몸집을 키울 수 있고, 당의 지지도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다가 2016년 1월 30일 정의당 전국위원회에서 여영국 경남도당위원장을 중심으로 노회찬 창원 추대론이 강력하게 제기됐고 당 지도부가 이를 수용해 노회찬에게 제안, 노회찬이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노원에서 창원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은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한 선택이었다. 그의 창원 출마와 당선은 그 자신은 물론 정의당에게 큰 정치적 승리를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당시 내가 정리한 현래장 모임 자료를 나중에 다시 보니, 노원과 창원을 놓고 꽤나 고심했던 것 같다.  둘다(노원과 창원) 승산이 없을 때와 둘 다 있을 때, 한쪽은 있고 한쪽은 없을 때 등 경우의 수를 따져본 흔적이 남아 있었다. 메모의 결론은 둘다 승산이 있거나, 둘 다 승산이 없을 경우는 노원이었다. 창원은, '노원은 승산이 없고 창원은 승산이 있는 경우'의 선택지였다. 많은 걸 따져본 뒤 노원으로 정한 것인데, 갑자기 창원으로 뒤바뀌니까 깜짝 놀랄 수밖에."

"나는 사실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노회찬은 늘 당 차원에서 들어오는 요구나 제안을 거부하지 못했다. 당의 결정을 놓고  자신의 이해를 저울질하는 스타일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실제로 체감한 창원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민주노총 후보단일화 경선은 불과 몇백표의 근소한 차이였고, 민주당과의 후보단일화도 어려운 고비를 넘어야 했다. 정작 본선이 쉬운 싸움이었을 정도로.

"경선과 후보단일화에는 지역의 마당발이었던 모씨가 많은 기여를 했다. 조직사업이 비교적 잘 되어있었던 그와의 결합이 큰 도움이 된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 21대 선거에 그 사람이 다른 당으로 출마했다. 후보단일화가 안된 탓일 것이다. 단일화 실패면 어느 쪽(정의당과 민주당)도 어렵다고 생각하니 착잡하기 그지 없었다."

"당시 창원선거는 처음부터 끝까지 노회찬 이름 석자로 치른 선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정은 험난했지만 그만큼 보람도 백배였던 선거였다. 노회찬의 이름으로 창원을 지켜낸 것은 정의당으로서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 사건이었다." (노회찬이 남긴 창원 성산 선거구는 보궐선거에서 여영국 의원에 인계되었으나 4.15총선에서는 미래통합당으로 넘어갔다.)

2015년 심상정 대표와 겨룬 당대표 경선도 잊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1차 표결에서 여유있게 앞서있었기에 결선투표 결과를 낙관하고 있었는데 그만 결과가 뒤집어진 것이다. 심상정 대표의 극적인 역전승이었다. 바로 긴급모임이 소집되었다. 장소는 현래장. 

"모인 사람들이 한 시간 이상 아무 말이 없었을 정도로 큰 충격이었다. 단순히 노회찬이 당내선거에서 졌다는 사실보다 ‘이상한 표쏠림’으로 예상치 못한 결선투표 결과를 가져온 당내부 구조가 심각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뼈아픈 역전패였지만, 노회찬이란 캐릭터를 생각하면 결코 일어나지 못할 일도 아니었다.
"노회찬은 자기 문제로는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잘 못하는 사람이다. 그의 패인은 내향적인 고지식함, 자기 원칙에 대한 결벽주의였다. 하지만 그런 그의 약점이야말로 그를 가까이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게  만든 요인인 것도 사실이다."


5.
거대 양당의 비례위성정당으로 준연동형비례대표제는 빛좋은 개살구가 되고 정의당의 앞날이 오히려 험난해진 상황은 노회찬의 부재를 더욱 아쉽게 했다.

"그가 있었다 해도, 조국사태에 대한 정의당의 입장이나 스탠스가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회찬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위성정당 출현을 예상했을 거라고도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그 뒤 심상정 대표 혼자서 고군분투하는 상황보다는 분명히 나았을 것이다. 두 사람이 서로  상의하며 상황을 타개해 나갔으리란 점에서 노회찬의 빈 자리가 커보이는 것이다. 선거 국면에서 당 차원의 지도력과 대외적인 영향력이 약화된 게 무엇보다 아쉽다."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해본다. 조국 사태는 사실 정의당에게 핵심사안이 아니다. 3040세대의 지지도를 넓혀 득표율 15%를 달성한다는 것이 애초 목표였지 않은가. 이 목표가 허무하게 된 것은 조국 사태가 아니라 거대 양당의 비례위성정당이다. 노회찬이 있었다면  미래통합당은 몰라도 더불어민주당이 그렇게 쉽게 위성정당 창당으로 나아갔을까? 노회찬은 위성정당 문제가 정의당의 승부처라고 봤을 게 틀림없고, 위성정당을 아주 막지는 못해도 최소한 정의당을 필요로 하는 어떤 접점을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정의당 내부로 눈을 돌려보면 노회찬의 부재로 인해 일상적인 정세 및 전략분석력이 취약해졌다. 노회찬은 당안팎으로 넓은  의견수렴과 정보수집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 정세에 대한 안테나도 늘 민감하게 작동했다. 미세한 차이에서 돌파구를 찾아내곤 했던 사람이다. 정의당이 소수 진보정당으로서 사회경제적 위치를 잘 잡고도 위성정당의 함정에 빠진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의 부재가 아쉽다."

"개인적으로 비례위성정당의 출현은 중앙선관위의 책임이 크다고 본다. 알면서도 거대정당의 꼼수를 눈감아준 게 아닌가. 비례대표제는 노회찬의 전문분야였다. 그라면 이 꼼수를 좀더 앞선 시점에서 판단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그래서 국민을 상대로 문제점을 강력하게 지적하고, 이로 인한 소수정당의 피해를 호소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사실 이번 선거의 유불리를 놓고 ‘노회찬이 있었다면…’을 가정하는 것은 부질없다. 다만 당의 전략적 행보나 정책 방향 등을 생각하면 그의 부재가 너무 아쉽다. 어떤 면에서는 내용보다 누가 주장하느냐가 중요하지 않은가. 이제 정의당은 몇 석이면 실패고 성공이냐는 양적인 접근보다 그걸 묶어내는 일에 주목했으면 한다."



 

6.
선거결과에 대해서는 대체로 의견이 같았다. "정의당은 10석 이상은 어렵다. 희망사항은 8석이지만, 5~6석이 현실적인 예상이다." 그러면서 모두들 바라는 바의 공통점은 심상정 대표만큼은 반드시 당선되어야 한다는 것. 거대 양당의 꼼수로 거의 재가 되어버린 희망이 그나마 불씨를 남겨두려면 지역구 의원으로서 당대표의 존재가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회찬의 시간이 멈춘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그의 빈 자리는 여전히 메워지지 않는다.     

"어느 팟빵을 봤더니 심상정 대표가 나와 꿈에 노회찬을 봤다면서, 그가 있었으면 어떻게 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 

"따르는 이에게 자리를 나눠줄 수 있는 리더십이 있는가하면, 보상보다는 꿈과 희망을 나누는 리더십이 있다. 노회찬은 물론 후자였다. 나는 그런 리더십이 좋았고, 그를 따르게 만든 힘이었다. 이제 나는 누구와 더불어 꿈과 미래를 함께 할 수 있을까에 생각이 미치면 그만 가슴이 먹먹해진다."


* 음식천국 노회찬은 <프레시안> 지면을 통해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pressian.com/pages/serials/431


공유하기

페이스북에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에 공유하기
트위터
카카오톡에 공유하기
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