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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소식

민들레(13호) 파리의 아침, 딱딱했던 바게트는 맛이 어땠나요?

재단활동 2020. 05. 28





2008년 10월, 나는 노회찬 당시 진보신당 대표와 함께 프랑스와 노르웨이를 다녀왔다. 

10년도 더 지난 일이라 어쩌다가 그가 내게 동행을 제안했는지 까먹었지만, 당시 진보신당 유럽위원회의 초청과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에서의 강연이 그의 유럽행 주요 일정이었고, 나는 얼떨결에 그의 유럽행에 동행을 하게 되었다. 해외여행이라고는 사실상 다녀온 적 없는 촌뜨기로서는 비행기값만 챙겨오면 데리고 가겠다는 제안에 얼씨구나 했던 것 같다. 

2008년 10월경이면, 진보정당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으로 양분되어 진보정치의 앞날을 가늠하기 어려웠고, 그해 4월 총선에서 패배한 노회찬 대표는 의원직도 상실한 상태였다. 당연히 그의 유럽행은 여러모로 경비압박을 받았을 것이고 일행 하나를 더 붙여 가는 것에 부담이 적지 않았을 것인데 선뜻 내게 동행을 제안한 일은 지금도 고맙게 생각된다. 

신혼여행은 제주도였고, 첫 해외 여행도 아내와 태국에 다녀온 게 전부였던 때라 나로서는 모든 것이 생소하고 즐거웠다. 거리에서 느끼는 그 곳의 문화, 유명한 건축물과 조각상들을 마주할 때마다 느끼는 반가움은 컸다. 식당과 술집에서, 혹은 시장과 대학교에서 마주하는 프랑스와 노르웨이의 그 나라 사람들과 그들의 관심사들 하나 하나가 나에게 공부였다. 인종문제와 극우정당의 출현, 유럽연합 내에서의 노동자 이동의 문제, 동성애와 이슬람 등 각정 사회적 이슈를 생생하게 접하고 토론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음 맞는 사람과의 여행에서 어찌 술 한잔의 추억이 빠질 수 있으랴.

파리와 오슬로의 싸구려 호텔방에서 일행 세 명이 다같이 잠을 자고 술을 마시면서 밤늦게 까지 토론을 할때면 늘 준비한 술이 부족했다. 그때마다 술 문제를 해결한 건 나였는데, 파리에서는 숙소를 나가 엉터리 영어를 동원해 가게에서 술을 사들고 왔고, 음주문화가 엄격한 노르웨이에서는 내가 귀국 선물용으로 싸들고 간 프랑스 와인을 노회찬의 강권에 눌려 내놓아야 했다. 당시 노회찬 대표의 감언이설은 “귀국하는 길에 드골 공항에서 같은 와인으로 사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셔버린 술을 다시 갚겠다는 말만큼 허망한 말이 없다는 사실을 귀국길에 뼈저리게 느꼈다. 아내는 선물용 와인을 사긴 샀는데, 중간에 노회찬의 꼬임에 넘어가 마셔 없앴다는 나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나는 억울했지만 같이 마신 술을 두고 이제 와서 누굴 원망하랴. 

이번 추억글을 쓰려고 2008년 여행 당시의 사진들을 다시 찾아보다 내가 그에게 미안해  할 일도 생각났다. 파리에서 첫날 아침, 우리는 밤새 마셔댄 와인으로 인한 숙취를 해소할 아침거리를 찾아 파리 시내를 어슬렁거렸다. 그러나 동네 빵집 앞에 빵을 사려고 줄을 선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딱딱한 바게트 빵을 먹고 싶어졌다. 영 내켜하지 않는 그를 해장빵은 내가 사겠다면서 설득했다. 파리에서 파리 시민들처럼 아침에 바게트 빵을 먹는 것도 훌륭한 문화체험이 아니겠냐는 엉뚱한 주장도 곁들였다. 그는 후배의 억지 주장을 마지못해 받아줬다. 그렇게 나는 훌륭한 문화체험과 맛있는 아침 식사를 그와 함께 나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찾은 이 사진을 보니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진보정당 최고 미식가이자 미적 감각이 뛰어났던 노회찬에게 야구방망이 만큼이나 딱딱한 바게트 빵으로 숙취를 달랠 아침 식사를 강요한 내가 새삼 미안해졌다. 사진 속 노회찬의 표정은 울고 싶은 표정이다. 마지못해 먹는 표정이 역력하다. 

내가 애지중지 싸들고 간 선물용 프랑스 와인을 노르웨이 호텔 방에서 낚아 챘던 건 바게트 해장빵에 대한 반격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이 사진 한 장에 새삼 그때의 고마움과 미안함이 떠오르고, 그의 넉넉한 웃음이 그립다.


박용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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