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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소식

민들레(12호) 문화인 노회찬 - 내가 가고 싶었던 길을 앞서 헤쳐가신 분 (정민아, 가야금 싱어송라이터)

재단활동 2020. 04. 29




내가 가고 싶었던 작은 시점들에
항상 앞서 길을 헤쳐가신 분


- 정민아 (가야금 싱어송라이터)


‘표본조사’라는 조사 방법이 있다. ‘전수조사’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어느 집단의 특성을 알고자 할 때 집단의 일부를 조사함으로써 집단 전체의 특성을 추정하는 방법이다. 만약 내 인생 전체 중 어느 한 시점의 행동으로 나를 표본조사한다면, 나는 어떤 사람으로 정의될 수 있을까? 혹시 그게 내가 인정할 수 없는 ‘나’라면, 그 한 부분으로서의 나는 내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자신 안에서 ‘나’를 분리하며 살아간다. 가정에서 가족을 살뜰히 챙기는 ‘나’는 진정한 ‘나’이고, 직장이나 사회에서 불의를 보고도 입을 다무는 ‘나’는 진정한 ‘내’가 아니라고도 한다. 원래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먹고살기 위해 진정한 ‘나’를 숨기고 사회에 적응해 살아가는 것이라며. 다 그렇게 사는 거라며. 그게 어른이라며 말이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는 이렇게 말했다.
 “먹은 음식으로 무얼 하는가를 가르쳐 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나는 말해 줄 수 있어요. 혹자는 먹은 음식으로 비계와 똥을 만들고, 혹자는 일과 유머에 쓰고, 내가 듣기로 혹자는 하느님께 돌린다고 합니다.”

지구에서 얻은 에너지로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하는 무엇일까? 결국 나의 삶이 될 순간순간의 작은 시점들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2009년 6월, 상암동 홈플러스 앞에서 진행된 이랜드 노조 2주년 문화제에서 ‘무엇이 되어’를 불렀다.

당시 진보신당 대표였던 노회찬, 심상정 전 의원이 관객석 맨 앞줄 바닥에 앉아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노회찬 의원의 팬이었던 나는 악수를 청하며 “꼭 대통령이 되어주세요.”라고 말했다. 환히 웃어주시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내가 가고 싶었던 작은 시점들에 항상 앞서 길을 헤쳐가신 분이다. 보통 ‘지식’을 특권으로 여기고 사욕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인간이지 않은가? 남보다 아는 것을 이용해 우위를 선점하고 권력을 독점한 후, 더욱 어려운 말로 대중이 못 알아듣게 하여 자신만의 특권을 유지하는 게 지금껏 우리가 알고 있는 권력층=특권층이었다. 그런데 노회찬은 그 권력층의 언어를 대중이, 서민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통역해 주었다. 그것도 촌철살인의 비유와 풍자로, 일부러 어렵게 만든 권력층의 언어를 유쾌하고 친근하게 느끼도록 해준 서민의 통역사였다. 사람을 웃도록 만드는 그의 사랑스러움과 따뜻한 입담은 많은 약자와 서민이 느꼈던 정치에 대한 생각을 바꿔주었다. 

2018년 7월, 장례식장에 갔다. 세상의 좋은 사람은 왜 자꾸 사라져야 하는지 너무 분하고 원통해 마음 갈피를 잃었다. 가야금이라도 한가락 타 드리고 싶었는데 서럽게 울기만 하고 발길을 돌렸다. 인간 노회찬의 죽음 앞에서, 그가 그였기 때문에, 너무나 ‘노회찬’이어서, 스스로 분리하지 못한 아주 작은 표본이었을 그의 마지막 시점을, 원통하고 서럽지만 인정하게 되었다. 

뒤에 남아 그가 바라본 방향을, 이제는 나만의 방식으로 노래 부르며 따라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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