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재단 -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재단 소식

민들레(17호) 내가 아는 수행자, 노회찬

재단활동 2020. 09. 29




내가 아는 수행자, 노회찬


2015년 4월 초청 강연 후 뒷풀이에서 우리는 처음 만났다.

새벽까지 이어졌던 그 날의 술자리에서 노의원님은 부드럽고 솔직하며 격식이 없었다. 그리고 그 후 이어진 몇차례의 만남에서 우리는 정치나 노동문제 보다는 일상에 관한 대화를 더 많이 나누었다.

기억에 남는 일화라고 하면 우연한 기회에 노의원 진료를 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의 일이 떠오른다.

그는 내가 준 한약재 약물을 손에 쥐고는 약물이 몸에 작용해서 흐르는 기전을 몸으로 느껴 정확하게 말로 설명했다. 백회(머리 꼭대기)에서 우측 노궁(손바닥 가운데)으로 기운이 흐른다는 것이었다. 평소에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고는 알 수도, 말할 수도 없는 현상이어서 나는 이어서 물었다.

주무실때는 어떻게 주무시냐? 매번 잠들 때마다 명상을 하는데 바닷가에 홀로 누워있는 상상을 하고 고요함과 평온함을 생각하며 머무르고 깊은 수면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그러면 서너시간을 자도 몸이 거뜬하였고 평생을 그리 살아왔다고도 했다. 본인이 배우지는 않았지만 어느 날부터 하게 되었다 했다. 고요함은 집중된 상태이고, 평온함은 생각에 치우침이 없는 상태인데 이것은 도가에서 수면하면서 수행하는 일종의 수면공의 방법이기도 하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혹 마음이 불편할 때는 어떻게 하시냐? 마음이 복잡할 때나 시간이 잠시라도 날 때면 차에서 내려 늘 걷기를 하셨다고 했다. 시청부근에서 신촌까지 걷기도 한다고 했다.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하거나 마음을 알아차리는 시간을 가지셨다고 했다. 이것은 불교의 위빠사나 수행에서 하는 일종의 경행수행이다. 노회찬 의원의 종교가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고 가려는 이런 태도를 평생 견지한 것은 수행자들에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다.

 또 어느 날은 고등학교 때 잠시 절에서 머무르면서 지낸 시간도 들려주었다. 그래서 나는 노회찬 의원에게 정치 그만하고 수행하시며 사는게 좋겠다고 강력하게 권고를 하였다. 그 말 끝에 수행도 좋지만 노동자의 삶을 좋아지게 하기위해 평생 당신이 할 바가 있다고 하신 기억이 생생하다.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으로서의 노회찬은 어떻습니까?” 라고 질문을 드린 적도 있다. 그때도 역시나 “대권보다 중요한 게 노동자의 권리이다”라고 이야기하며 본인의 삶의 행보를 분명하게 하셨다.

길지않은 인연의 내가 노회찬의 삶을 감히 정의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내적으로는 끊임없이 자기성찰을 하고 외적으로는 세상을 향한 연민, 특히 노동자들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삶, 그것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돌아가신 후 언론을 통해 알게 된 그의 청빈한 삶은 역시나 수행자의 일상이었다. 현실에 발을 딛고 살아가며, 치열한 노동과 정치 현장에서 삶을 대하는 태도는 세상에 있는 어느 수행자 못지않은 진솔함이 느껴졌다.

사람들은 노회찬 의원을 이야기할 때 어떤 신념이나 이념적 지향을 가진 정치인이자 노동운동가로 말한다. 하지만 내 가슴속에는 수행자로서의 모습이 더 선명하게 남아있다.

수행자 노회찬, 그가 그립다. 


- 송옥규 (안산 광제당한의원 원장, 아름다운연구소 지금여기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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