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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소식

민들레(18호) 문화적 유희로 충만했던 동시대의 전인(全人)

재단활동 2020. 10. 29

ⓒ사진 최경호



문화인 노회찬

문화적 유희로 충만했던  동시대의 전인(全人)

 


이건희의 죽음으로 세상이 들썩이는 지금, 노회찬을 회고하는 글을 쓰고자 책상에 앉았다. 이건희, 삼성X파일, 노회찬의 폭로, 의원직 상실로 이어지는 사건의 결말에 그의 죽음은 자리한다. 한 때, 그에게서 최초의 문화대통령 탄생을 꿈꿨기에, 그의 죽음은 내게 간절하던 하나의 꿈의 소멸을 의미하기도 했다.


2010년 초가을, 그를 만나 반나절 동안 긴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일찌감치 점 찍어둔 문화대통령의 유년시절을 탐문하기 위해서였다 :

원산도서관 사서였던 아버지. 교사셨던 어머니는 아들의 이름을 북한 시인 이찬의 이름을 땋아 지을 정도로 문학에 심취한 분들이셨다. 피난민의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부산에서 공연이 있으면 빼먹지 않고 가셨고, 악기를 배우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힌 아들에게 첼로를 배울 수 있는 기회도 열어 주셨다. 가난한 그를 위해 무료 교습을 허락해준 선생님이 계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첼로를 통해 그가 누렸던 기쁨은 훗날 서울시장 선거공약 속에, 모든 시민이 악기를 배울 수 있는 환경 조성으로 탄생하기도 했다.  경기고 시절 그는 학교만 파하면 청계천 서점가를 뒤지고 다녔고, 폐간된 사상계를 모조리 구해 읽었으며, 당대의 사상가, 고승들을 찾아 직접 문답하기도 했다. 프랑스 문화원에서 상영하는 모든 영화를 봐야 했고, 세상에 나오는 모든 신간을 읽어야 했다. 문화적, 사상적, 현실적 감각에서 전인에 가까운 면모를 지닌 인간 노회찬은 각별한 문화적 토양을 제공해 주신 부모님과 황홀한 영혼의 방황을 허락해준 경기고 시절의 탐색으로 그 견고한 토대를 닦는다.  

2011년 봄, 노회찬이 파리를 방문했을 때, 집에 초대해 함께 식사를 나누었다.  그는 집안에 흐르고 있던 음악에 대해 “같은 시대의 음악이면서도 3가지 정도의 다른 톤”을 가지고 있다고 평했다. 마랭 마레와 생트 콜롬브, 두 사람이 작곡한 바로크 음악과 현대 작곡가인 조르디 사발의 바로크 음악 편곡이 섞여있던 음반으로, 사제지간인 두 음악가의 생애를 다룬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의 사운드 트랙이었다.  그의 귀가 가진 섬세함에 함께 있던  이들이 탄복했다. 그는 매년 통영국제음악제에 참석하여 새로 발표되는 현대음악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꾸준히 누려왔다며, 무대에 등장했던 한 첼로 연주자의 독특한 연주를 듣고, 기어이 그 악보를 구해보았던 에피소드를 털어놓았다. 노동 운동가. 진보 정치인의 고단한 삶에서도 그는 음악과 예술이 전하는 즐거움을 차단한 적이 없단 사실,  그것이 인간 노회찬을 얼마나 풍요로운 인간으로 가꿔주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서가에 있던 꽂혀있던 화집들을 펼쳐 보기도 했다.  <나무꼭두> 사진집을 펼치던 그를 보며 동행했던 박용진(현의원)은 “노의원이 새로운 책을 열며, 지식의 보따리를 풀어내지 않고 10장째 넘기기만 하는 모습은 처음”이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그는, 한순간도 세상을 향한 호기심을 멈추지 않았고, 부지런히 그것을 충족시키며 살았다.  그렇게 연마한 지식과 경험이 그에게 통찰과 혜안을 허락했고, 그것으로 충만한 삶을 누렸던 사람, 모두가 그런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맹렬히 싸우길 멈추지 않았던 사람이다.

파리 강연에서 그는,  "비행기가 한 대도 뜨지 않는 공항을 수천억씩 들여서 짓고 또 짓는나라가 예술은 가난 속에서 나온다 굳건히 믿고, 예술에는 단호히 지갑을 열지 않는다. 그것이 산업적 가치를 입증하든 하지 않든, 문화와 예술에 대해서 사회는 일정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며, 예술이 건강하게 사회에서 싹트게 하는 것은 국가의 역할이다. 국가 만큼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체계는 없다" 는 말로 문화정치에 대한 철학을 설파한 바 있다. 오랜 세월 스스로 체화하여  철학으로 축조해낸 그의 문화정치관이 강당에 울려퍼질 때, 한마디도 놓칠 수 없었다.


2년 전, 그가 세상을 떠난 다음날, 탔던 택시 안에서 라디오 진행자는 이렇게 말했다. “언제나 서민의 곁에서 서서 손을 잡아주시던, 친구 같은 분이었죠. 노회찬 의원을 떠나보내며 조용필의 <친구여> 함께 들으시겠습니다”. 하늘에서 잠들어 버린 꿈, 구름 따라 흐르는 추억과 함께 우린 멋진 동시대인을 떠나보냈다. 고운 아들을 세상에 보내 주시고, 키워 주신 노회찬의 어머니 원태순 여사 영전에 애도의 뜻을 전한다.


- 목수정 (문화정책연구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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